한국 사회와 정치, 그리고 청년

보수와 진보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

by 교양이



중도란 누구인가


당신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초면에 정치 이야기를 꺼내기 껄끄럽다면, 대신 당신의 방 사진을 보여줘도 된다. 그럼 나는 당신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알아낼 수 있다.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정치성향과 정리정돈 상태와의 관련성은 실험으로 입증된 결과다. 방이 깨끗하게 정돈되어있을수록 보수주의자일 확률이 높고, 지저분할수록 진보주의자일 확률이 높다. 도무지 이해가지 않겠지만, 그 관련성에 대해 답을 찾아내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평소에 자기 방을 깔끔하게 관리하는 능력은 성격과 관련이 있다. 정리정돈이 완벽한 사람은 평소에도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삶을 산다. 집이 어지럽혀져 있는 사람은 일상에서도 즉흥적으로 행동하거나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한 채 산만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성격이 사람의 가치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관이란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생각과 믿음이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말한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면, 사람은 그 방식에 맞게 행동하고 그게 옳다고 믿는다. 일종의 선입견이 생기는 것이다. 그 선입견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문제에 적용되면, 도덕적 문제가 되어 사회 현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또 선입견이 개인의 행동에 적용되면 행동의 반복적인 패턴이 형성되는데, 그게 바로 성격이다.


정리정돈이 완벽한 사람은 세상을 체계적이고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지각하기 때문에, 사람은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정치의 영역에서도 변화보단 현상을 유지하려는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게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무의식적인 세계관과 성격, 도덕의 관계를 짚어보면 그 관련성을 정치적 입장 차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정리정돈 상태에 관련되어 있는 성격의 차이가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도는 어떨까? 사람들은 보수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진보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중도라고 한다. 중도란 좌우 끝에서 가운데 지점에 서 있는 집단이 아니다. 중도란 좌우 성향 모두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투표할 때 보수의 가치에 공감하면 보수 정당, 진보의 가치에 더 공감하면 진보 정당에 표를 주는 것이다. 극단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중도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대부분 정치인들은 중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건하고 중립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이는 좋게 말하면 균형이고, 나쁘게 말하면 신념과 개성이 없는 거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적 이념 스펙트럼이 일관성이 없고, 보수와 진보 정당 모두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한다. 물론 선거는 결과로만 증명받는 치킨게임이다. 정치인들이 중도, 무당층에 집중하는 이유가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전략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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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선 오히려 이념적 선명성을 강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대세, 패러다임이라는 걸 만들 수 있다. 한번 대세라는 게 만들어지면, 상대편에서 뒤늦게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고 홍보를 해도 대세를 거스를 순 없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일단 보수나 진보적 가치관이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히면 단기간에 바꾸는 게 힘들어진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진보 정권에게 실망한 반작용으로, 사람들의 마음에는 보수적 가치관이 활성화되었다. 패배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윤석열 후보의 리스크와 이재명 후보의 행정 능력 어필로도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민주당 입장에선 0.8%의 차이도 엄청난 선방을 한 셈이다.


사람들이 보수와 진보를 왔다 갔다 하는 이유에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애초에 명확하지 않아 잘 모르는 탓도 있다. 일단, 나라마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정도와 기준이 다 다르다. 미국과 한국의 진보정당인 민주당도 서유럽 국가 기준으로 보면 보수정당이다. 용어도 모호하다.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자의 것인가, 진보주의자의 것인가?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는 진보와 보수라는 말과 다른 의미인가? 좌파와 우파라는 말은 프랑스 국민회의에서 급진파인 지코뱅파가 왼쪽에 앉고 온건파인 지롱드파가 오른쪽에 앉았던 사실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현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오히려 좌파와 우파는 대개 부정적으로 사용되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만 한다. 좌파는 종북좌파, 우파는 수구 꼰대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준다. 반대로 보수는 강경한 원칙주의자, 진보는 정의로운 개혁가 같이 너무 긍정적인 느낌만을 준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라는 말은 정치인들의 이기심과 위선, 무능력을 은폐하기 쉽다. 어떤 짓을 하건 단지 생각과 이념의 차이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사실은 정치적 견해 차이 이전에 도덕과 상식을 벗어난 문제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두 용어 모두 내가 말하고 싶은 논지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언어는 인간의 기만과 야만, 욕망과 불완전함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정치인 역시 한낱 인간이다. 그들이라고 특별히 더 도덕적이거나 지적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생물학적인 의미의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를 쓰고 싶지만, 부정적인 어감이 너무 강해서 논지를 흐려놓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에 대응되는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차이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한다. 좌우 이념 스펙트럼을 논할 때는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를 쓸 것이다. 좌우의 방향성을 더 선명히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의미는 현실 정치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라, 더 근본적인 생물학적 차원에서 보수와 진보를 논할 때 사용되는 의미다. 언어의 함정에 갇히지 말길 바란다.


설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 극단적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점도 있다. 개인 간의 차이를 무시하고 양 극단에 있는 좌우의 특성을 드러내야만 대조를 통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차이점을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현실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온건한 정치성향을 갖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보수와 진보의 차이점 자체이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중 누가 더 선하거나 현명하냐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도 덧붙인다.




청년과 정치



정치권에서 2030 청년에게 관심이 크다. 기성세대와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 진심으로 궁금한 건지 표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보수와 진보 정당 모두 청년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청년들을 MZ세대라 멋대로 이름 붙여놓고 친히 그들을 이해하려 애쓰시는 정치인들의 노력, 가상하다. 그런데 청년이라고 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 청년들도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건 똑같다. 정치가 삶의 효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구체적으로 주거 문제, 일자리 문제, 안보 문제에 관한 정책이 내 삶에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건 세대를 막론하고 똑같다. 청년을 이해해보겠다고 PC방에서 롤 하고, 어설프게 옷 따라 입는 걸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는 소리다. 누가 그딴 걸로 이해해 달랬나. 청년들도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를 해결하라고 정치인들을 뽑아준 거지, 이해받겠다고 표를 준 건 아니다. 청년들은 정치 꼰대들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 없다.


총선을 앞두고 광주의 대학교와 언론에서 20대 512명을 대상으로 정치적 인식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청년들 대부분이 정치가 필요악이라고 답했다. 정치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하지만 정치인들은 싫다는 소리다. 청년들만 정치 혐오에 빠진 건 아니다. 성별, 연령, 교육 수준, 소득 수준, 지역을 막론하고 국민 10명 중 9명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럼 정치적 냉소주의 혹은 정치 혐오는 누구의 잘못이냐. 무지몽매한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고견과 안목을 알아보지 못해서인가, 아니면 정치인들이 실제로 사리사욕만을 추구하고 무능하기 때문인 건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보통 20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대 다수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정치적 논쟁의 장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세상일 뿐이다. 현실 세상에선 정치색을 드러내기를 꺼린다. 종로 파고다 공원에서, 술집에서, 명절에 친척끼리 모인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기성세대와 방식의 결이 다를 뿐이다. 청년들은 정치가 얼마나 민감하고 타협이 어려운 주제인지 잘 알고 있기에 감정을 소모하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20대도 정치에 대한 근원적인 욕구와 바람이 크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치적 갈등과 논쟁, 아니 전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기성세대는 잘 모른다.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면 패배한 지지자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패배의 책임을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무지에 돌리곤 한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애들이라 선거날 놀러 가거나 반대쪽에 투표했다는 소리다. 선거에 지고 나서의 분노와 상실감을 보상받으려는 심리는 이해하지만, 패배의 책임은 청년에게 있는 게 아니라 지지하던 정치인들에게 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으니까. 물론 젊은 세대가 사회 경험이 부족해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가 부족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세대마다 경험하는 사회적ㆍ문화적 차이가 다르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도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단기간의 압축 성장을 거친 한국 사회는 세대 차이가 더 심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실용만을 따지는 청년들의 정치적 선택 역시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기성세대는 군사 독재와 데모, 폭력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민주주의 자체가 무너진 사회 속에서 어른이 되었다. 칼과 총을 든 독재 정권 앞에서 무력했던 운동권 세대의 청년들이 민주적 가치와 구호를 외치는 것 말곤 할 게 없었을 거다. 당시 청년들에겐 정치를 이념과 거대 담론, 진영논리로 바라보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지금도 기성세대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으로 정치적인 판단을 한다. 그들에게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립과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 선과 악의 문제는 뚜렷했을 테니까.


그러나 2030 청년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립에 별 관심이 없다. 오늘의 청년들은 학업과 취업을 위한 경쟁 시스템이 완벽하게 맞물리도록 구축된 한국 사회에서 자라왔다. 운동권 세대가 목숨을 걸고 싸워온 평등이니 정의니 하는 거, 청년들은 안 믿는다. 학교와 사회, 부모로부터 인생의 목표가 공부 열심히 해서 부자 되는 거라고, 그게 인생의 정답이라고 배우며 치열한 경쟁을 거쳐온 이들이 2030 청년들이다. 그 출발점이 학교 들어서부터, 아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의 재력과 지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안다. 승리자와 패배자를 결정하는 입시 레이스는 학창 시절부터 시작돼서 대기업 취업 문턱을 넘어야만 끝이 난다. 그래야만 사람답게 산다고, 공부 안 하면 노가다나 하며 산다고, 나는 학교 선생에게까지 그런 말을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한다. 청년들은 너무 일찍 낭만을 잃어버렸고, 그렇게 사회로 진출한 20대가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2030 청년들이 정치에 바라는 건, 투표를 통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정책적 효능감이다. 실제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 1위는 ‘정치가 내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서’이다.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공약은 취업과 주거, 소득, 교육 등 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낄만한 정책이 주를 이뤘다. 2030 청년들 입장에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적 선택이다. 기성세대와 청년 모두 각자의 시대적 특성과 환경에 따라 합리적 선택을 한 것뿐이다. 시대정신이라는 게 별 다른 게 아니다. 누구도 시대적 한계에서 자유로울 순 없는 법이다.


청년들이 현실적인 이익을 따지면서도 정치에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건 결국 정치인들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선거철마다 남발되는 비현실적인 공약과 청년들을 향한 애민 정신에 청년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진의를 의심할 뿐이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청년들이 정치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없는 이유다. 이들은 더 이상 정치를 진영논리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이 만들어 낼 결과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게 옳건 그르건 간에, 그냥 그렇다는 소리다.


하지만 현실 정치가 보수와 진보를 축으로 이뤄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은 보수와 진보 양 거대 정당의 파워가 유난히 세다. 그에 비해 정치적 이념과 정책의 현실성, 선명성은 너무 흐릿해서 관성적인 구분 말고는 한국 보수와 진보만의 특징이랄 게 명확히 없다. 무색무취의 보수와 진보는 좌우와 중도 누구에게도 매력을 끌지 못한다. 정치를 이익과 효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가 왜 다른지,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청년들은 보수와 진보의 구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지만, 둘의 차이를 제대로 모르면 기회주의적인 정치인에게 놀아나기는 더 쉽다.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과 가치가 양 정당에 어떻게 반영되고 정책으로 구현되는지를 모른 채, 국민들이 정치를 이익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정치인들은 더 편해진다. 정치인들이 가장 잘하는 게 바로 말이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그래야 그들의 언행에 숨겨진 진의와 행간의 의미를 눈치챌 수 있다. 그러고 나서야 정치가 내 삶을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그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보수와 진보의 역사



『노예의 길』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말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금 시대에 그런 말을 하면 큰일 날 말이지만, 자유시장 경제의 옹호자인 하이에크의 말에는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이 담겨 있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세계관이 그것이다.


하이에크.jpg 신자유주의의 아버지, 하이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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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하이에크는 20세기 통화주의의 아버지이자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해 세계 경제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굴러가는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이에크는 경제학자였지만 정치와 사회, 심리학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를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로 기억한다. 하이에크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도록 큰 영향을 미쳤기에, 정치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경제학이 정치와 긴밀하게 엮여있다는 점은 정치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다. 백 년이 넘는 역사 동안 경제학자들은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고, 각 시기별로 승리한 경제 이론들은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를 정당화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이해한다는 건 그 주장에 숨겨진 경제적 논리를 이해한다는 것과도 같다.


이 책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어떤 주장을 하는지 몰라도 보수와 진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럼에도 보수와 진보가 어떻게 생각하고, 변화했는지 그 과정을 대략적으로라도 알면 책을 읽어나갈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사실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지만,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할 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제헌 의회 시기에 우연히 정치적 급진파가 왼쪽에 앉고 온건파가 오른쪽에 앉았던 것에서 비롯됐다. 당시 좌파의 정치적 목표는 전제정치에 맞서 시민의 권리를 확립하는 것으로서, 선출에 의한 사법부 구성, 입법부의 우위, 1인 1표의 참정권 같은 것을 정치적 요구로 내걸었다. 19세기 중반에 좌파의 정치적 목표는 남성 노동자 계급도 선거권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턴 좌파의 목표는 사회주의적인 방향을 향했다, 20세기에 들어선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다수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출현했다. 그러나 서유럽의 좌파 정당 다수는 온건한 사회 민주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소수만이 급진적인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으로 분열되었다.


20세기 후반에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독재와 무능이 확실해지며, 기존의 좌파 이념에 대한 반성이 대두되었다. 이를 신좌파라 하는데, 신좌파는 기존의 노동자 계급 이외에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여성,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들, 이주민 등)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밖에도 무정부주의(아나키즘), 녹색주의, 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파가 있지만 현대에 들어 좌파의 헤게모니를 쥔 이데올로기는 신좌파라 불러도 무방하다.


우파의 정체성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유럽에서 우파가 정치적으로 확고히 정립된 시기는 왕정 국가들이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하고 빈 체제를 결성한 1815년이었다. 빈 체제 이후 국가와 민족, 영토 관념이 정립되며 보수적인 애국심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후 우파는 왕정 복고와 신분제 복원, 교회의 권력 회복을 핵심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이미 왕권의 복고주의는 프랑스혁명에 의해 시대정신에 뒤처진 것으로 판명되었고, 19세기 후반부터 우파의 핵심적인 가치는 전통의 유지와 질서, 민족주의, 권위주의를 향하게 된다.


보수주의자가 핵심적인 가치로 뽑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다. 물론 진보주의자도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미국에서는 자유주의자(Liberal)가 좌파와 동일시되고, 보수주의자(Conservative)가 우파와 동일시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 역시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치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신보수주의 운동에 의해 자유의 의미는 보수주의자의 프레임에 포획되어 가고 있으며, 한국의 보수 역시 공산주의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뽑는다. 이는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가 자유의 의미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설명할 것이다.


자유주의의 출발은 좌파부터 시작된다. 자유주의는 전제 왕권에 맞서 시민의 자유를 옹호하며 좌파적 이념에서 출발했지만, 1848년 빈 체제에 저항하는 혁명의 불길이 유럽을 휩쓰면서 좌파와 우파로 분화되었다. 온건적 성향을 가진 지롱드파는 개인의 재산권을 옹호하고 자유롭게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권리를 핵심 강령으로 삼으면서, 자유주의적인 우파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했다. 자유주의가 정치적 적이었던 보수주의와 손을 잡으며 우파 이데올로기의 핵심 이념이 된 것이다. 반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면서도,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은 사회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로 불린다. 똑같이 '자유'라는 말이 붙더라도, 얼마든지 보수주의 이념과 진보주의 이념으로 분화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보수주의가 경제적 자유와 결합하는 동안, 대공황으로 전 세계 경제가 파탄 나면서 유럽의 보수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우경화된다. 파시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는 극우의 대표적인 형태다. 그 결과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세계 경제는 다시 호황을 맞이하고 진보주의가 강세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이, 영국에서는 대처가 총리로 집권하면서 보수주의는 더 강해져서 부활하게 된다. 하에이크와 프리드먼에 의해 대표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20세기 후반에 부상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으로 자유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수주의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 보다 더 우경화된 노선으로 간주된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



보수와 진보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고 어떻게 대비되는지 살펴보기 전에,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의 특징과 그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좌파와 우파' 개념은 자유주의-공산주의 이념 대립이 극심하던 시기에 형성되어 부정적 연상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공간적 대립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준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진보와 보수' 개념은 변화에 대한 태도에 따라 구별되기 때문에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두 개념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할 때도 많다. 실제로 좌파는 공산당이 집권했을 땐 새로운 억압 체제가 되기도 했고, 그에 맞서며 우파가 개혁과 변화를 핵심 가치로 내세울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좌파가 정치적 도전 세력일 때가 많지만, 변화를 주장한다고 해서 꼭 진보가 되는 건 아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언어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진보라는 단어다. 진보는 '발전'과 동의어로 간주되거나 근대와 현대의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말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 철학으로서 진보주의를 정당화하는 말이다. 이는 역사적 이유 때문인데, 근대는 중세를 암흑시대로 규정하며 시작부터 진보와 개혁, 혁명을 자기 시대의 모토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절대왕정에 저항하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던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면서, '진보'라는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발전의 상징이 되었다. 진보라는 단어가 주는 긍정적인 뉘앙스 덕분에 한국 보수는 진보라는 말보단 좌파라고 부르고 싶어 하고, 정의당 같은 정당은 상대적으로 우측에 있는 민주당보다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해 '유일한 진보 정당'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보수와 진보의 차이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몇 가지 중요한 민주적 가치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차이점을 말할 수 있다. 우선은 평등이다. 보수는 불평등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나름대로의 순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보수와 진보주의자 모두 인간이 모든 면에서 완전히 평등해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되, 그 범위와 강도를 좁히자는 것이 진보주의자의 생각이다. 진보주의자가 보기에 대부분의 불평등은 사회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보수주의자는 불평등의 사회적 원인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보다는 선천적 재능과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가 보기에 타고나는 차이는 어쩔 수 없기에 이를 인위적으로 교정해서는 안 된다. 억지로 평등을 맞추려 하면 오히려 역차별과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좌파와 우파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지만, 자유가 적용되는 영역은 정반대다. 보수주의자는 경제적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진보주의자는 정치ㆍ사회ㆍ문화 분야에서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탓에 도덕적ㆍ정치적ㆍ경제적 영역의 모든 사안들에 대해 좌파와 우파가 서로 대립하는 계기가 된다.


경제적 자유부터 살펴보면, 우파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사회 전체의 이익이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좌파는 경제 활동의 범위에 한계선을 둬야 무분별한 이익 추구를 막음으로써 공동체 전체에 이익이 돌아간다고 믿는다. 물론 제한의 강도와 방식은 좌파마다 차이가 있다. 가장 극단적인 방식인 사적 소유제의 철폐에서부터, 국유화, 조합 소유 같이 소유권에 개입하는 방식, 복지 확대를 통해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는 간접적인 방식도 있다. 비록 생각의 차이는 있다 해도, 좌파는 평등이 경제적 자유라는 가치보다 우선해야 된다는 데에 모두 동의한다.


사회적 자유에서는 좌파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지만, 우파는 개인적 자유보단 공동체의 안정과 헌신을 중요시한다. 우파는 전통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관습적이고 권위적인 사회 질서를 따르고, 도덕적으로 엄격한 태도를 보임과 동시에 문화적 변혁을 경계한다. 따라서 우파는 국가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고,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질서와 전통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좌파는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사회 규범에 맞서 개인의 자율성을 옹호하고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회적 자유에 대해 좌파와 우파 간의 상반되는 태도 때문에, 사회가 어떤 식으로 구성돼야 하는지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입장도 달라진다. 우파는 개인들이 하나의 목적과 가치 아래 뭉친 통합을 강조하는 반면, 좌파는 개인들 간의 연대를 강조한다. 우파는 사회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핵심 가치 아래 모여 수직적인 형태의 질서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통합이란 리더와 사회에 의해 정립된 지배적 가치를 구성원 모두가 긍정하고 내면화한 상태다. 보수주의자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구성원들이 핵심 가치를 실현하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반면 좌파의 연대는 평등한 존재들이 서로 수평적으로 연결된다는 의미다. 우파와 달리 좌파에게 핵심적이고 중심적인 가치란 없기에, 진보주의자는 권위주의와 서열주의를 거부한다. 연대란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상호작용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보수의 도움이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시혜의 성격을 띠는 것과 달리, 진보의 복지는 사회적으로 억압받거나 공정하지 않은 출발선으로 인해 뒤처진 자에 대한 배려의 성격을 가진다. 좌파는 소외된 자들이 불행과 가난에서 벗어나야 함께 연대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맞설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보수와 진보를 구별해주는 핵심 가치는 변화다. 대부분 사람들도 변화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곤 한다. 왜 우파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좌파가 변화에 찬성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대답하지 못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우파가 사회 질서 유지에 찬성하고 가난과 불평등은 개선하기 어렵다고 여긴다는 정도만 알면 된다. 급진적인 사회 변화는 오히려 악영향을 초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좌파는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은 적절한 해결책이 제시된다면 쉽게 개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좌파는 변화는 대개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정치적ㆍ사회적 개혁을 통해 사회가 한층 더 진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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