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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Nov 22. 2019

관계가 곧 생명입니다.

가정에서 관계 교육이 필요하다.

최근에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유명한 심리학자는 가정교육도 훌륭할 거라 믿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잘 알수록 그만큼 자녀 교육도 일반인과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한 연구단체에서 대립되는 훈육방식을 주장하는 두 학자의 자녀를 추적해 보기로 했습니다.


A학자의 훈육법은 아이의 입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아이의 취향, 성향을 존중해 줍니다. 또한 실수도 이해하고 수용합니다. 반대로 B학자는 동물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연구했습니다. 인간은 어떤 행동에 보상을 하면 행동을 유지하고 처벌하면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이론대로 자식에게도 잘하면 칭찬을, 못하면 훈육을 했습니다.


과연 어느 학자의 자녀가 더 잘 자랐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아이의 입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한 A학자의 자녀가 훌륭하게 자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약중독자로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반대로 B학자의 자녀는 유능하게 성장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누가 봐도 A학자 쪽이 훨씬 교육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사회와의 연결점에 답이 있습니다. B학자의 훈육 방침은 사회의 구조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자신이 실수를 저지르면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B학자의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이 곧 사회와 유사했기에 사회에 나가서도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반면 A학자의 자녀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맞춰 행동하지 않기에 계속 불만이 쌓였습니다. 또 자신의 실수를 책임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회 부적응으로 이어졌습니다.


흔히 상담을 하다 보면 “제가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봐요”라고 말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아이는 자기 행동과 관심사가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위의 이야기를 합니다. 가정에서 사회 구조를 조금씩 경험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가장 좋은 예시는 부모님 자신입니다. 요즘은 부모님 모두 맞벌이 또는 사회생활 경험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성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센스 있다’라고 할만한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수업에서 가르치는 ‘센스 교육

수업 중에 도구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칼이나 톱, 드릴 등을 사용합니다. 칼의 경우 소형 커터가 아닌 중형 커터칼을 사용합니다. 그만큼 안전과 관련된 교육은 많이 하는 편입니다. 칼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장갑을 착용하고 칼이 자르는 방향에 절대로 손이나 다른 물건이 없게 합니다. 어느 날 한 아이에게 칼을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장갑을 착용한 손으로 칼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순간 어릴 때 받았던 교육이 생각났습니다.


칼을 줄 때는 어떻게 주어야 할까요?


“그냥 주는 거 아니에요?”

라고 하며 아이는 궁금해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칼을 건넬 때 칼날이 나오는 부분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지 상대방에게 향해 있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나 윗사람을 오래 모셔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입니다. 칼날이 나오는 방향은 상대방이 아닌 자신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먼저 보여줍니다. 칼이나 가위같이 쇠로 된 날이 있는 것을 줄 때는 상대방에게 손잡이가 있는 방향으로 주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가위도 전달하는 사람이 가위 날을 잡은 채 손잡이가 상대방에게 향해 있어야 합니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가르쳐 준 예절이었습니다. 그땐 아버지께서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는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엄한 말투로 상대방에게 줄 때는 반드시 손잡이를 건네주라고만 했습니다. 수업 때 아이가 건네준 칼날이 저를 향해 있을 때와 손잡이가 먼저 왔을 때 느낌이 달랐습니다.


아이에게 그냥 법칙으로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 하루도 안되어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커터칼로 짧은 연극을 해보기로 합니다.


“잘 봐. 만약 내가 칼날을 너에게 주려고 해. 그런데 선생님은 사실 괴물이야. 그래서 갑자기 네 손위에 칼이 있을 때 칼날을 빼면 어떻게 될까?”


“끔찍해요!”


“맞아. 만약 가위도 (날을 아이에게 건네주며) 내가 만약 손잡이를 확 벌리면?”


“그것도 끔찍해요!”


“맞아. 그럼 이렇게 주면 어떨까?” 하며 손잡이를 아이에게 건네줍니다.

이렇게 하면 선생님이 괴물이어도 너를 공격할  없겠지?

맞아요. 손잡이는 저한테 있으니까요


그 뒤로 아이들은 손잡이를 저에게 먼저 건네주었습니다. 때론 장난치며 날 부분을 먼저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말이죠. 그 뒤로 몇 주가 지나서 한 아이가 학교에서의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선생님, 오늘 학교에서 제가 선생님에게 칼을 이렇게 갖다 드리니까 놀라셨어요.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길래 선생님 이야기했어요!


아이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아이의 학교 생활에서 선생님을 살짝 놀라게 한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주변에 퍼지다 보면 인간관계도 훨씬 풍성해질 것입니다. 이런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식사할 때 어른이 수저를 들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거나, 어른이 말씀하실 때는 조용히 듣고 있거나, 공손히 두 손 모아 인사하는 것 말입니다. 이런 모습이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요즘은 따로 교육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개인의 의사를 더 중요시 여깁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 대한 교육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내가 한 말,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한 교육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 행동을 했을 때 상대방도 좋아할 것인지, 싫어할 것인지, 그리고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왔을 때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어른들도 매번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거나 상대방을 인정하는 걸 어려워합니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아이 또한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합니다.


가정에서 미니 사회 교육이 필요하다.

결국 집에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아이에게는 집안이 곧 사회이자 세계입니다. 부모님이 아이에게 처음 만나는 타인이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과거에는 아이는 소유물로서 부모는 아이의 생사마저 결정하는 존재였습니다. 부모의 행동이 곧 아이의 행동입니다. 그렇기에 가정은 따뜻한 곳인 동시에 사회의 구조를 가르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굳이 집에서까지 사회의 냉혹함, 경쟁심을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요?


많은 분들의 질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냉혹한 사회가 아닌 사회를 냉혹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취업난, 세계 곳곳의 전쟁, 남녀 차별 문제 등 뉴스에서는 사회의 부조리, 아픔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학생 때와 달리 먹고사는 문제가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사회를 차별적이고 아프게 만드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정치, 경제 체제의 문제를 알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조차 그 원인을 파악하기에 거대하고 감춰진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단 우리가 가르칠  있는 작지만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입니다.


관계는  생명이다.

사회의 어원은 ‘동료들의 모임’입니다. 원시시대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서 동료를 만나고 협력합니다. 이때 동료와 협력하지 못하면 말 그대로 도태되었습니다. 동료가 만나 가족을 이루고 씨족을 이루고 부족을 만듭니다.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협력은 곧 관계를 의미합니다. 좋은 관계는 넓게 퍼져나갑니다. 나쁜 관계는 고립되게 합니다. 관계가 곧 생명입니다. 아이가 부모와 관계를 맺는 것도 생명이 전제된 관계입니다. 부모의 무관심이 아이를 죽이듯 관계에 따라 아이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아이는 부모가 보여준 관계를 기초로 놀이터, 유치원에 적용합니다. 성공적인 관계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성장합니다. 더 큰 사회로 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나쁜 관계는 성장 대신 퇴화시킵니다. 집으로, 방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최근 일어나는 무차별적인 살인, 분노조절 장애 등이 나쁜 관계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귀찮아도 상대방의 느낌을 이야기해야 한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매번 상대방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은 힘듭니다. 바쁘고 여유가 없으면 그저 그렇게 하지 말라고만 합니다. 예의에 어긋난다고만 말합니다. 왜 어긋나는지, 기분 나쁜 말인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특히 남자아이는 공감대가 여자아이에 비해 낮습니다. 한 방송에서처럼 엄마가 우는 척을 하면 딸은 엄마와 함께 울기 시작합니다. 반면 아들은 계속 장난감을 가지고 놉니다. 관계 공부는 아들에게 더 많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때렸을 때 상대방은 어떤 기분인지, 반대로 맞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서로 싸웠을  강제로 화해시켜서는  됩니다. 집요하게 서로의 기분과 왜 그랬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10번의 싸움을 말리고 혼내는 것보다 1번의 싸움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서로의 잘못을 밝히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번 충분히 이해받았을 때 아이는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모습은 온실임과 동시에 사회의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곧 사회를 냉혹하게 만들지 따뜻하게 만들지 결정합니다. 그 안에는 사람과의 관계가 있고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맺어나갔는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안정적이고 좋은 관계 안에서 아이는 사회에 나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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