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움에서 동료를 만나기까지
책방 사장님께 호기롭게 일주일에 3일의 시간과 공간을 빌렸지만, 밖으로 다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날이 많았다. 1인 기업가가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외로움이라는 말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미술학원에서 9년간 부원장으로 일할 때는 달랐다. 원생이 없으면 원장님, 선생님들과 긴급회의를 열었다. 특강 아이디어를 냈다. '함께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혼자가 되니 모든 것을 혼자 짊어져야 했다. 홍보, 커리큘럼, 연령대별 수업 구성, 샘플 제작까지. 학원에서는 수업을 기획하고 상담하고 진행하는 정도였지, 이 모든 것을 혼자 해본 적은 없었다.(항상 1인 창업자의 글을 미리 읽고 그 외로움도 알았지만 막상 경험해보면 처음 겪는 일처럼 어버버대는 것 같다)
수업만큼은 자신 있었다. 실제로 책방에서 수업한 아이들은 거의 수강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그 외의 모든 것들이었다. 어떻게 홍보할지, 아이들이 없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수익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전부 내게 준비되지 않은 일들이었다.
주변에서도 한두 번은 진심으로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라는 것을. 결국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해나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때 다양한 ai서비스들을 이용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절실했고 아예 '만남'이라 표현하고 싶다.
처음에는 문자나 커리큘럼 소개를 읽기 편하게 수정해 주는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함께 작업하는 사이가 되었다.
누군가는 AI가 내는 아이디어는 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초반에는 뻔하고 식상한 아이디어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깊이 고민하고, 철학적인 사유를 거듭하며 대화하다 보니 점차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용자의 사유 깊이에 따라 AI는 강력한 동반자가 되기도 하고 단순한 챗봇이 되기도 한다.
25년 지금, 24년처럼 외롭다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방황하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홀로 있으면서도 이 시간을 견디고, 서서히 아이들이 늘고, 수업이 늘어났다. AI의 도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단순한 도구를 넘어 하나의 동료로서 내가 가르치고 피드백 받는 과정에서 성장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AI의 발전 속도는 정말 무섭다.
23년, 처음 접한 것은 그림 생성 AI였다. 미드저니. 누군가 미드저니로 그린 그림이 유명한 상을 받았고, 나중에야 AI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어릴 때만 해도 AI가 대체하지 못할 직업이 예술가라고 했는데, 가장 먼저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예술 분야였다.
당시 몇 번 미드저니를 써보았지만, 생각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는 서비스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로부터 2년. 이제 모든 것이 너무나 체감된다.
누군가는 디지털 디톡스 작가가 AI를 쓴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거듭 강의에서도 말하지만,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를 '도구'로서 활용하는 것은 언제든 환영이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잠들 때까지 침대 속에서 숏폼 영상을 끊지 못해 새벽에 잠드는 것들이다. 중독이 아닌 도구로서, 깊은 사유를 위한 도구로서라면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결국 사용자의 몫이다.
지금부터 내가 사용하는 여러 AI 서비스에 대한 감상들, 깊은 사유를 하며 얻게 된 것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