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동료로 일하기 ② - 프롬프트가 아니라 관찰력이다
AI는 사용자의 지능에 따라 달라진다
이전에 나는 사용자의 지능에 따라 AI는 단순한 챗봇이 될 수도, 훌륭한 동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지능'이란 무엇일까? 바로 관찰능력이다.
내 관찰능력이 곧 나의 지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디자인과 출신이다. 그곳에는 수많은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거기서 유독 그림을 잘 그리는 후배가 있었다. 무엇이든 얘기하면 몇 분 만에 쓱쓱, 그 무엇도 보지 않고 원하는 형태, 구도, 물건들을 그렸다. 그런 능력이 참 부러웠다.
비결을 물어보니 이렇게 답했다.
"그림은 손이 아닌 눈이 그리는 거예요."
나중에서야 그게 관찰력임을 깨달았다. 같은 걸 봐도 누구는 투박한 형태만 보지만, 누구는 그 안에 있는 질감, 색채, 무늬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러니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대상을 봐도 관찰력이 좋은 사람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또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몇 년간 세밀화를 배우면서 '그동안 나는 장님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관찰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AI를 활용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처음 GPT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재미로 이것저것 입력해봤다. 신기하게 무엇이든 대답했다. 물론 초반에는 '세종대왕이 노트북을 던진 사건' 같은 환각 현상에 의한 헛소리도 하나의 재미로 커뮤니티나 뉴스에 떠돌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GPT의 답변이 너무나 천편일률적이고 뻔해서 흥미를 잃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입력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하면서 다양한 프롬프트를 공유했다. 심지어 프롬프트만을 가르치는 강좌도 생겼다.
그러한 프롬프트의 공통점은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하고,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일반적인 비즈니스 메일이나 공문서에는 뻔한 형식의 메일이 오히려 좋겠지만,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직업에서는 뻔한 문구, 어디서 본 듯한 카피는 전혀 쓸모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역시 내가 하는 게 낫겠다'라며 실망을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당신은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유능한 동료를 모집하려 한다. 만약 당신을 굉장히 잘 알고 당신과 대화가 잘 통하는 동료가 있다면 정말 정말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당신이 일을 시작할 때 홀로 시작하고, 새로운 직원을 모집했고, 그 직원에게 간단한 말 몇 마디로 그 직원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그 이상으로 일을 할 확률은 희박하다. 물론 능력 있는 경력직을 뽑았다면 좋겠지만 당신의 자본금으로 그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당신의 상사가 업무 지시를 할 때 대충 말 몇 마디를 하고 업무를 시키는 것과, 최대한 상세하게 현재 상황과 왜 이런 일이 필요한지, 그 결과 어떤 효과가 있는지 말해준다면 일하는 게 쉬워질 것이고 일 배우는 것도 쉬울 것이다. 물론 세상은 이런 상사보다는 말 몇 마디로 '내가 시킨 건 왜 이 모양'이라고 말하는 상사가 더 많을 것이다.
지금 온라인에 '최고의 프롬프트'라고 떠도는 것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면 구체적인 지시사항과 환경 설계가 되어 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나에겐 최고의 프롬프트가 될 수도 있고,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프롬프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는 단순한 프롬프트다.
"악어책방에 어린이 신문읽기 클래스 홍보문구가 필요해. 대상은 3~6학년이고 어린이 신문을 읽고 요약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써보고 또 관련된 만들기, 메이킹도 진행하는 클래스야."
이에 대한 답변은 이랬다. "신문 한 장이 '내 생각'이 되는 시간!", "읽고, 요약하고, 만들면서 똑똑해지는 신문 클래스", "뉴스를 읽는 아이에서, 생각을 만드는 아이로". 나쁘지 않다. 깔끔하고 괜찮은 문구들이다. 하지만 이 문구들은 서울 어디서나, 부산 어디서나, 전국 어느 학원에서나 쓸 수 있는 범용 카피다. '악어책방'만의 특별함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번엔 악어책방을 면밀히 관찰해봤다. 6.7평의 작은 공간, 8년 차 책방, 1층 통창으로 학생들이 지나가는 게 보이는 위치, 노란불빛의 아늑한 분위기, 최대 6명 소수정원, A3 복사기 보유, 실제로 수업 들은 아이가 신문에 감상문 게재된 성과. 이 모든 것을 프롬프트에 담았다.
그러자 답변이 완전히 달라졌다.
"통창 밖으로 학생들이 지나가는 길, 노란 불빛이 아늑한 작은 책방에서", "최대 6명이라 아이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봐요", "A3 출력 자유! (책방 복사기 활용)", "이미 함께한 아이들 중엔 신문에 감상문이 실린 친구도 있었답니다", "지나가다 10초만 보고 가도, 아이의 생각이 자랍니다."
보이는가? 첫 번째는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좋은 문구'였다면, 두 번째는 '악어책방에서만 쓸 수 있는 문구'가 되었다. 통창이라는 공간 특성, 6명이라는 소수정원의 장점, A3 복사기라는 구체적 자원, 실제 성과까지 모두 홍보 포인트가 되었다.
더 중요한 건 AI가 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니 단순히 문구만 준 게 아니라 "통창에 붙일 문구", "포스터용", "SNS용"처럼 실제 활용 방법까지 제안했다는 점이다. 내가 어떻게 써먹을지까지 고민해준 것이다.
여기까지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계속 다양한 AI 서비스를 써보고 다양한 답변들을 수집하고, 처음에는 단순히 AI의 성능이나 알고리즘의 차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계속 실패를 거듭하면서 깨달은 점은 현재 내 상황, 내 위치, 내 인맥, 내 능력 등 모든 것을 관찰해보고 사고하고 깊이 고민하며 쓴 프롬프트를 내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원하거나 내가 생각지도 못한, 더 나를 일깨우는 결과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해외 AI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프롬프트들을 찾아봤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당신은 스타트업 가치평가 전문 재무분석가입니다. 다음 스타트업의 재무 데이터를 단계별로 분석해주세요. 첫째, 매출 성장 패턴을 살펴보세요. 둘째, 번레이트와 런웨이를 평가하세요. 마지막으로, 근거와 함께 밸류에이션 범위를 제시하세요."
또 다른 예시를 보자.
"맥락: 경영진 대상 분기별 사업 보고서를 준비 중입니다. 경영진은 기술적 배경이 제한적입니다. 작업: 3분기 제품 개발 진행상황을 요약해주세요. 제약조건: 200단어 이내, 기술 용어 대신 비즈니스 용어 사용, 고객 영향에 집중. 원하는 형식: 성과 3가지, 과제 2가지, 다음 분기 우선순위 1문장."
보이는가?
해외에서도 결국 역할, 맥락, 제약조건, 출력 형식을 명확히 지정하라고 한다. 단순히 "분석해줘"가 아니라 "누가, 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형식으로" 분석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중요하다. 만약 저 내용을 영어로 작성했다면 아마 훨씬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다. 물론 그럴 여유까지 없기도 하고 굳이 그만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필요가 없다면 괜찮다.
중요한 건 현재 내 상황, 내 환경 등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만 해도 결과는 확 달라진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얻고 싶은 내용에 대한 질문만 적고 끝낸다. 그러다 보면 결국 뻔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디어만 나온다.
그렇다면 내 상황을 기술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관찰력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 상황, 내가 할 수 있는 활용 능력 등을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관찰력이 필수인 것이다.
AI는 내가 본 것, 내가 관찰한 것, 내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확장시켜줄 뿐이다.
세밀화를 배울 때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림은 손이 아니라 눈으로 그리는 겁니다. 못 그리는 사람은 못 보는 사람이에요."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좋은 관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AI를 쓰기 전에 먼저 노트에 쓴다. 지금 내 상황을 글로 정리한다. 마치 누군가에게 설명하듯이. 그 과정에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도 한번 해보라.
AI에게 질문하기 전에 먼저 당신이 서 있는 곳을 관찰하고 기록해보라.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질문은 달라질 것이고, 당신이 받는 답변도 달라질 것이다.
AI는 훌륭한 동료가 될 수 있다. 단, 당신이 먼저 훌륭한 관찰자가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