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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테씨 Jun 28. 2021

엄마인 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

난생 첫 배웅의 날

"엄마, 아빠랑 빠방 타고 회사 가따와"


2021년 6월. 드디어 감격스러운 출근길 첫 배웅을 받았다. 가족도 사랑하지만 나의 커리어도 사랑했던 나는 3개월의 출산휴가기간이 끝난 뒤 워킹맘의 길을 선택했다.


아이가 정말 어린 시절의 출근은 괜찮았다. 감사하게도 시부모님께서 육아를 도와주셨기제3자에게 아이를 맡기는 불안감도 느끼지 않았고 마음 편히 출근할 수 있었다. 출산을 하고도 경력단절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매일을 보냈다. 밤에 잠 못 자고 출근하는 것과 낮에 아이가 보고 싶고 궁금한 것만 감당하면 되었다.


아이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출근할 때의 아쉬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고 뒤집기를 할 때가 되면 정말 아이는 하루 종일 연습을 한다. 안쓰러워서 도와주고 싶을 만큼 낑낑댄다. 겨우 뒤집기를 성공하고 나면 기어가기를 해야 하고 일어서야 하고 걸어야 한다. 하루 종일 연습하고 넘어지고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옆에서 응원해주는 것 밖에 없는데 그것조차 못 해준다는 마음에 미안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어머님께서 보내주시는 성공 순간의 동영상들을 보면서 뭉클하고 뿌듯하면서도 스스로가 만들어 낸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감정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고 나만 절제하면 되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돌이 지나고 아이의 언어 표현과 의사표현이 시작되면서 출근이 정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나의 기상시간에 맞춰 기상을 했고 화장을 하는 동안 내 품에 안겨있었다. 집을 나서려고 하면 바지를 입은 날은 다리를 붙잡고 있었고 치마를 입은 날은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붙어있는 아이를 떼어내고 나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 범벅으로 얼굴이 새 빨개지도록 숨이 넘어갈 듯 울면서 "안 돼요. 엄마 같이 가요. 안 돼요."를 외치는 아이를 뒤로하고 나서는 출근길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매일 아침 아이를 이렇게 울리나 싶었고 세상에서 가장 못 되고 이기적인 엄마가 된 듯했다. 물론 내가 탄 차가 출발하고 나면 5분도 안 되어서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와 신나게 논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출근하고 나서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는 아가씨 시절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만나 현재 멋진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는 육아 롤모델이 있다. 어느 날 육아 롤모델 언니의 인스타그램에 출근에 대한 에피소드가 올라왔다. 출근할 때마다 잘 다녀오라며 뽀뽀에 하트세례를 날리는 애정 가득한 아들의 사진과 글이었다. 평화롭다 못해 사랑 가득한 출근시간이 부러워서 아들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언니의 아들은 그 당시 6살이라고 했다. 언니에게 그 질문을 했을 때 나의 아이는 3살이었다. 육아를 하며 하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다른 아이와의 비교이지만 언니의 대답을 통해 나도 3년 뒤에는 평화롭게 출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며칠 전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위해 화장을 하는 동안 아이는 내 품 안에 안겨있었다. 화장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졸졸졸 나를 따라다니는 아이에게 출근해야 함을 설명했다. 어차피 울음을 터뜨릴 것을 알지만 그래도 평소에 의사소통이 되기에 매일 설명을 해주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어린이집에 가면 친구들 있지? 친구랑 책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게 놀지? 엄마도 회사에 가면 친구들이 있어. 친구들이랑 책도 보고 일도 하고 올게. 이따가 자동차 타고 빨리빨리 올게."

"..."


평소 같았으면 울음을 터뜨렸을 타이밍이 왔는데 이상하게 말이 없었다. 오히려 더 불안해진 나는 한번 더 말했다.


"할머니랑 놀고 있으면 엄마가 아빠랑 같이 진짜 빨리빨리 올게. 기다려줄 수 있지?"

"응. 아라떠"

"진짜? 진짜 기다려줄 수 있어?"

"응. 엄마, 아빠랑 빠방 타고 회사 가따와. 할머니랑 놀고 있으께"   

"와... 진 고마워. 엄마랑 아빠가 아들 엄청 많이 사랑해~!"


무슨 일인지 아이는 평소와 다르게 울지 않았다. 너무나 의젓하게 갔다 오라고 하는 아이의 대답 앞에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놀라고 당황스럽고 뭉클하고 고맙고 감동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그이와 함께 출근하는 동안 잠시 화장을 다시 고쳐야 했다.

출처 : 픽사베이


나는 출근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까까 많이 사주려면 엄마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해'라는 식의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아이의 삶이 있듯 아빠에게는 아빠의 삶이 있고, 엄마에게는 엄마의 삶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려주고 싶어서 일찍부터 다른 방식의 설명을 택했다. 그런 나에게 아이가 울지 않고 출근길을 배웅해주었다는 것은 자신과는 독립적인 엄마의 삶과 아빠의 삶을 인정해주었다는 의미이기에 한층 더 특별했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워킹맘(이나영 역)인 강단이의 대사 중 이런 대사가 있다.

"사람들이 있잖아.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
 동서, 제이 엄마, 여보, 제수씨, 엄마...
그 동안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강단이. 나도 이름이 있는 사람인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어.
지금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
'반가워요 강단이 씨.'
'강단이 씨는 업무지원팀 사원입니다.'
그게 되게 신기해.
내가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게."

출산으로 인해 흔히 말하는 경단녀(경력단절여자)가 되었다가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하며 남긴 대사이다. 출산휴가 동안 이 드라마를 보며 다른 사람들은 이종석과 이나영, 두 배우의 출중한 외모와 달콤한 로맨스에 감탄하는 동안 나 혼자 경단녀와 워킹맘 이야기에 공감하며 봤었다.


나에게 회사는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곳일 뿐 아니라 나의 능력과 욕심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이후 나의 아침은 매우 평화롭다. 나의 출근길을 울지 않고 배웅해주는 고마운 꼬마왕자님 덕분에 앞으로도 나는 나의 삶을 욕심내 보려 한다.  


사랑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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