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석 Oct 19. 2023

12화 - 완벽한 잠을 위해 한 일, 깨달음

돌고 돌아 찾은 단순한 진리

안녕하세요.

30 대 후반, 9년 가까이 일한 회사를 퇴사한 후 작년 8월에 평택에 있는 삼성 고덕 반도체 현장에서 숙식 노가다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기서 있었던 일들과 깨달음, 의미 있는 일들을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들은 매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베스트 게시판으로 이동했고 많은 응원과 공감의 댓글이 있었습니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연재중이고 이 글에 대한 반응(댓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게시글 아래에 댓글이 있으며 브런치 댓글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https://m.clien.net/service/board/use/18110282



제대로 자지 못하면 글도 쓰기 싫고 삶에 절여져서 사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냥 주변 사람들의 흐름, 삶의 흐름대로 살게 된다. 몸은 편하지만 삶 자체는 그냥 그렇게 아스라져 버린다. 뇌가 필요 없게 된다.


작년 9월 이곳에 온 지 한 달도 채 안되었을 때 썼던 일기 중 일부입니다. 그 당시 너무나 잠을 자지 못해 극도의 노이로제상태였습니다. 이전 글처럼 한 번 깊은 숙면을 경험해 보니 다음 날 삶 자체가 달라지는 걸 깨달았습니다.


만약 매일 숙면할 수 있다면? 그래서 매일매일 이렇게 활기차게 살 수 있다면?


삶의 성공, 행복이 결코 대단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일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게 성공이고 행복일 거라는확신을 가졌습니다. 한번 기적을 경험한 종교인이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숙면을 위해서라면 제 영혼이라도 바칠기세로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일단 안대와 암막커튼으로 짙은 어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 깊은 잠을 자는 데 성공했습니다. 어찌나빛을 잘 차단하던지 룸메이트는 제가 집에 들어온 걸 몰랐다고 했습니다. 보통은 밖에서 창문에 빛이 나는 걸 보고 ‘들어오셨구나’ 했는데 암막커튼 이후로는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 방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새로운 베개로 교체

그다음으로 베개를 지목했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베개는 간단한 이부자리와 함께 제공된 기본 베개였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목이 아파 하루종일 뻐근했습니다. 심하면 아예 목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하루종일 통증이 있었습니다.


이때 우연히 특가로 뜬 ’ 템퍼 베개‘를 발견했습니다. 정가 7만 원짜리가 5만 원 후반대로 올라왔지만 금액에 대한 고민이있었습니다.


’ 베개에 6만 원을 태워?‘


집에서도 대충 수건을 말아서 베개로 쓰는 저로서는 베개에 큰 금액을 투자하는 게 너무나 큰 모험이었습니다. 결국 인터넷 쇼핑에서 모양이 비슷한 저렴한 것을 구입하려 했으나...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들렸습니다.


‘한 번 살 때 제대로 된 걸 사’


문득 제 옆에 있는 템퍼 안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몇 년 전에 안대를 꼭 쓰고 잔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고민 끝에 구입한4만 원짜리 고가의 제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큰맘 먹고 구입을 했고 굉장히 만족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템퍼 수면안대 사용기 참고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5375560)


결국 눈 질끈 감고 템퍼사의 베개를 구입했습니다.


큰맘먹고 구입한 템퍼베개,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목이 편안해졌고 다음 날 결림도 확실히 줄어들었습니다. 역시 사람 몸에 닿는 것에는 돈을 아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후에는 어설픈 제품을 사서 애매하게 사용하느니확실히 좋은 것을 사서 오래 쓴다 라는 개념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물론 다른 제품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인터넷에서 ‘의사들이 추천하는 베개’ 또는 ‘마약 베개’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가 있는 베개를 사용했지만 오히려 목이 아파 구석에 던져버린 경험이 있는 저에게는 확실한 삶의 지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면 클리닉에 가볼까?

이후에 수면어플 ‘Sleep Cycle'로 계속 수면을 추적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수면그래프를 보며 신기해했습니다. 나중에는 서로 앱 이름을 알려달라 했고 한동안 매일 서로의 점수를 겨루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프들을 보면서 한 가지 숙면을 방해하는 원인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중간중간 깨는 일입니다.

실제로도 새벽에 중간에 깨서 ’아.. 젠장‘이러고 탄식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깬 잠을 다시 자는 건 쉽지 않습니다. 어설프게 정신이 깨어서 일어났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오전 시간을 졸며 보내는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불면만큼이나 무서운 건 어설픈 기상입니다.

sleep cycle이 녹음한 코고는 소리, 잠꼬대. 의외로 고요할 것 같은 밤이지만 창밖의 술취한 사람들의 소리, 룸메이트가일어나 화장실 가는 소리 들이 비일비재하고 발생합니다. 무엇보다 내 코고는 소리, 그로 인해 잠깐이라도 호흡에 방해되거나 깨는 일들 모두 수면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일단 앱은 수면 중 코코는 소리와 잠꼬대까지 녹음했습니다. 한번 들어보면 만일 옆사람이 들었다면 민망할 정도의 아저씨 코 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프가 중간에 한 번씩 요동치는 것을 보고 ’ 수면 무호흡‘증인 아닌가 의심도 했습니다. 검색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수면 무호흡 때문에 수면 클리닉을 찾고 양압기를 구매하는 걸 알았습니다.


진지하게 수면 클리닉에 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현제 제 상황에서 공수까지 포기하면서 거액의 돈을 단지 잠을 제대로 자기 위해 투자한다는 건 힘들었습니다. (이전 글 공수지옥 편 참고)


결국 50만 원을 들여 바로 양압기 만을 구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당근에서 판매자와 조율이 어려워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코 고는 건 아직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중간에 깰 수밖에 없는 요인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깼을 때 너무 덥거나 추웠을 때도 많았습니다. 이때 건강 관련 서적을 읽어보니 사람은 조금 추운(서늘) 환경이 적합하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이후에 겨울에도 전기장판의 온도를 최소화하고 잠을 잤습니다. 이것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중간에 깨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외에 방 안의 빛을 제거했습니다. 수면안대와 암막 커튼이 있었지만 방 내부의 빛도 만만치 않게 밝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유기의 밝은 불빛과 수시로 뒤바뀌는 깜빡임, USB 충전기에서 나오는 미세한 불빛, 스마트폰 AOD 기능으로 약하게나마 나오는 액정 빛 등 다양한 빛들이 여전히 방 안에 있었습니다. 모두 전기테이프로 막고 수면모드로 전환해서 화면에 알람이나 정보가 나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 외에도 다이소 5000원 가습기를 구입해서 적절한 습도를 맞춰주었습니다. (이상하게 저렴한 가습기일수록 이상한무드등 기능은 왜 있는 걸까요?)


엄청난 효과의 이어 플러그

또 이어 플러그도 굉장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공사 현장에는 휴게실이나 기계 모터가 있는 곳에는 항상 이어 플러그를 가져갈 수 있게 비치해 두었습니다. 여기서 사용하고 남은 이어 플러그를 몇 개 가져와 착용하고 잤습니다.


원래 안대도 그렇고 몸에 무언가를 착용하고 자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어 플러그까지 착용하면서 몸에 압박을 가한다는 게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막상 착용해 보니 굉장한 고요함이 찾아왔습니다.


무엇보다 중간에 깨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다른 방 룸메이트의 화장실 이동이나 밖에서 술 취한 사람들의 노랫소리도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sleep cycle앱에서도 잠꼬대가 녹음되어 있어 들어보면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노랫소리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잠’ 하나를 위해서 거의 모든 시도를 했었습니다. 효과가 있던 순으로 정리해 보면


암막커튼 > 이어 플러그 = 템퍼 안대  > 템퍼 베개 > 온도조절 > 방안의 빛 없애기 > 가습기 >> 에어 매트리스 >> 명상유튜브 채널


이런 시도를 거치면서 조금씩 수면의 질을 높여나갔습니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연장근무(12시간 근무)를 마치고 저녁 8시에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씻고 내일 출근준비를 하면 어느새 9시가 됩니다. 그 뒤로 스마트폰으로 유머 사이트나 친구와 통화, 기타 활동을 하면 어느새 10시가 됩니다. 어떤 날은 11시까지 친구와 통화하거나 사람들과 줌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날따라 머릿속에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냥 일찍 자서 자는 시간 자체를 더 늘려볼까?‘


깊은 숙면을 위해 온갖 시도를 했지만 ’ 잠자는 시간 자체를 늘린다’라는 개념은 아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이었고 여유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퇴근하고 하려고 했던 게임, 교회 사람들과의 줌 모임 등이 예약되어 있었습니다. 씻고 내일 출근 준비를 마치자시계는 이미 9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일찍 자자’

사람들에게 톡을 보내 모임을 취소하고 글을 쓴다던가 유머 사이트를 돌아다니는 일을 말끔히 포기했습니다.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벌써 자요?”라고 물어보는 룸메이트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방 안의 불을 끄고 안대를 쓰고 이어플러그를 하고 가습기를 켜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저절로 눈이 떠지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습니다. 대략 7시간쯤 잠을 잤습니다. 눈을 뜨고 몸 상태를 체크했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를 뻔했습니다.


그야말로 이전보다 훨씬 숙면의 상쾌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단지 평소에 하던 일들을 내려놓고 1시간 더 일찍 잠들었을뿐이고 좀 더 많은 시간을 잠을 취하자 몸의 회복력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숙면을 위해 온갖 시도를 하며 잠자는 환경을바꿨지만 수면 시간 자체를 늘리는 것이 훨씬 강력한 효과를 불러왔습니다.


너무나 단순하지만, 아니 단순했기에 놓치고 있었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잘 자는 방법의 가장 큰 첫 번째는 ’ 수면 시간 자체를 늘리는 것’ 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부자리를 마련하고빛을 가리고 해도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수많은 대가지불을 해야 했습니다. 누구나 퇴근하고 나서 제2의 삶이 시작됩니다. 일반 직장인들은 모임이나 술약속을 갖습니다. 숙식 노가다하는 분들도 끝나고 난풍경은 스마트폰을 하거나 친구와 짧게라도 술자리를 갖습니다. 하지만 수면시간을 확보하려면 이 모든 것을 내려놔야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교회 사람들과의 성경모임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코로나 이후 줌으로 교회 사람들과 밤 10시에 성경 모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10시 모임을 갖고 잠들 준비를 하면 11시가 되곤 했습니다. 아무리 숙면을 위한 환경이 되었다 한들 충분히 수면을 취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부탁해 9시 30분으로 30분 시간을 당겼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부담되었기에 결국 어느샌가 줌 모임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종교적인 입장에서 안타깝지만 주일 예배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 외에도 스마트폰으로 하는 행위들을 점점 내려놓았습니다. 유머 사이트,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하나 둘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원래 이렇게 글을 쓰는 자기 계발은 놓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새벽에 일어나 30분~1시간씩 글을 쓰기시작했고 그것이 지금의 숙식 노가다 연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삶의 진리를 깨닫고 나자 마치 종교적 깨달음, 경험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삶을 좀 더 넓게 보고 자는 것 외에도 내가 먹는 것, 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선 ‘수면 시간 자체를 더 확보하기 위해’ 내려놓을 것들을 더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 가지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내려놓으면서 제 삶은 또 한 번의 엄청난 변화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이전 11화 11화 - 완벽한 잠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