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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테씨 Jun 16. 2021

평생을 보상받는 기분

시어머님의 손에 꽃이 폈다.

"어머님~일 오전에 혹시 시간 되실까요?

 저 어머님이랑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응 그러자"


시어머님의 환갑 생신을 앞두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 평생에 한 번 뿐인 환갑을 맞이해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평소 같았으면 여행이라도 갈 수 있지만 아쉽게도 코로나 시국이라는 상황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양가 부모님 모두 건강하게 지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존재이시다. 그런데 나는 시어머님께 받는 것이 정말 많다. 육아를 도와주시고 계시기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는 날이면 나와 그이를 위해 반찬까지 챙겨주신다. 게다가 부부는 가끔 둘 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며 생일이나 기념일이 되면 아이를 1박 2일로 맡아주시기까지 하신다. 1박 2일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면 아이랑 놀라며 집 청소까지 다 해놓아 주시고 혹여나 비가 오거나 추운 날이면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보일러를 틀어 따듯하게 집을 데워놓아 주신다. 나의 엄마도 나에게 종종 시집 잘 갔다고 감사하라고 할 만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감동을 주시는 시어머님이시다. 환갑 생신선물로 어떤 선물을 해 드려야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 네일아트가 떠올랐다.


평소에는 민낯에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생활하시는 분이지만 사실 시어머님은 멋쟁이시다. 병원을 갈 때도 원피스를 꺼내 입으시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원피스들을 꺼내 입어보며 기분 전환을 하신다. 몸매 관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어쩔 수 없이 못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한 시간 넘게 아파트 단지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신다. 저녁에는 과식을 절대 하지 않으시며 평소에도 빵이나 과자는 잘 안 드시고 직접 피부를 위한 팩을 만들어서 쓰시기도 하신다. 여유만 되면 정말 화려하게 반짝일 것이 분명한 분이시다. 가끔 나의 책상에 있는 매니큐어를 빌려가셔서 바르시고는 즐거워하셨던 모습이 기억났다.




약속 당일, 동네 네일아트 샵 앞에서 시어머님과 만났다. 먼저 도착했으니 천천히 오라는 연락을 받고 도착한 네일아트샵 앞에는 수줍은 소녀의 얼굴을 한 시어머님께서 서 계셨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양산을 쓰고 한껏 설레는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네일아트샵은 젊은 사람들만 가는 것 아니냐, 너무 비싸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과 기대가 섞인 대화를 나누며 샵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원장님~! 저희 시어머님이세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고우시네요!"


내가 자주 가던 단골집이었고 환갑 선물로 시어머님께 네일아트를 선물하고 싶다고  미리 이야기를 해놓았기 때문에 샵 베테랑 원장님께서는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덕분에 분위기는 금방 녹았다. 네일아트 샵이 평생 처음이시라며 의자에 앉는 것조차 어색해하시던 시어머님이셨지만 원장님의 친근한 인사 덕분에 금방 적응하셨다.


원장님의 능숙한 손놀림과 함께 시어머님의 손 기본관리가 시작되었다. 평소 아침식사를 안 먹는 나였지만 이 날은 시어머님께서 관리를 받으시는 동안의 어색함을 덜어드리기 위해 수다왕이 될 예정이었다. 수다왕이 되기 위해 아침식사를 든든히 챙겨 먹었고, 그것은 다시 생각해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어머님께서는 좋아하는 색깔에 대한 질문에도 그저 원장님 보시기에 예쁜 색으로 해달라고 하시며 누군가 자신의 손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다듬어 준다는 것이 참 고맙다고 하셨다. 손톱에 색이 하나하나 얹어지고, 제일 위에는 생화를 눌러서 만든 압화로 섬세한 꽃꽂이 예술이 완성되었다.



"어머님~어떠셔요? 마음에 드셔요?"


난생처음 받으시는 네일아트의 소감이 궁금했다. 고향에 계신 엄마와 네일아트샵에 갔을 때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기에 당연히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것임은 알고 있었고 예쁘다 혹은 고맙다 정도의 대답을 기대하며 물었다. 그런데 시어머님은 답이 없으셨다.


"..."

"어머님? 꽃 더 올려달라고 할까요?"

"... 아니... 그냥... 평생 고생한 손이... 보상받는 것 같아서... 새아가 고마워"


시어머님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관리를 받고 예쁘게 가꿔지는 손을 보면서  아들을 키워왔던 세월이 쭉 떠오르셨덴다. 네일아트 받으신 손을 보면서 너무 예쁘다며 눈물을 글썽이시는 시어머님을 보면서 괜스레 나까지 눈물이 날 뻔했다. 집에 아들밖에 없어서였을까 이렇게 예뻐지는 기분이 너무 오랜만이라고 평생 기억할 거라고 하시는 말씀에 보람차면서도 코끝이 찡했다.


평생을 보상받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시어머님의 손에 굳은살이 깎아지고 오일이 발라지고 나서  모양이 예쁘게 다듬어진 만큼 시어머님의 마음과 세월 속에 고생했던 기억들도 깎아지고 조금이나마 반들반들하게 보듬어졌으면 좋겠다.

 



네일아트가 정말 마음에 드신 시어머님은 운동장에서, 슈퍼에서, 친척들 카톡방에서도 자랑하셨다고 한다. 덕분에 동네 요구르트 아주머니에게도, 약국 약사님에게 심지어 정육점 아주머니에게나는 시어머님께 네일아트 선물을 해드린 센스만점 며느리가 되었다.


시어머님께 색다른 선물을 고민 중이거나 친해질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며느리가 있다면 네일아트샵 방문을 추천하고 싶다.


오랜 세월 끝에 예쁜 색과 꽃이 얹혀진 시어머님의 손톱.




#여쭤봅니다.

글을 쓰면서 시부모님, 혹은 부모님과 독특한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님들께서 추천하고 싶은 추억 코스, 데이트 코스가 있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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