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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Dec 01. 2020

던킨 커피 구독(매거진 D) 후기 2/2

구독은 소비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


(이어서)



현재 던킨 커피 구독을 3개월째 접어들었습니다. 대략 60일이 지난 시점입니다. 100일 다이어리라고 아시나요? 자기 계발서를 보면 100일간 소원을 적거나 100일간 습관을 만들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성공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100일이라는 시간은 그런 개념입니다. 곰도 100일간 마늘을 먹으면 사람이 되듯이 구독 서비스도 100일이 된다면 완전히 익숙해 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2개월이 끝날 즈음에 원래 구독을 취소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관성이 생긴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벤트가 아닌 순수하게 내 돈을 주고받는 서비스인 만큼 구독이 마감될 즈음에 고민을 합니다.


굳이 매일 커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가 뭘까?
다른 대체제가 충분히 있지 않나? 회사에는 커피 머신이 있고 다른 모임 공간에도 네스프레소 머신이 있어서 캡슐만 사도 된다. 그럼에도 굳이 29700원을 또 결제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집에도 드립을 할 수 있는 원두와 기기가 있다. 그럼에도 구독을 해야 하나?


이제 겨울이다. 밖에 나가는 것도 춥고 귀찮다. 굳이 구독해서 고생할 필요가 있나?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또 구독을 했습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커피가 맛있으니까.


특히 맛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겁니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처럼 어설픈 할인이 아니라 확실히 매력적인 가격입니다. 그렇기에 구독을 결정했습니다.



대체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나 모임공간에 기본적으로 네스프레소 머신이 있습니다. 캡슐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심지어 호환 캡슐도 있기 때문에 종류는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맛있지는 않습니다. 역시 원두를 갈아서 기계로 내리는 머신보다 압력도 약하고 신선도도 떨어집니다. 개인적으로 몇 번이나 네스프레소, 돌체 구스토를 구입하려 했으나 맛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머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만 원짜리 머신을 구입한다 한들 실제 업소에서 사용하는 전문 머신에는 못 미칩니다. 대체제들은 간편하고 더 저렴할 수 있으나 ‘맛’에 있어서는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던킨에서 사용하는 머신. 기계에 대해서는 무지하나 일반 가정용보다는 훨씬 좋은 건 확실합니다.




여기서 구독 상품의 필수 성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핵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핵심은 바로 맛입니다.


또 다른 예로 에버노트가 있습니다. 지금도 워낙 욕을 많이 먹고 있지만 모든 사용자들의 목소리는 ‘진짜 해지하고 싶지만 대체제가 없다’입니다. 다양한 기기를 동시에 지원하고 동기화하는 에버노트의 핵심은 범용성입니다.


또 다른 예로 최근 교육시장 전반을 독점하고 있는 화상회의 앱 줌(ZOOM)입니다. IT 관계자분들은 이 앱이 얼마나 보안에 취약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관련 뉴스를 많이 접했기에 줌 대신 다른 앱을 사용했으나 줌이 훨씬 편리하고 다양한 기능이 있음을 알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국이 내 정보를 보든말든 사용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대체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체 불가능성이 던킨에서는 맛입니다. 이 단순한 이유가 결국 구독으로 이어졌습니다. 집에서 드립을 해서 마시든, 좋은 캡슐을 사서 마시든 간에 ‘이 맛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구독 상품은 모든 것을 잘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잘하면 가격이 부담될게 뻔합니다. 대신 한 가지 대체 불가능함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는 아쉬운 점을 알아보겠습니다.


ㅇ 홍보에 대한 의지가 없다.

커피 전문점에서 구독은 미끼 상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까지 대세가 공유경제였다가 코로나로 구독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무한대의 공유가 가능한 디지털 콘텐츠는 현 상황에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나 왓챠 등 영화 구독 서비스의 성장률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산업의 특징은 디지털입니다. 무한 복제가 가능하기에 수백만 명에게 복제된 콘텐츠를 쉽게 전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아날로그, 현물 중심의 기업들은 현재 진퇴양난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임대료에 대한 부담, 그에 따른 수익성 악화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수익을 찾으려면 최근 트렌드에 올라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뭐든 구독이란 단어를 붙여봅니다. 버거*의 경우도 햄버거 구독이라는 참신한 아이템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커피 구독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매거진 D>도 그렇게 탄생했고 가격대도 파격적입니다. 이전 글에서 댓글로 과거 던킨 점주였던 분이 제기한 의문이 있습니다. ‘과연 점주에게 얼마나 수익이 돌아갈 것인가’ 기존 던킨 커피가 3500원이었는데 990원으로 4분의 1 토막난 가격으로 판매한다면, 점주나 본사도 분명 많진 않을 것입니다. 정확한 금액은 알 길이 없으나 확실한 건 홍보할 만한 예산이 많지 않을 것이다 라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구독에 관한 홍보는 9월 첫 출시 때 잠깐 한 것 빼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해피 앱에서도 구독 서비스 탭을 찾으려면(현 버전 기준) 한참을 헤매거나 불편하게 몇 단계를 거쳐서 들어가야 합니다.


해피 앱뿐만이 아닙니다. 투썸도 OK 캐시백 앱을 통해 구독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검색하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마치 보물찾기처럼 숨어 있었고 설령 구독한다 하더라도 어떠한 환영 멘트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ㅇ 구독을 종료할 때에도 연장에 대한 멘트가 없다.

멜론을 해지해 본 적 있나요? 아마 해지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그야말로 처절함의 연속입니다. 왜 해지하냐, 한 달 더 구독해봐라, 지금 해지하면 두 번 다시 할인된 가격에 못 들어(?) 온다 등등 다양한 멘트로 해지방어를 합니다.


어릴 적 대문 앞에 조선일보 사절이라고 붙여도 계속 쌓아놓는 배짱을 던킨 커피 구독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냥 유효기간 끝나면 끝입니다. 적어도 연장 가능하도록 링크라도 주면 좋겠지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홍보 의지가 없는 이유와 비슷한 것일까 추측해 볼 뿐입니다.


결국 이렇게 직접 인스타를 팔로우 해서 DM을 보내서야 답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두고 보면 구독 서비스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이익은 적지만 확실한 고객으로 만들어 부가 매출을 올린다.(노예를만든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만큼 고객의 충성도만큼은 확실히 올라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2~3일에 한 번씩은 꼭 도넛을 구입하고 해피포인트 앱에 접속하는 일도 훨씬 잦아졌습니다. 그만큼 SPC라는 기업이 원하는 정보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파리바게트의 신제품을 알게 되었고 파리 크로와상, 파스쿠찌의 할인 정보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내 돈을 주고 기업의 광고를 보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 손에는 커피 한 잔을 들고선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손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 개인정보야 100원? 10원 정도밖에 안 하기 때문에 990원의 커피와 비교하면 숫자적으로는 이득이지만 지속적인 광고 노출과 실제적인 도넛 구입 비용을 생각하면 계속 손해를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9,10월 달은 이전 달과 비교하면 커피와 도넛에 돈을 ‘미친 듯이’ 써 재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1만 원 이상 5천 원 할인 이벤트를 할 때는 아예 모닝세트를 미리 쟁여놓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정확한 금액은 계산해 봐야겠지만 적어도 던킨에만 한 달에 5만 원 정도는 충분히 소비했습니다. 구독하기 전에는 한 번도 가지 않거나 할인할 때만 갔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소비 증가입니다.


ㅇ 카페인 + 당류(도넛) 섭취량이 늘어났다.

물론 이전에도 하루에 커피는 기본적으로 3잔 이상 마셨습니다. 하지만 던킨이 추가되면서 한잔을 덜 마시는 게 아니라 그저 ‘+’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면증도 생겼습니다. 꼭 던킨 탓은 아니지만 늘어난 카페인 양만큼 이전보다 잠을 잘 못 자게 되었습니다.


결국 중간에 던킨 커피를 제외하고 커피를 마시지 않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그러자 다행히 카페인이 줄어들어서인지 수면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카페인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도넛을 자연스럽게 섭취하면서 얻은 칼로리와 뱃살과의 증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원체 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알아내긴 어려웠습니다. 그냥 밖에 많이 돌아다지니 않아서 살이 찐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외 생각난 자잘한 생각들을 나눠보겠습니다.


ㅇ 모닝콤보 구독 서비스를 만들면 어떨까?

사실 매일 커피를 마시면서 중간중간 모닝콤보도 먹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생각난 건 어머니였습니다. 커피도 직접 타는 것보다 누군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자 굉장히 편했습니다. 만약 모닝콤보처럼 아침식사도 구독제로 한다면 어르신들에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나이가 들면 스스로 무언가를 차려 먹는 게 힘들다고 합니다. 자식 먹을 것은 살뜰히 챙기지만 정작 본인은 대충 때우시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비단 우리 부모님 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님의 공통점입니다. 만약 자식이 구독 서비스를 신청해서 부모님께 선물한다면 적어도 하루 한 끼 정도는 자식의 도움으로 해결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직접 돈 주고 사 먹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지만 유효기간과 하루 1회라는 제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제한이 의외로 강제성이 있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합니다. 하루 한번 산책하면서 어떻게든 들르게 한다면 운동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으론 워낙 커뮤니티에서 노인분들의 진상 썰을 많이 봐왔기에 이 아이디어는 괜히 아르바이트생들을 더 괴롭힐 수가 있겠다 싶어서 더 깊이 생각하기를 관두었습니다.


ㅇ 아아를 들고 강제 산책하는 재미가 있다.

아침 일찍 커피 한잔을 받기 위해 나옵니다. 커피를 받고서 집까지 가는 길을 일부러 길게 동선을 짭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 돌아가는 모습도 보고 맛난 커피 한잔이 손에 있으면 뭔가 세상 부러운 게 없습니다. 지금은 많이 추워져서 롱 패딩을 입고서 산책하지만 이것도 재미있는 일상의 변화입니다.


ㅇ 커피는 퇴근보다 출근할 때 마시자.

지금까지 4번 실패(?)를 했습니다. 모두 퇴근시간과 경로가 달라지는 변수를 체크 못했기 때문입니다. 몇 번의 야근을 하면서 던킨 지점과의 동선이 안 맞거나 영업 종료 후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처음 안 사실은 점포마다 운영시간이 상당히 다릅니다. 지하철 내 던킨은 8시 30분이면 종료합니다. 그리고 어떤 지점은 종료 30분 전에는 커피 머신을 청소했기 때문에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출근할 때는 그저 변수가 출근하기! 단 한 가지입니다. 하지만 퇴근할 때는 회식이나 동료들과의 일정, 야근 등 변수가 급격하게 늘어납니다. 990원 커피 마시자고 이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가급적 변수가 없는 출근시간 전이나 출근 직전에 테이크 아웃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ㅇ 퇴근 후 30분간의 독서시간도 유익하다.

던킨은 기본적으로 도넛가게회전률이 빠릅니다. 다른 카페처럼 복층인 경우도 드뭅니다. 대부분 소규모에 계산하는 곳과 커피 마시는 곳이 한곳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해서 깊은 집중은 어렵습니다. (아마 이른 아침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퇴근하면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30분 정도 책읽을 만한 시간으로는 괜찮습니다. 가정이 있으신 분들은 아이와 배우자를 맞이 하기 전 잠시 생각을 정리하거나 혼자이신 분들도 집에 들어가기전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적당합니다. 마치 일상의 ‘버퍼 ZONE’ 같습니다. 보통 카페라면 3~4천원 하는 가격으로 30분만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기엔 아깝습니다. 하지만 990원으로 잠시동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론 최고의 가성비 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거리두기 2단계라 한동안은 힘들것 같습니다.)


무엇을 구독해야 할까?

사실 구독 서비스는 전혀 새로울 게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릴 적에 학교에서는 우유 구독 서비스(강제)가 있었습니다. 학원도 구독이었고 급식도 구독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 범위가 생각지도 못한 영역까지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은 일상 무엇이든 구독을 붙여보는 ‘대 구독’의 시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면도기도 구독하고 햄버거도 구독하고 술도 구독하고 과자도 구독하고 빵도 구독하고 그야말로 일단 다 구독해 보라고 합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돈 버는 곳은 줄어드는데 반대로 돈 쓰는 곳은 많아지니 아이러니합니다. 일단 우리 몸에다 어떻게든 매일매일 경험해 보라고 붙여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중요한 건 ‘가장 가치 있는 것’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찾아 구독하는 것입니다.


마무리 - 결국 구독의 끝판왕은 무엇일까요?

생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 출시 예정작인 <사이버 펑크 2077>을 보면 몸 대부분의 장기를 교체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쯤 불로장생 기술이 완료된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영원히 우리 몸을 ‘구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시대는 오지 않았고 지금은 좋으니 싫으나 이 몸을 일정기간 구독하고 있습니다. 구독기간이 끝나면 원래의 세계(종교적인 세계나 공허의 바다나 어디든)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구독기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결국 구독의 끝은 옵니다. 연장도 할 수 없고 원치 않아도 말이죠. 그리고 눈을 감으면 그 누구도 모르는 세계로 이동할 것입니다. 그곳이 어둠의 세계든 빛의 세계든지 간에 지금 제 손에는 던킨 아아가 들려 있습니다. 부디 그곳이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세계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던킨 커피 구독기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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