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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Oct 13. 2020

저임금과 택배대란이 불러온 나의 불면증 이야기

공정택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계속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악몽을 꾸기도 하고 밤새 뒤척이기를 반복했습니다. 예전에는 일주일 중 바로 잠드는 날이 4일 이상 되었는데 최근에 일주일 내내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생활패턴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저녁 9시 10시쯤 자고 새벽 1~2시에 일어나 깨어 있습니다. 그러다 4시쯤 잠들고 다시 일어나면 9시, 10시가 됩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오전 스케줄이나 휴일 오전은 완전히 날려버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주말이 되면 아예 침대속에 있다가 정신 차리고 씻고 나오면 오후가 되어 버립니다. 여기서 또 비몽사몽 하면서 저녁때쯤 돼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새벽에 잠들고 이런 패턴이 계속되자 제대로 일하거나 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베개가 문제인가 생각도 했지만 이전에는 잠만 잘 잤습니다. 아니면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어느 순간 안 좋은(?) 영, 귀신이 들러붙었나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눈을 뜨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내가 커피를 얼마나 마셨지?


원래 커피를 좋아했습니다. 일하는 곳에도 머신이 있고 다들 커피를 좋아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보통 하루 4잔 정도 마시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잠은 잘 자는 편이었습니다. 밤에 친구와 그란데 사이즈 커피를 마시고도 수다 떨고 잘 자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카페인에 약한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도 카페인에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제 행보를 살펴보니 도를 지나치긴 했습니다. 일단 던킨 커피를 구독했습니다. 매일 아침 던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잠깐의 행복을 맛보곤 했습니다. 때로는 퇴근길에 마시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하는 곳에서도 여러 잔을 마시는데 거기에 한잔 더 추가한 꼴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 모종의 이유로(아래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캔커피를 구입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캔씩 먹기도 하고 자기 전에 마시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콘트라 베이스 아메리카노 500ml를 또 구입했습니다. 자기 전에 물을 마시긴 심심해서 시원하게 한 캔씩 마시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카페인을 몸에 들이 붇고 있었습니다.


일단 던킨 구독을 제외한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아침에 마신 후 자기 전까지는 마시지 않기로 했습니다. 원래 실험이 양 극단(?)의 결과를 봐야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 것을 먹을 때는 항상 커피가 있었습니다. 단 것만 먹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먹는 디저트류 대부분은 어마어마한 설탕이 들어갑니다. 이걸 그대로 먹는다면 부담이 됩니다. 커피는 이러한 설탕의 부담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과도 같습니다. 달콤한 치즈케이크, 쿠기, 초콜릿 등 대부분의 단맛은 아메리카노가 깔끔하게 지워주면서 단맛에 대한 죄책감을 지워줍니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고 아이스크림, 쿠키 등을 먹으려고 하자 자연스럽게 안 먹게 됩니다. 일명 갈고리 효과로 연쇄적으로 먹는 간식이 줄어들었습니다. 

커피는 단 디저트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면죄부와도 같습니다.(무료 이미지 사용해서 제작)



첫째 날, 저녁이 되면서 두통이 심해졌습니다. 

뭔가 계속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커피만큼은 절대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해서 머리는 지끈거립니다. 신기한 건 오히려 피곤하지는 않았습니다. 


신기하게 12시가 지나자 잠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듭니다. 또 새벽 3시쯤 어중간하게 깨어서 또 6시까지 서성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 자신을 믿어보고 잠들어 보기로 합니다. 


어느 순간 눈이 떠졌습니다. 

비싼 안대를 쓰고 잠들었기 때문에 아직은 눈앞은 깜깜합니다. 

(안대와 관련된 글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5375560)

순간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또 새벽 3시, 4시면 어떡하지? 


이전보다 깊게 잠들었던 느낌은 있었습니다. 꿈을 꾸긴 했지만 악몽도 아닌 두서없는 개꿈이었습니다. 초조해집니다. 시간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조심스럽게 안대를 벗자 환한 빛이 눈을 직격 합니다. 순간 아침이구나! 하는 생각과 시계를 봤습니다. 아침 8시. 성공이었습니다. 괜히 기뻐져 순간 혼자 웃었습니다. 


대략 6시간 정도 자는 데 성공했습니다. 상으로 던킨에서 구독하는 커피와 도넛을 사 왔습니다. 카페인 때문에 잠들지 못했던 상 치고는 아이러니 하지만 역시 아침에 커피와 당만큼 빠르게 정신 차리게 하는 건 없습니다. 


둘째 날, 오늘도 깊은 잠을 잤습니다. 

간간히 꿈을 꾸긴 했지만 일어나서 바로 잊어버릴 정도의 얕은 꿈이었습니다. 이전의 악몽들처럼 강렬하게 기억에 남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건 최근에는 7시간은 자야 했는데 이번에는 5시간 정도 자도 피곤하지가 않았습니다. 바로 일어나 던킨 커피 한잔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쓴 건 단 걸 끌어당깁니다. 커피를 안 마시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단것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커피 한잔을 뽑으면 자연스럽게 단 쿠키를 부담 없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단 쿠키만 먹기는 부담스럽습니다. 결국 잘 안 먹게 되었습니다.


커피 대신 트와이닝 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워낙 강하고 쓴 커피맛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보다 약한 차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차들에도 카페인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하루 두 잔을 마셔보았습니다.

일요일 친구를 만나 조금 무리를 했습니다. 소금 라테를 마시고 그만 마셔야 했는데 갑자기 방탕해져서 아메리카노를 한잔 더 마셨습니다. 


이후에 집에 들어와 보통 쉬면 잠깐 잠들곤 했는데 이제는 아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카페인에 엄청 예민해졌습니다. 다만 생기 넘치게 깨어 있는 게 아니라 쉬고 싶은데 못 쉬는(?) 그런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충분히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게 카페인 때문이었고 카페인을 줄이니까 불면증은 자동으로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왜 최근에 커피를 갑자기 많이 마시게 된 걸까?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생각해 봤습니다. 어쩌다 내가 이 지경까지 되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생활 패턴을 분석해 봤습니다. 


평소 제로콜라나 탄산수 등 물보다 음료수를 많이 마시는 편입니다. 제로콜라와 탄산수, 커피는 주로 직장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려 마십니다. 보통 퇴근하고 나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제로콜라(355ml)한 캔을 마시는 게 그 날의 마무리 의식(?)입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음료수가 끊기지 않게 기한을 넉넉히 두고 주문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최근 모 쇼핑에서 제로콜라 48캔을 주문했는데 배송이 굉장히 늦었습니다. 


추석 전에 주문한 콜라가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 12일에 배송이 완료되었습니다. 무려 20일 이상 걸린 것입니다. 그 사이 콜라를 마시지 못해 뭔가 심심하던 차에 대체할 음료수로 고른 것이 다른 커피 음료들이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아무 생각 없이 1+1, 2+1 할인하는 콘트라 베이스, 맥스웰 콜롬비아를 집어 들었습니다. 특히 자기 전에 입이 심심(?) 하니 아무 생각 없이 커피캔 하나씩 마시던 것이 큰 화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살짝 억지를 부리면 제로콜라의 배송이 늦어진 점 때문이었습니다.

내 불면증의 원인들.. 참고로 둘 다 맛있지만 카페인이 많습니다.

물론 쇼핑몰에 항의를 하거나 독촉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추석도 있고 분명 택배 대란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마냥 기다렸습니다. 무엇보다 인터넷에 현재 cj대한 통운 택배 대란 사진을 보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결국 해당 기사들을 찾아본 결과 이 일이 올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의 매년 꾸준히 있었고 파업사태까지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내는 배송비 2500원이 그대로 택배회사로 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택배회사와 쇼핑몰에서 계약을 맺는데 협상을 합니다.


쇼핑몰 : 우리가 너네 택배만 쓸 테니까 택배비 좀 내리자.
택배 :  얼마 나요...?
쇼핑몰 : 현재 2500원에서 2000원? 어때?
택배 : 네???!!
쇼핑몰 : 흠.. 코로나로 택배 늘어난 거 알지? 너네도 돈 많이 벌 수 있는 기회야. 1800원!
택배 : 네....


그럼 나머지 700원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당연히 쇼핑몰의 수익금입니다. 제품 판매 수익에 고스란히 택배 기사의 몫까지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런 걸 ‘백 마진’이라고 하는데 적게는 400원에서 많게는 7~800원까지 쇼핑몰에서 가져갑니다. 결국 이 피해는 내려가고 또 내려가 우리에게 물건을 배달하는 기사님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400원이 큰돈이냐? 하시는 분들도 이렇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월급을, 또는 사업장의 매출의 2~30%를 챙겨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괴로움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릴 것입니다. 


또한 자료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모든 건 오르지만(제 월급도 제외) 택배비는 기이할 정도로 단가가 내려갔습니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택배비는 5000원, 그 당시 물가로 치면 꽤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 20년이 지날수록 택배회사의 경쟁이 심해져 지금의 가격까지 내려왔습니다. 온라인 시대에 택배 수요는 엄청나게 늘어났고 특히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거의 폭발적인 수요가 있었지만 그 만한 대가가 택배회사에, 기사님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게 충격입니다. 


그 외에도 택배기사의 고난은 계속됩니다. 모 신도시 아파트에서는 주차장 높이로 인해 밖에서부터 카트로 끌고 들어오라고 하질 않나 코로나로 늘어난 물량으로 과로사라는 참극도 빛어집니다. 2020년 상반기에만 12명의 택배기사가 고된 노동으로 인해 과로사했고 심지어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제 불면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국 콜라는 도착했습니다.

제로 콜라가 도착했을 때 저도 모르게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콜라라도 하나 드릴까 생각했지만 너무 오지랖인 거 같아 그러질 못한 게 후회됩니다. 다음부터는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택배비 2500원도 아까워 무료배송을 찾거나 배송비를 아끼려던 제 자신이 조금 창피해집니다. 세상은 복잡합니다. 누군가의 이익이 다른 누군가의 손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택배비를 아까워하던 소비행태가 궁극적으로 이런 참사를 불러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커피에는 공정무역 커피, 착한 커피라는 마크가 있습니다. 기업에서 농장주에게 정당한 값을 지불한 커피콩을 사 왔다는 뜻이죠. 덕분에 커피콩 농장의 주인은 아이를 일터 대신 학교에 보낼 수 있습니다. 택배에도 착한 택배, 공정택배와 같은 개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낸 택배비가 고스란히 택배회사에, 기사님에게 전달된다면 조금이라도 그런 곳에서 물건을 사는 게 세상을 조금 더 바꾸지 않아 생각해 봅니다. 


한번 만들어 본 공정택배 스티커. 이런 제도가 생기면 기사님들의 처우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료 도움

인터넷 쇼핑몰 배송비, 2500원의 진실

https://www.nocutnews.co.kr/news/4119346


CJ대한통운 택배대란이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이유

https://byline.network/2018/12/30-39/


CJ대한통운發 택배 대란의 전말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595229/1


택배 기사 과로사, 올 상반기에만 12명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2008122035015#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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