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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테씨 Sep 24. 2021

도련님이 서방님이 되었다.

어려운 가족 호칭의 세계

도련님이 서방님이 되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겠지만 실제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우리나라의 가족 호칭은 굉장히 어렵다. 어려우면서 확실하면 좋으련만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것도 많다.


도련님이 서방님이 되었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보자. 

사전적인 의미살펴보면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남편의 남동생)'을 부르는 호칭이다. 반면, 웹툰이나 소설 속에서 '부잣집 아들'을 부르는 호칭으로도 많이 쓰인다. 사전에 '도령'의 높임말이라고도 쓰여있다.


'서방님'이라는 호칭을 보자.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세 가지의 뜻이 있고 대상이 다 다르다.

1. '남편'의 높임말

2. 결혼한 시동생을 부르는 말

3. 손아래 시누이의 남편을 부르는 말


세 명의 남자를 '서방님'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오늘 결혼을 해서 서방님이 된 분은 나에게 어제까지만 해도 '도련님'이었다. 그 도련님은 내가 결혼하기 바로 전 날까지만 해도 '오빠'였다. 남편과 연인인 시절 함께 술도 마시고 놀며 오빠라고 부르던 사람에게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갑자기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칭을 쓰고 싶고 안 쓰고 싶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의지는 있는데 너무 어색했다. 결혼 6년 차가 된 지금은 그 호칭이 익숙하지만 신혼 때는 정말 어려웠다. 진심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도련님을 오빠라고 부르는 실수도 했다. 그것도 시부모님 다 계시는 자리에서 말이다. 감사하게도 온 가족이 웃고 넘어갔지만 스스로는 굉장히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가족호칭은 어렵다.





진심으로 '서방님'이라는 호칭에 대해 고민했다. 나의 부모님께도 여쭤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시부모님과 도련님까지 다 모인 자리에서 고민을 이야기했다. '도련님을 서방님으로 부르는 것이 어렵다. 나의 그이도 서방님인데 도련님까지 서방님이 되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혼자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을 것 같기에 여쭤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시부모님께서는 흔쾌히 '편한 대로' 하라고 말씀해주셨고 기존 호칭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도련님은 결혼을 했어도 도련님이라 부르기로.


호칭은 혼란은 또 있다. 도련님이 결혼을 하면서 새 가족이 생겼다. 나에게 '동서'가 생겼다. 동서라는 표현은 난생처음 쓰는 표현이니 어색하지만 헷갈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건 동서가 나를 부르는 표현이다. 동서는 나에게 '형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호칭은 맞다.


'형님'이라는 호칭을 보자. 

역시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아도 세 가지의 뜻이 있고 대상이 다 다르다.

1. '형'의 높임말

2. 아내의 오빠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3. 손위 시누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도련님이나 서방님이라는 호칭의 의미는 다중적이지만 성별은 그나마 통일되어있다. 그런데 형님이라는 호칭은 성별마저 일정하지 않다. 내가 내뱉는 말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동서가 나를 형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왠지 엄청 든든해야 하고 건장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 가족 호칭은 어떤 유래로 만들어졌을까. 나만 이렇게 호칭에 대해 어려워하고 고민하는 것일까. 언제쯤 제대로 된 호칭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이 호칭 때문에 가족들 만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부르는 호칭이 어려워서 부르는 것이 꺼려지고 말을 아끼게 될 때도 있다.


시부모님의 배려로 서방님을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결혼한 도련님에게 아이가 생기면 결국은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라는 부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가족 호칭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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