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고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뉴스나 신문에서 구독 경제에 관한 기사가 많이 나오지만 정작 사용기를 본 적이 없어 직접 작성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래 글은 9월 첫 구독부터 느낀 점들을 한 문장씩 쓴 것들을 모은 것입니다. 9월부터 작성한 거라 계절의 변화(초가을-> 겨울)와 해피포인트 앱이 한번 대대적으로 업데이트된 것이 반영되어 있지 않고, 현재 거리두기 2단계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감안하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던킨 커피를 좋아합니다. 던킨 특유의 진한 맛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스트로베리 필드 한입을 먹으면 그 순간 천국이라 생각합니다. 좀 오래된 기사긴 하지만 2012년에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도 1위를 했고 17년부터 도넛에 대한 투자보다 커피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출처 : http://www.ttimes.co.kr/view.html?no=2018011913227717865)
하지만 자주 사 먹지는 못합니다. 가격과 할인 수단이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이디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기준 2천 원 후반대의 가격과 넓은 매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던킨 커피는 3천 원 중반대부터 시작합니다. 테이크 아웃으로 하기에는 살짝 부담되는 가격입니다. 매장을 2시간 정도 이용하기에는 적당하지만 단순히 테이크 아웃만 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할인 수단도 없습니다. 스타벅스는 웬만한 신용카드에서 할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국민 파인테크 카드의 경우 무려 50%라는 무시무시한 할인율을 자랑합니다. 때문에 아까워서라도 스타벅스에 갑니다. 하지만 던킨은 통신사 할인이나 신용카드 포인트 사용 정도입니다. 그나마 해피포인트에서 5%씩 적립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 정도가 되니 던킨 커피가 스타벅스 커피보다 저렴해도 왠지 더 비싸게 느껴집니다. 집 앞에 던킨 도넛이 있어도 자주 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나마 매월 1~3일 신한카드에서 1만 원 이상 구매 시 5천 원 페이백 해주는 이벤트 때 가서 사 먹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던킨은 엄청난 유혹을 합니다. 바로 한잔에 990원, 30일 29,700원이라는 구독형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일명 <매거진 D>라는 프로젝트로 던킨 커피가 그리웠던 사람들에게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사실 던킨은 이전에 2개의 구독 서비스를 시범 운영했습니다. 하나는 동일한 커피 구독제였고 또 하나는 모닝 콤보를 매일 주는 서비스였습니다. 모닝 콤보의 경우 39,000원으로 한 끼당 1300원의 가격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식 <매거진 D>에서는 커피 구독만 런칭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모닝콤보 구독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지만 39,000원의 가격은 상당히 부담스러웠습니다. 매일 아침 모닝콤보를 먹을 수 있지만 시간의 제한(11시 30분까지)과 코로나로 매장 내 식사가 제한된 점, 무엇보다 매달 1만 원 겨우 소비하는 던킨에 39,000원을 소비하는 게 큰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이유로 커피 구독도 상당히 망설여졌습니다. 매달 커피 한잔 살까 말까 한 던킨에 3만 원은 큰돈이기 때문입니다. 매달 커피값도 3만 원이 안 나옵니다. 더구나 코로나로 사람들 모임도 없어졌기 때문에 커피숍에 갈 일도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던킨의 구독제는 가격과 시기상의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맛있는 던킨 커피를 매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매일매일 던킨에 들려 아무런 부담 없이(정확히는 한 번에 부담을 하고) 커피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결국 떨리는 손으로 해피 포인트 앱에서 매거진 D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구입하고 나서 뭔가 살짝 후회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에 3만 원짜리 커피를 구입했는데 그만한 리액션이 없었습니다.
보통 잡지를 구독하면 창간 기념품이나 화려한 페이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매거진 D는 축하나 감사멘트가 없습니다.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 한마디 못하나?’라는 꼰대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달랑 해피 앱에서 구독 결제 알림 카톡만 옵니다. 마치 적당히 가까운 친구가 한번 놀러 와 해서 놀러 갔는데 막상 와보니 냉담한 표정의 친구를 보는 느낌입니다. ‘정말 온 거야?’라는 듯한 민망함처럼 구독해도 아무런 메시지가 없습니다.
심지어 구독 바코드도 찾아 한참 헤매었습니다.(이전 버전 앱) 해피 앱에서 어떻게 이리저리 십분 넘게 찾아다니고 나서야 볼 수 있었습니다. 구독 탭(tab)을 급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구매 쪽을 겨우 뒤져야 나왔습니다. 나중에 찾기 또 짜증 나서 그냥 캡처해놓고 카톡에 저장했습니다.
창간 기념 4종 쿠폰도 준다고 합니다. 월요일에 시작했으니 월요일에 바로 보내주면 좋을 텐데 금요일에 보내준다고 합니다. 아마도 취소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취소 못하게 되는 날짜가 금요일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 구독 덕분에 꾸준히 던킨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 자체로 기쁩니다. 던킨 마니아는 아니지만 항상 던킨 커피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할인 수단이 별로 없다 보니 순수하게 커피만 마시기엔 돈이 좀 아까웠습니다. 하지만 구독 덕분에 매일 마시게 된 것만으로도 사실 기쁩니다.
아침에 일어나 털레털레 갑니다. 머리도 감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갑니다. 원래 테이크 아웃하려고 했으나 매장에 아무도 없어 잠시 앉아있다 가기로 합니다.
한입 마십니다. 맛있습니다. 하지만 아침이라 배고픕니다. 여기서 던킨 기획자의 미소가 보입니다. 저도 모르게 도넛 앞을 서성거립니다. 기획자의 ‘씩’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맞습니다. 커피만으로는 빈속을 채우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씁쓸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조건반사로 단 것에 대한 욕망이 커집니다. 어설프게 칼로리를 보지만 무지막지합니다. 던킨에서 저칼로리를 찾는다는 건 무의미합니다.
결국 커피 한잔이 아니라 도넛도 먹게 되었습니다. 구독하기 전에 예상했음에도 이렇게 첫날부터 도넛을 찾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말이 좋아 구독이지 갈고리 경제라는 새로운 용어가 떠올랐습니다. 한번 구독하고 가다 보면 결국 도넛이나 새로운 신제품에 눈이 돌아갑니다. 요즘은 아예 캠핑용품이나 특이한 사은품까지 더해서 ‘덕질’을 하게 만듭니다. 이쯤 되니 구독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낚아버리는 갈고리 경제 같습니다.
실제로 3일에 한 번꼴로 도넛도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도넛은 사탄의 음식이자 다이어트하는 사람은 절대 손대서는 안 되는 금지된 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커피를 받으러 매장에 들어선 순간 달콤한 도넛 냄새가 종업원의 인사보다 먼저 다가옵니다.
혹시라도 할인쿠폰이 있나 해피 앱을 실행시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평소 포인트 적립 외에는 실행시킬 이유가 없는 해피 앱을 구독 후에는 수시로 실행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피 앱에서 보여주는 광고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연스럽게 기업이 원하는 소비자가 되어갑니다.
결국 이런 음모론(?)까지 생각납니다.
‘애초에 커피는 원가 수준의 미끼고 진짜 목적은 해피 앱의 광고를 보게 만드는 인간이 목표인 건 아닐까?’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엔**너스에서도 커피 구독 서비스를 한다는 광고를 봤습니다. 슬쩍 다가가 가격표를 살펴봅니다.
1달에 10잔 25000원.
순간 한숨이 나옵니다.
그것밖에 안되나?
이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결국 4천 원 커피를 적당히 할인해서 2500원으로 하겠다는 겁니다. 던킨처럼 한잔에 990원이라는 파격적인 할인율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손해보지 않겠다는 뭔가 살짝 ‘지질함’이 보입니다. 심지어 또 하나의 상품이 보입니다. 반미 샌드위치와 커피, 일주일에 한 번꼴로 총 4회 제공으로 24,000원입니다.
아니, 저것밖에 할인이 안돼?!
아니시에이팅이 나옵니다. 던킨은 이전에 모닝콤보를 30일 연속 공격(?)으로 회당 1300원이라는 기적의 가격을 보여준 것에 비하면 너무나 약한 할인율이었습니다.
이 생각을 할 때쯤 ‘아 나는 이미 던킨 쪽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리학 용어 중 ‘확증편향(確證偏向, 영어: Confirmation bias)’이 있습니다.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 신념을 확인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이미 던킨 커피를 구독했기에 모든 것은 던킨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 다른 커피 구독 서비스는 하나같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엔***스 관계자분은 이 글을 보시더라도 속상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구독권을 구입한 소비자의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알고 보니 대부분 커피 업체, 베이커리 업체에서 커피 구독 서비스를 론칭한 걸 알았습니다. 대부분 가격대를 2~3만 원대로 맞추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깨달은 것은 사람 심리상 3만 원까지가 ‘뭐 한번 써보지’라는 마지노선이라는 것입니다. 원데이 클래스도 대부분 3만 원 정도 합니다. 캘리그래피, 간단한 꽃꽂이, 뭔가 딱 한번 배우는 클래스의 경우 대부분 3만 원대입니다.
만약 3만 원이 넘어가면 사람은 무언가 기대하게 됩니다. 4만 원이 되면 기존의 서비스에서 좀 더 무언가를 원하게 됩니다. 어설픈 쿠폰을 준다면 코웃음 칠 것입니다. 이미 던킨에 3만 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모험입니다. 아마 구독 서비스가 좀 더 궤도에 오르면 색다른 서비스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충성적인 고객을 만들려면 기업 측에서도 모험을 해야 합니다. 다른 업체의 구독 서비스를 보면 의도가 뻔히 보입니다. 예를 들어 대형 마트의 커피 구독 서비스는 굉장히 저렴합니다(4천 원대 수준) 너무나 명확하게 커피를 통해 자신의 매장에 추가 구매를 목적으로 합니다. 버거*의 경우도 하루에 100원이면 매일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의도가 너무 보입니다. 커피는 어디까지나 미끼라는 게 느껴집니다. 진심으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곳에서 매일 커피를 마시고 싶진 않습니다. 투*의 경우는 한 달 안에 쓸 수 있는 쿠폰 4장을 판매할 뿐입니다. 말이 구독이지 그저 할인권인 셈입니다.
이런 기업들의 특징은 자신의 킬러메뉴는 내놓지 않거나 구색 맞추기 용으로 적당한 가격으로 할인한 것뿐입니다. 하지만 던킨은 다릅니다. 커피가 메인 아이템이고 자신의 메인 아이템을 리스크를 감수하고 파격적인 가격에 출시했습니다. 워낙 파격적이고 솔직해서 다른 의도는 신경쓰이지 않습니다.
이정도 딜이면 소비자로서는 상당히 기쁩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소비자도 당당히 지갑을 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거부감 없이 던킨의 다른 제품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느낀 점은 구독 경제를 하려면 소비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구독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설픈 의도(미끼, 적당한 할인률 등)로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다음번 글에서는 구독하면서 느낀 장/단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