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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테씨 Jun 11. 2021

나의 그이를 탐내는 라이벌이 생겼다.

당분간은 눈감아줄게.

오늘은 나와 그이의 5번째 결혼기념일이다. 배려심 많고 섬세한 그이 덕분에 항상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데이트 끝에 각자의 집으로 귀가하는 헤어짐이 아쉬워서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싸움 한 번 한적 없고 연애시절부터 알콩달콩 닭살커플로 유명하던 나와 그이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나에게 라이벌이 생겼다. 나의 그이를 욕심내는 사람이 생겼다. 나의 그이를 자꾸 자기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생겼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이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밤에 잠들 때도 그이의 팔베개를 베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분명히 그이와 결혼한 사람은 나인데 그이의 옆에서 자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함께 자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이와 나 사이에 누군가가 있다. 그이를 자기꺼라고 주장하는 누군가가 있다. 조그마한 덩치를 가졌지만 거부할 수 없는 최강귀여움으로 무장한 라이벌이 누워있다.


원래 저 자리는 내가 안겨있어야 할 자리다.

정말 사랑스러운 광경이다. 사랑스러운데 왜인지 방해하고 싶은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아침의 풍경이다. 보통 아들이 태어나면 아들과 아빠가 엄마를 서로 자기꺼라고 탐내기 때문에 엄마가 집안의 여왕이 된다던데 나와 우리집 아들은 나의 그이를 두고 실랑이를 한다.


"아빠는 엄마꺼야~"

"아니야! 내 꺼야!"

"아닌데~엄마껀데~!"

"내.꺼.야!!!!"


한 때는 엄마한테만 안기려하는 '엄마껌딱지' 시절도 있었다. 팔이 저려올 때까지 꼭 안겨있으려고 했고 내가 힘들어보여서 그이가 도와주려고 해도 절대적으로 엄마한테만 안겨있어야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되기 시작하고 활동량이 늘어나면서부터 아빠껌딱지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 이런 변화가 너무 좋다.   

온 몸으로 놀아주고선 다정다감하기까지 하다.

4살 아이의 활동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머리가 흠뻑 젖을 때까지 뛰어놀고도 주스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달려나간다. 나도 한 때는 PT도 받고 체력에는 자신 있었는데 지금은 집에서 제일 저질체력이다. 그이는 아이와 온 몸으로 논다. 등 위에 올라타기나 비행기 놀이는 기본이고 안아 올려서 집안 벽들을 돌아다니는 스파이더맨 놀이, 침대 위에서 이불보쌈하고 놀이라고 부르기엔 격해보이지만 아이의 꺄르르 소리가 멈추지 않는 온갖 행위들을 한다. 아이와 함께 땀 흘리며 온 몸으로 노는 그 이를 보면 아이가 아빠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나도 그이를 좋아한단 말이다. 그이가 아이에게 좋은 아빠인만큼 나에게도 좋은 애인이고 좋은 남편이기 때문이기에 흐뭇하고 행복하면서도 약간의 질투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아빠의 팔에 하트스티커를 잔뜩 붙이며 애정표현을 하는 중이다.

보통 아이가 아빠엄마 중에 한 사람을 더 좋아하면 아이가 그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자체에 질투를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를 빼앗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질투가 난다. 물론 미움이 가득찬 질투는 아니다. 행복한데 끼여들고 싶은 오묘한 질투심이 올라온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쿨하게, 아니 쿨한 척하며 라이벌과 내 남자의 애정행각을 눈감아 줄 것이다. 과거에 영어강사일을 하면서 5살 꼬마친구가 "선생님, 제 여자친구에요!"라며 자랑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이렇게 나의 그이를 탐내고 있는 라이벌도 곧 여자친구라며 다른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올 것을 알고 있기에 당분간 참아줄 것이다.


어이, 라이벌, 아무리 그래도 아빠는 엄마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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