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서 생각난 이모저모
유튜브 엄청 다운받아 놨어요.
선생님이 나에게 다운로드한 리스트를 보여주었다.(유튜브 레드를 신청하면 영상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해 준다) 기내에서 5시간을 인터넷 없이 있어야 하니 선생님들 각자 대비책을 마련했다. 책을 다운로드하거나 영화를 받아오거나 아니면 그저 자거나. 나는 아이패드와 함께 안대를 준비했다.
선생님들과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번 스페인은 아이들과 함께 다녀온 여행이자 업무였다면 이번에는 지난 간 수고한 공로에 대한 보너스로 가는 여행이다.
기내에서 아이패드를 켠다. 그리고 지난번에 쓰던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앱을 실행시킨다.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없습니다’
아차 싶었다. 미리 텍스트만 복사해 두었어야 했다. 항상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 보니 클라우드가 더 편했다. 패드나 스마트폰 어디에서든지 이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클라우드 속에서는 클라우드를 사용할 수 없다. 무심코 아이패드를 보며 설치된 앱을 확인했다.
에버노트
카카오톡
다음 지도
구글어스
카페, 블로그 앱...
대부분 인터넷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순간 아이패드의 ‘i’가 인터넷의 약자라는 걸 떠올렸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운로드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 그냥 책과 다이어리와 다를 바가 없다. 책은 펼쳐 놓아도 닳지 않지만 패드는 켜 놓으면 배터리가 닳는다. 네트워크가 없는 한 패드는 그저 커다란 액정을 가진 화면 표시기가 된다. 나의 뇌는 심심하다고 외치며 할 거리를 찾는다. 결국 이렇게 글을 쓰게 한다.
사람의 머리는 자극을 원한다.
뇌 과학자들이 한결같이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이미 뇌 구조 단계에서 외부 정보를 끊임없이 습득하고 소통하기를 원한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 있는 쥐와 다양한 자극이 주어지는 쥐를 놓고 실험하면 당연히 자극을 많이 받는 쥐의 뇌가 훨씬 크고 똑똑하다.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 최근 ‘아이들의 계급투쟁’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저자는 영국에서 가장 낮은 경제력을 갖고 있는 동네에서 보육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영국은 세금을 절약한다는 의미로 긴축 재정을 실시한다. 그 여파가 고스란히 보육시설에 전달된다. 예전에는 학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실직해도 보조금으로 아이들을 얼마든지 보육원에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긴축재정으로 보조금이 중단되고 보육원 지원금마저 끊기자 많은 탁아소들이 문을 닫았다. 저자는 긴축재정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긴축 탁아소’에서 봉사하며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하지만 날카롭게 긴축 정책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한다.
대표적인 것은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구입비마저 끊켜 공원 쓰레기장에서 버려진 장난감을 주워와 씻어서 재활용해야 하는 현실이다.
투자나 금리, 자본 같은 문제에만 얽매여 사람을 잊고 있다. 투자 유치도 좋고 금리 조정도 좋다. 그런데 우리 집 욕실에 둥둥 떠 있는 저 장난감들은 어떡하느냐고.
-아이들의 계급투쟁 p69-
수많은 자극을 받아서 뇌가 활성화되어야 할 시기에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된 장난감이 없어 점차 폭력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 아무 이유 없이 옆 친구를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한편 반대편 부유층 아이들은 좋은 영양상태와 다양한 자극들로 가득하다. 그런 아이들은 더 부드럽고 사교적이 된다.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지는 굳이 예측할 필요가 있을까.
비행기가 이륙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는 걸 택한다. 만약 기내 인터넷이 제공된다면 여전히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받을 수 없자 뇌는 ‘차라리 잠이나 자자’라고 명령하는 것 같다. 잠을 자면 꿈을 꾸기도 한다. 현재까지 꿈의 정확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의 경험들을 재처리하는 과정이라 추측한다. 뇌는 정말 일 중독자인 것 같다. 현실에서의 자극이 없으니 이제는 내부에서 자극을 찾아낸다.
한 달 전 열 명의 남자아이들을 데리고 스페인에 다녀왔다. 아이들을 보면 ‘자극을 원하는 뇌’가 무엇인지 고스란히 보인다. 끊임없이 모니터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기내식을 맛보고 옆 친구와 수다를 떤다. 난기류로 잠시 동안 게임이나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옆 친구와 바로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한다. 그야말로 끊임없는 연결을 원한다. 마치 인터넷이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스마트폰, 아이패드처럼 말이다. 연결되지 않으면 능력이 3분의 1, 4분의 1로 줄어든다. 아이도, 어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륙한 지 3시간 정도가 되자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봄이 온 것처럼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이곳저곳에서 대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의 장난치는 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잠도 잤고 이제는 뇌가 새로운 자극을 각자에게 명령한 것 같았다. 뇌가 문득 출국 전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면세점을 지나치면서 중앙에는 하트 모양을 한 거대한 투명 아크릴 상자가 있었다. 그 안에는 전 세계 지폐와 동전들이 담겨 있었다. 세이브 더 칠드런. 환전한 돈의 일부가 만약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장난감이 아니더라도 아주 약간의 자극이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약간의 돈을 꺼내 다른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돌아가는 길에 잊지 말고 기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