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테씨 May 31. 2021

엄마, 할 수 있어!

숨어있던 힘이 깨어났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아서 알콩달콩 살고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며 골드미스를 꿈꾸는 비혼주의자였다. 혼자서 지내는 평생을 생각했기에 힘을 길렀다. 의지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자존심 센 26살 아가씨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강점이 있듯 남편과 나도 각자의 분야가 다르다. 더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힘이 필요한 일을 남편이 하게 되었다. 무거운 짐을 드는 것부터 뚜껑을 따는 소소한 일까지 내가 할 수도 있지만 수고가 덜 드는 사람의 몫이 된 것이다. 옆에서 챙겨주는 남편 덕분에 내가 연약한 사람인 양 착각에 빠져있던 어느 날, 4살 아들님 덕분에 숨어있던 힘이 깨어났다.


"엄마, 따! 따!"

"따주세요 해야지~"

"따주세요~"

"응, 읏~쌰"


아이가 목이 말랐던지 생수 병을 들고 왔다. 생수병, 탄산음료 등 페트병 뚜껑은 내가 한 번 준 힘으로는  열리지 않는다. 뚜껑을 따기위해 치아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던 나였다. 그 습관이 남편에 의해 발견 된 후부터 뚜껑따기는 남편의 몫이 되었다. 처음 도움을 주겠다던 그 때만 해도 혼자 할 수 있다고 자존심을 세웠다. 하지만 치아로 뚜껑을 자꾸 따면 노후에 치아가 시려서 고생할 것이라는 설득에 결국 뚜껑따기를 남편의 몫으로 넘겨주었다. 낑낑대는 나와 달리 한 두번의 힘으로 쉽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힘에 대한 부러움과 남편한테서 오는 듬직함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아이의 물 병을 따주려 했던 그 날도 어김없이 내 힘에 병뚜껑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 안 까진다. 아빠한테 해달라고 해볼까?"

"아빠?"

"응, 엄마가 못 해요~"

"아니야"

"응? 아니야?"


역시나 열리지 않는 병뚜껑 때문에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 평소에 엄마가 못 한다고 아빠한테 가져가라고 하면 그대로 하던 아들이 평소와 다른 대답을 했다.

 

"엄마, 하 쑤 이써!"

"응? 엄마, 할 수 있어?"

"응! 하 쑤 이써!"

"진짜?"

"응! 진짜!"

"읏~쌰! 읏~쌰! 읏~~~쌰! 열렸다~!"

"와아~! 엄마, 고마어~"


이제야 말을 배워가는 31개월 아이의 입에서 처음 듣는 말이 나왔다. 정확하지도 않은 발음의 '엄마, 하 쑤 있어' 라는 응원이라니, 할 수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엄마가 병 뚜껑 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두 번, 세 번 시도 끝에 드디어 물병뚜껑이 열렸다. 고맙다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 자그마한 페트병 뚜껑 하나를 땄을 뿐이지만 굉장히 멋진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슈퍼히어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힘을 모르고 살다가 '각성의 순간'을 맞거나 '초인적인 존재'를 만나 숨겨진 힘을 찾곤 한다. 아이의 '할 수 있어' 라는 말 한마디가 나에게 각성의 주문이 되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고 노력했던 과거의 내가 돌아왔다. 나조차도 잊고 있던 자립적이고 강한 내가 내 안에 살아있었다. 내 안에 숨어있던 힘이 깨어났다. 더 강해지고 싶어졌다.


아이와 함께 있다보면 평소 스스로생각했던 능력치를 넘어서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아이가 아프면 밤새 잠을 설치며 병간호를 하고서도 다음날 출근이 가능하다. 주말이면 늦잠을 자야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내가 지금은 아침 7시에 기상을 하고도 생활이 가능하다. 요리에는 관심도 없고 편의점 음식들을 사랑하며 편리함만 찾던 내가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레시피를 찾아본다. 일반 스쿼트 운동도 낑낑대던 내가 지금은 13kg의 아이를 안고 스쿼트를 한다.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순간 들리는 아이의 웃음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기분이 좋다. 그 소리 한 번 더 들으려고 스쿼트를 한 번 더 한다.    


'부모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되는 순간부터 강한 존재인 것은 아니다. 아이로 인해서, 아이 덕분에 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자그마한 일을 해냈을 뿐인데도 굉장히 멋진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아이가 있기에 더 강해지고, 더 많은 것을 해내는 부모가 되고 싶어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아이의 응원에 나는 오늘도 더 강해지고 싶다.




#여쭤봅니다.

독자님들께 응원이 되는 말들은 어떤 말들인가요?

육아를 하면서 언제 뿌듯함을 느끼시나요?

육아를 하며 스스로 더 강해졌다고 느끼신 순간들 자랑도 궁금하네요 :)  



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우주가 펼쳐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