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어팟의 노예인가
2021.8.13
운동 6주 차 5일째
이번주는 전체적으로 헤롱헤롱하며 무리했던 주였다. 역시 여자의 대자연에 아무렇지 않은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마치 오늘의 나처럼 말이다. 드디어 금요일이다 힘내자라며 아침에 집을 나섰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핸드폰과 에어팟을 연결하는 것! 그런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휴... 배터리가 없었던 이유였다. 에어팟 충전을 하지 않아서 손에 꽉 쥐고 운동했던 경험이 있었으면서 오늘 또, 나는 충전을 까먹었다. 옷에 주머니가 없는 탓에 저번에는 에어팟을 손에 쥐고 운동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름 머리 쓴다고 우유배달 오는 가방에 놓고 운동을 시작했다. 욕심 같아서는 집에 놓고 나가고 싶었지만 현관문 소리에 아들님이 깰까 봐 내린 결정이었다.
아예 운동시작부터 에어팟 없이 달린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운동을 해낼 자신이 없어서 그나마 가장 짧아 보이는 가이드를 선택했다. 오늘의 나이키 런 가이드는 1K Run. 에어팟이 없으니 그냥 재생시켰다. 외부로도 다 들리게 들었다. 여러 사람에 최대한 덜 피해를 주기 위해 짧은 가이드를 택했고, 가이드를 다 들으니 약 10분 정도 지나있었다.
Measure this run by how relaxed you are.
얼마나 편안한 상태로 달렸는지 생각해보자.
Confidence and positive energy
자신감과 긍정적인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달리기 자세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Eyes up, shoulders down, chins leading the chest and arms driving. Stay controlled.
시선은 높게, 어깨는 내리고, 턱이 가슴을 이끌게, 팔은 부드럽게. 조절하자.
매일 드는 생각인데 나이키 런 가이드는 정말 알차다. 길든 짧든 다 배울 내용이 있다.
가이드가 끝나고 나서는 음악을 틀었다. 밖으로 소리가 다 들리도록 음악을 트는 어르신들처럼 해 보았다. 부끄러워서 소리를 줄이고 핸드폰이 귀 가까이에 오도록 팔을 올렸다. 하지만 불편한 자세로 오래 달리는 것은 역시나 불가능했다. 약 30분 정도 지나고 나서는 정말 지루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팟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나의 운동의 질을 결정한다니, 뭔가 진 느낌이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루하고 힘듦을 극복하기 위해 타이머를 설정했다. 5분 단위로 달리고 걷고를 반복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조금 빠른 속도로 5분도 못 달리는 체력이었나 보다. 4분이 지나고 마지막 1분 동안 시간확인을 3번이나 했다. 시간이 지난 거 같은데 알람이 안 울려서 자꾸 핸드폰을 보았다. 정말 내 인생에 가장 긴 1분이 아니었을까. 언젠가는 달리기를 하면서 시간이 참 빨리 간다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5분을 한번 달리고 나서 타이머 설정을 3분 단위로 바꿨다. 하지만 그것도 겨우 2번 달렸다. 결국 마지막 10분 정도는 음악도 끄고 자연의 소리를 들었다. 바람 소리, 아주머니들 수다 소리, 강아지 소리, 내 숨소리, 내 발자국 소리 등. 이상하게도 몸은 힘든데 마음은 편안해졌다.
사실 한 시간 운동하는 동안 달리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우유배달받는 가방 속에 있는 에어팟이 없어지면 어쩌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행히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니 그대로 있었다. 앞으로는 꼭 충전 잊지 말자!
원래는 이번 주 주말에도 운동을 하려고 했는데 나의 몸이 쉬라고 몸살기운을 마구 내뿜고 있다. 일단 토요일인 내일은 쉴 예정이다. 과거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나는 몸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