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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Oct 03. 2022

엄마와 동물의 숲(2) 엄마의 엄마로부터 편지

엄마도 엄마가 있어?

동물의 숲에는 편지함이 있다. 동물 친구들이나 그 외 게임하면서 만나는 캐릭터들이 주인공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낸다.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그런지 매번 내용도 새롭고 관계의 변화에 따라 말투도 변한다. 그 와중에 항상 어머니를 멈칫하게 하는 편지가 있다. 바로 <엄마>가 보낸 편지다.


동물의 숲을 하면 제일 먼저 오는 편지가 바로 <엄마>부터의 편지다. 물론 게임상의 가상의 어머니이지 진짜 어머니가 아니다.


실제로 옆에 어머니가 있어도 왠지 게임상에서 이 편지를 보면 뭔가 울컥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자취하거나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면 게임 속 가상의 어머니 편지라도 순간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림움이 솟구치나 보다.


재미있는 건 우리 어머니의 반응이었다.

어머니는 섬에서 낚시와 채취하는 걸 좋아하시고 그 이상 복잡한 조작법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편지함을 열어 확인하고 아이템을 얻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함께 게임을 할 때 밀린 편지를 처리(?)할 겸 하나씩 읽어본다. 읽다 보면 가끔 <엄마>로부터 선물과 함께 짤막한 편지글을 보게 된다. 원래는 동물 친구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 애는 맨날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요"라든가 "범호는 항상 운동만 해"라고 말하다가 <엄마> 편지를 연 순간 어머니는 잠시 멈칫한다.

"쟤는 누구니?"


"엄마한테 온 거야"


"내가 보낸 거야?"


"아니?! 엄마의 엄마, 즉 할머니가 보낸 거야"


물론 실제 할머니는 아니다. 외할머니는 일산에 살고 계신다. 어머니도 외할머니와 게임 속 <엄마>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모든 게 순전히 프로그래밍으로 이루어진 <엄마> 일뿐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엄마>의 편지를 다른 편지보다 자세히 읽어보신다.


특히 할머니는 아흔을 넘고 나서부터 부쩍 약해지고 있다. 어머니는 매일 전화하면서도 할머니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동숲에서 <엄마>에게 꾸준히 오는 편지와 선물은 어머니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현실의 나이로 인해 점점 약해져 가는 자신의 어머니와 게임 속 혼자 사는 자신을 위해 선물과 편지를 보내는 <엄마>는 과연 내 현실의 어머니에게 어떤 존재일까 의문이 들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어머니에게 직접 짠 방석이나 연필꽂이 등의 선물을 보냈다. 어머니는 다른 동물 친구들이 보낸 선물들은 그저 보관해 놓기만 하지만 <엄마>가 준 선물은 나에게 집에 전시해 놓기를 원하셨다. 지금도 어머니의 집에 놀러 가면 곳곳에 <엄마>의 선물들이 놓여 있다.


어머니의 마지막 흔적이 있는 동물의 숲

한 때 인터넷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가 동물의 숲 게임을 하면서 남긴 선물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가 소아마비를 받고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동물의 숲 게임만큼은 꾸준히 했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우연히 게임을 실행한 주인공은 편지함에 잔뜩 쌓여 있는 어머니의 편지와 선물을 보고 오열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여기서도 오해를 하고 있는 건 편지의 주인공은 현실의 어머니가 아니라 게임 속 <엄마>이다. 다만 주인공이 너무나 감정적으로 복받쳐서 실제 어머니와 동일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약간의 감동 파괴는 있지만 중요한 건 주인공은 그것으로 인해 큰 감정적인 위로를 얻었다는 것이다. 비록 진짜 어머니의 편지가 아닐지라도 어머니께서 꾸며놓은 정원과 수많은 아이템들을 보며 어머니에 대한 흔적을 다시금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도 가끔 <엄마>의 편지를 기다릴 때가 있다. 비록 게임 속 프로그램이지만 현실의 어머니가 보내준 것처럼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신다. 물론 현실의 어머니에게 매일 밤 9시부터 한 시간씩 통화하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가끔 전화를 받지 않을 때는 요양사를 불러 확인할 때까지 전전긍긍 하신다.


"선생님도 엄마가 있어요?"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놀라며 묻는 말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자신에게만 어머니가 있고 성인인 우리에게는 또 윗사람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이 참 순진하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나도 어머니를 옆에서 어머니의 어머니, <엄마>로 부터의 편지를 어머니께 보여줄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엄마도 엄마가 있구나'


외할머니는 나에게 고유한 외할머니로 느껴지지 어머니의 어머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았다. 두 분 다 내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분들이다. 그리고 두 분은 내 사랑 못지않은 강한 모녀간의 정으로 묶여 있다. 이걸 가끔 나는 놓친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가 계시고, 또 <엄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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