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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Oct 08. 2020

직원없는 영화관을 휘저어 다녔던 기묘한 경험담

코로나로 변해버린 영화관 풍경

영화 티켓을 하나 선물 받았습니다.

정확히는 상사분이 티켓을 예매해 준다고 합니다. 사실 보고 싶은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퇴근 후 남는 시간에 한편 보라고 예매를 해주셨습니다. 그 날이 화요일 저녁 9:10 영화였습니다. 김포공항 롯데 시네마에서 ‘언힌지드’를 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퇴근 후 바로 가면 살짝 여유 있는 시간이었지만 이래저리 일이 생겨 늦게 퇴근했습니다. 결국 영화 시작 보다 20분 정도 늦게 왔습니다. 9시 30분경이었고 광고시간을 합하면 영화는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난 것 같았습니다.


이때 들어간 롯데 시네마의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모든 포스기와 무인 예매 기계는 전원이 내려가 있었고 두세 명의 직원이 청소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9시 30분이었습니다. 아주 늦은 시간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합니다. 결국 카운터로 가서 예매번호를 보여주었습니다. 직원은 선임인듯한 분에게 물어보고 다시 컴퓨터를 부팅시켰습니다. 그러고 나서 영화표를 재출력해주셨습니다. 위에 가면 직원에게 보여주면 된다고 하며 영화티켓에 도장 하나를 찍어 주었습니다.

감사인사를 하곤 올라가려 에스컬레이터를 봤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습니다. 아니 아예 한동안 가동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당분간 엘리베이터만 운행한다는 스탠드를 앞에 세워놓고 테이프로 막아놨습니다. 뭔가 씁쓸해졌습니다. 에너지 절약이라곤 하지만 정확히는 도저히 에스컬레이터까지 가동할 여유가 없다는 걸로 보였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관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없었습니다. 작년 같았으면 사람들은 물론이고 항상 직원이 매와 같은 눈으로 입구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표를 검사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스스로 표를 확인하고 영화관 문을 열어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면서 죄인 된 느낌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습니다. 이미 영화는 시작했고 제가 들어갈 좌석을 찾기 위해 관객석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람이 띄엄띄엄 5명도  없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들어갈 열 자체에 아무도, 아니 저를 둘러싼 2~3열 자체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앉아서 영화를 봅니다. 배가 고파 중간에 구입한 샌드위치를 뜯고 먹으려는 순간 마스크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벗고 나서야 내 주변에 정말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코로나 균조차 고독해 할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내용이 좀 이상합니다. 오기 전에 본 ‘언힌지드’는 러셀 크로우가 분노의 화신이 되어 자신에게 경적을 울린 여자를 찾아 복수한다는 내용입니다. (정말입니다. 이렇게 황당한 줄거리는 처음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상한 팔찌 이야기만 계속 나옵니다. 사람들이 팔찌를 갖기 위해 난투극을 벌입니다. 하늘에서는 운석이 떨어집니다.

경적을 울릴 상황이 아닌데...?

영화를 보는 내내 러셀 크로우가 언제 분노하는지 계속 보지만 러셀 크로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러셀 크로우 비슷한 배우가 가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흠... 빌런의 과거를 보여주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상합니다.

저 사람이 러셀 크로운가...?

결국 롯데시네마 앱을 보고 최대한 비슷한 영화를 찾아보니 이런... 영화 그린랜드였습니다. 내가 관을 잘못 찾아왔구나 하는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예전이라면 누군가 제 자리에 앉아 있었을 테고 자연스럽게 표를 확인하고 다시 영화관을 찾았을 것입니다. 아니 그전에 직원의 안내로 제대로 된 관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영화를 계속 볼까 했지만 이런... 재미가 없습니다. 몰래 핸드폰을 꺼내, 아니 애초에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그냥 핸드폰을 꺼내 평점을 보고 나오기로 결심합니다.

분명히 8관인데....?

나오고 나서 제 무식을 탓하며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상합니다. 제가 들어간 곳이 8관이 맞고 티켓에도 8관이 맞습니다. 제목도 ‘언힌지드 맞습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혹시나 싶어 옆 7관을 들어갑니다. 맙소사 그냥 텅 빈 영화관입니다. 직원을 찾고 싶었지만 그 층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설마 하고 티켓을 처음과 끝을 찬찬히 살핍니다. 맙소사. 티켓에는 당당하게 오늘(화)이 아닌 수요일로 되어 있었습니다. 카톡 예매를 확인하니 수요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애초에 예매 자체를 수요일로 한 것입니다. 직원도 발권을 하면서 검사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긴 당연합니다. 내일 밤 영화를 오늘 밤에 발권하러 오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결국 집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상사에게 이야기하고 취소 가능하면 취소하고 다른 분에게 드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앱에서는 오프라인 티켓이 발권이 되어서 취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지금 이 디지털 시대에??! 한국이 디지털 최강국 아니었나요?!


이해가 가지 않지만 영화 세계에서는 오프라인 티켓의 위력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결국 퇴근 후에 딱히  일도 없는지라 다시 롯시에 갑니다. 이번에는 정시에 도착했지만 배가 너무 고파 편의점에 들리느라 9시 15분쯤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도 롯시는 조용했습니다. 이미 티켓이 있기에 바로 어제와 같은 곳으로 갑니다. 이번에는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 또 제 주변에 아무도 없는 자리에 앉습니다. 어제보다 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영화가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뭔가 이상합니다. 남주 여주가 사랑하다 헤어졌다는 내레이션과 뭔가 달달한 느낌으로 영화가 시작합니다. 설마 했습니다. 다시 검색해 보니 또 잘못 들어왔습니다. ‘언힌지드’가 아닌 ‘애프터 : 그 후’에 들어온 것입니다.

러셀 크로우의 젊은 시절 이야긴가...?


어떻게 이런 일이  번이나 일어나지?!

라는 당혹감으로 관을 나와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잘못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7관과 8관이 붙어있어 착각한 것입니다. 결국 8관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뭔가 깨지고 난리난 소리들이 들립니다. 갑자기 안심이 됩니다.

당신을 찾아 어제부터.... ㅜ ㅜ



<드디어 영화 리뷰!! 스포 주의>



러셀 크로우가 영화 내내 으르렁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말도 안 되는 보안의식(휴대폰 비밀번호가 찾기 귀찮아 걸어두지 않음)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갑니다. 도대체 총기가 가득한 나라에서 누구도 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러셀 크로우의 광기에 다들 도망가기 바쁩니다. 이 영화에게 고마운 건 10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입니다. 동기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빌드업이 엉성하고 말도 안 됩니다. 휴대폰 비밀번호가 귀찮아 걸어놓지 않은 여주가 충격적이지만 주변에 실제로 그런 지인 2명이 있습니다. 둘 다 여성입니다. 그렇기에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러셀 크로우는 여주의 휴대폰을 훔쳐 가족들의 주소를 알아내서 찾아가 죽입니다. 주소록에는 놀랍게도 번호와 함께 가족들의 주소가 깨알같이 적혀 있습니다.

세상에 비밀번호 찾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주인공이 지인들 주소를 깨알같이 적어 놓는다는 게 말이 될까요? 


그리고 서로의 휴대전화로 위치를 추적하는데 실제로 해보면 이렇게 정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그 근방이라고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지금 우리 뒤에 있어!!”라고 굉장히 정확하게 표시됩니다. 여기저기서 억지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감독의 처절한 빌드업이 보입니다. “아, 그러니까 이 부분은 아까 미리 떡밥 던져놨으니까 이상한 거 없지? 그렇지?”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듯한 클리쉐들이 너무나 눈에 띄게 설치해 두었습니다. 100분조차 ‘이 간단한 사건을 어떻게 이렇게 경찰과 시민들이 무력하게 당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가득해집니다.

이제 영화를 보고 나옵니다. 코로나 이전의 영화관 풍경이면 여기저기 관에서 영화가 동시에 끝나 사람들이 몰려나와 화장실, 복도가 북적거립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사람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애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틀 동안 어이없게 그린란드, 애프터: 그 후, 언힌지드를 봤습니다. 

영화관을 잘못 들어가 한동안 보다가 나왔지만 이 과정에서 누구의 터치도 받질 않았습니다. 

사실 터치를 너무나 받고 싶었습니다. 제발 중간에서 저의 의미 없는 방황을 멈추어줄 직원이 절실했지만 9 이후의 롯시는 너무나 고요했습니다.


이틀동안 이상한 사람처럼 극장 이곳 저곳을 휘저어 다녔지만 누구의 터치도 받지 않, 못했습니다. '언힌지드'의 러셀 크로우는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소외되어서 미친짓을 저지릅니다. 저 또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해 영화관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순간 그의 광기가 이해가 됩니다.


제발...롯시.. 나에게 관심 좀 가져줘
제발 롯시! 난 지금 마음만 먹으면 매일 밤 이렇게 찾아와서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단 말이야!! 나 좀 말려줘! 제발 티켓 검사좀 해달란 말이야!! 제길 날 좀 봐줘! 저 멀리서 "고객님 티켓 확인 도와드릴게요!" 라고 해달란 말이야!!



마음만 먹으면 나쁜 의도로 얼마든지 영화관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발걸음을 당당히 하고 ‘난 예매한(적 없는) 표를 갖고 있어. 그리고 지금은 늦어서 빨리 가야 해’라는 표정으로 다급히 4층으로 가면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천하지 않습니다. 영화관에 들어간 순간 중간중간 띄엄띄엄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 형체(사람) 보는 것도  섬뜩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테넷같이 핫한 영화가 나오면 돈 주고 보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게 코로나로 인한 영향의 일부로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영화관의 믿을  없을 정도로 조용해졌습니다. 그나마 테넷때 잠깐 북적거리고 대부분의 날들은 제가 경험한 날과 비슷할 것입니다. CGV 경우 작년 대비 -90%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갖고 있으니 더 이상의 언급은 무의미합니다. 그 결과 직원의 감축과 저처럼 방황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는 극장가들.. 몸소 체험했습니다.

9시가 되면 운영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 쓸쓸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영화 내용보다도 이틀간 경험한 영화관의  피부에  닿았습니다. 기업 걱정은 하지 않지만 여기에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는 과연 언제까지 닫혀 있어야 할까 가슴이 아픕니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 뒤로 황급히 커플이 탔습니다. 본의 아니게 커플의 대화가 들렸습니다.

여 : 자갸~ 우리 내일 여행 가는 거 실화냐?
남 : 난 안시른데?
여 : 아니, 시른게 아니라 실화냐고~~!
남 : 어 난 너 안 시른데
여 : 앗!힝!엨!훅! 꺄~

개같은 추임새와 함께 글을 마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같은 추임새는 패러디 드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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