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이 아닌 사적으로 글을 잡습니다. (키보드지만, 우리의 감성으로 펜이라 치환하겠습니다.)
그간 나의 펜은 어떠했을까요. 사무적인 텍스트, 카카오톡 텍스트(어쩌면 이 역시 사무적인)에 마음을 잃었습니다.
마음이 있어 글에 담기기도 하지만, 글에 마음이 없어 마음을 잃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펜을 잡는 일은 신비롭습니다.
글벗 여러분, (서로의 글이 닿지 않았더라도, 펜을 잡은 우리 모두를 벗이라 표현해 봅니다.)
저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펜을 잡는 게 즐겁습니까?
바라건대, 펜을 잡아 글을 낳는 것은 남성도 어머니가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입니다.
그 글이 그가 되며, 그에게 닿은 이들이 되며, 우리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성이란, 그가 낳은 것에 가지는 본태적 애정일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낳은 글에도, 심지어 때때로 부끄러운 글에도 그 어딘가에 애정이 진득이 묻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어머니에게 자녀를 사랑하라는 것은 지상 최대(혹은 초유의) 명령일지어도, 사랑의 주체가 되는 내가 내 안에 충분하지 않거나, 사랑의 존속을 고민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필요에 의해 그 관계가 절멸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묻는 겁니다.
여러분이 절필하지 않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러한 플랫폼이 아니라 단지 편의점 노트의 한 구석에서, 타인의 긍정이 무존 하여도, 글 안에 나로부터 기인한 애정이 존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잘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저는 따지고 있습니다. 물론 소중하고 귀중한 글벗 여러분이 아닙니다.
존귀한 나의 글을 단지 트로피즘 수단으로 소진해 버린, 그래서 어리석게도, 펜을 잡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제 자신에게 따져 묻고 있습니다.
저는 나의 펜, 나의 트로피가 너무도 대단 치보여, 타인의 글도 그들의 트로피로서 여기었고, 나의 트로피가 숭배받아 마땅한 만큼, 타인의 글 또한 그렇다고 진심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하여, 타인의 글을 엄숙한 마음으로 읽으었고, 이내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으며, 그 모든 일을 글을 잡는 일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글은 어느 방향에서나 저와 맞지 아니하다고요.
그는 물론 실존에 대한 패배주의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다시 승리하고자 합니다. 위대한 남성향의 어머니로서, 뻔뻔한 고슴도치맘이 되어 보고자 합니다.
부디 용기를, 저에게나 여러분 모두에게나, 그러한 용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