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있어?
동물의 숲에는 편지함이 있다. 동물 친구들이나 그 외 게임하면서 만나는 캐릭터들이 주인공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낸다.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그런지 매번 내용도 새롭고 관계의 변화에 따라 말투도 변한다. 그 와중에 항상 어머니를 멈칫하게 하는 편지가 있다. 바로 <엄마>가 보낸 편지다.
동물의 숲을 하면 제일 먼저 오는 편지가 바로 <엄마>부터의 편지다. 물론 게임상의 가상의 어머니이지 진짜 어머니가 아니다.
실제로 옆에 어머니가 있어도 왠지 게임상에서 이 편지를 보면 뭔가 울컥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자취하거나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면 게임 속 가상의 어머니 편지라도 순간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림움이 솟구치나 보다.
재미있는 건 우리 어머니의 반응이었다.
어머니는 섬에서 낚시와 채취하는 걸 좋아하시고 그 이상 복잡한 조작법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편지함을 열어 확인하고 아이템을 얻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함께 게임을 할 때 밀린 편지를 처리(?)할 겸 하나씩 읽어본다. 읽다 보면 가끔 <엄마>로부터 선물과 함께 짤막한 편지글을 보게 된다. 원래는 동물 친구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 애는 맨날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요"라든가 "범호는 항상 운동만 해"라고 말하다가 <엄마> 편지를 연 순간 어머니는 잠시 멈칫한다.
"쟤는 누구니?"
"엄마한테 온 거야"
"내가 보낸 거야?"
"아니?! 엄마의 엄마, 즉 할머니가 보낸 거야"
물론 실제 할머니는 아니다. 외할머니는 일산에 살고 계신다. 어머니도 외할머니와 게임 속 <엄마>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모든 게 순전히 프로그래밍으로 이루어진 <엄마> 일뿐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엄마>의 편지를 다른 편지보다 자세히 읽어보신다.
특히 할머니는 아흔을 넘고 나서부터 부쩍 약해지고 있다. 어머니는 매일 전화하면서도 할머니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동숲에서 <엄마>에게 꾸준히 오는 편지와 선물은 어머니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현실의 나이로 인해 점점 약해져 가는 자신의 어머니와 게임 속 혼자 사는 자신을 위해 선물과 편지를 보내는 <엄마>는 과연 내 현실의 어머니에게 어떤 존재일까 의문이 들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어머니에게 직접 짠 방석이나 연필꽂이 등의 선물을 보냈다. 어머니는 다른 동물 친구들이 보낸 선물들은 그저 보관해 놓기만 하지만 <엄마>가 준 선물은 나에게 집에 전시해 놓기를 원하셨다. 지금도 어머니의 집에 놀러 가면 곳곳에 <엄마>의 선물들이 놓여 있다.
한 때 인터넷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가 동물의 숲 게임을 하면서 남긴 선물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가 소아마비를 받고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동물의 숲 게임만큼은 꾸준히 했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우연히 게임을 실행한 주인공은 편지함에 잔뜩 쌓여 있는 어머니의 편지와 선물을 보고 오열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여기서도 오해를 하고 있는 건 편지의 주인공은 현실의 어머니가 아니라 게임 속 <엄마>이다. 다만 주인공이 너무나 감정적으로 복받쳐서 실제 어머니와 동일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약간의 감동 파괴는 있지만 중요한 건 주인공은 그것으로 인해 큰 감정적인 위로를 얻었다는 것이다. 비록 진짜 어머니의 편지가 아닐지라도 어머니께서 꾸며놓은 정원과 수많은 아이템들을 보며 어머니에 대한 흔적을 다시금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도 가끔 <엄마>의 편지를 기다릴 때가 있다. 비록 게임 속 프로그램이지만 현실의 어머니가 보내준 것처럼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신다. 물론 현실의 어머니에게 매일 밤 9시부터 한 시간씩 통화하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가끔 전화를 받지 않을 때는 요양사를 불러 확인할 때까지 전전긍긍 하신다.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놀라며 묻는 말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자신에게만 어머니가 있고 성인인 우리에게는 또 윗사람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이 참 순진하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나도 어머니를 옆에서 어머니의 어머니, <엄마>로 부터의 편지를 어머니께 보여줄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엄마도 엄마가 있구나'
외할머니는 나에게 고유한 외할머니로 느껴지지 어머니의 어머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았다. 두 분 다 내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분들이다. 그리고 두 분은 내 사랑 못지않은 강한 모녀간의 정으로 묶여 있다. 이걸 가끔 나는 놓친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가 계시고, 또 <엄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