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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Nov 28. 2019

손으로 글씨를 읽어본다. 점자의 세계

11월 4일 무중력 지대 양천에서 진행한 훈맹정음 참여기

지난 11월 4일이 점자의 날이었다는 걸 아시나요? 지하철 역 입구 손잡이를 잡으면 오돌토돌한 돌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론 횡단보도 신호등 아래 버튼이 있는데 거기에도 돌기가 있습니다. 모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들입니다. 무중력 지대 양천에서 점자의 날을 기념해서 ‘2시간 만에 배우는 점자 교육, 훈맹정음’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한때 대학생 때 점자 교육을 받고 싶어 점자 도서관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교육 기간이 아니어서 사서분이 간단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곧 까먹고 말았죠^^; 교육 신청 문자를 보고 잠시나마 대학생 때의 시도가 생각나 저도 모르게 신청했습니다.



진행은 무중력 지대 양천에서 진행했습니다.
무중력 지대는 서울시에서 청년들의 문화 공간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모임 공간, 식사 공간 등을 제공하면서 사회적 교류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박수웅 강사님은 저시력 장애인입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우리는 보통 아예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80%의 사람들은 저시력으로 사물의 형태와 색을 인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점자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무려 200년이 넘는 1800년대 탄생했습니다. 다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게 아닌 전쟁터에서 탄생했습니다. 전쟁 중 밤에 아군들과 대화하는 방법으로 나온 것이 점자였고 그 후로 맹인학교에 소개되었습니다.

점자는 6개의 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레고 블록 같죠?^^ 이를 한 셀이라 합니다. 왼쪽에서 아래로 1,2,3(일이삼) 이런 식으로 읽습니다. 점자를 읽는 법도 따로 있습니다. 만약 1,3,4번 칸에 찍혀 있다면 어떻게 말할까요? 1번, 3번, 4번 이렇게 부르는  아니라 1,3,4번(일, 삼, 사번)으로 읽습니다. 최대한 빠르고 간편하게 부르는 법입니다.


점자 일람표를 보면서 글자를 맞춰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글자를 점으로 인지하는 과정, 그걸 다시 글자로 해독하는 과정 때문인지 다들 헷갈렸습니다.^^

점자에도 약자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응(ㅇ)의 경우 모음의 기초이기 때문에 생략해도 무방합니다. 모든 자음이 이응을 기초로 발음하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도 ㅏ,ㅔ,ㅣ,ㅗ,ㅜ 를 읽어보라 하면 아, 에, 이, 오, 우라고 읽는 것과 같습니다.

그 외에도 자주 사용하는 자음, 글자는 약자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원리도 있습니다. 일반 책 기준 250쪽 책 한 권이 점자로 인쇄될 때는 2~3권으로 분권이 된다고 합니다. 한글이라는 글자를 점자로 바꿔도 ㅎ ㅏ ㄴ ㄱ ㅡ ㄹ 이렇게 6개의 셀이 필요합니다. 두 칸에 들어갈 내용이 6칸을 차지합니다. 3배나  많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약어, 약자가 필수입니다.

2시간 과정에서 1시간은 이렇게 점자를 읽는 법을 배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직접 점자를 써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사님이 화면에 있는 점자를 맞춰 보라고 했는데 정답이 ‘쉬는 시간’^^ 센스가 돋보였습니다)


점자 입력은 점판과 점 필 이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점판은 6개의 점을 찍을 수 있는 작은 구멍과 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점필로 점판에 찍습니다. 찍은 후에 종이를 빼서 뒤집으면 오돌토돌한 점자가 만들어집니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점필로 찍으면 아래에 돌기가 생깁니다. 그걸 뒤집어야 손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입력해야 할까요?

바로 좌우 대칭, 반대로 찍어야 합니다. 확실히 입력하는 건 읽기보다 까다롭습니다. 물리적인 돌기를 만들고 읽어야 해서 발생하는 불편함입니다. 제 이름을 찍어 봤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반복하면서 점차 빨라졌습니다.

모텍스라는 스티커 용지가 따로 있습니다. 두꺼운 코팅된 스티커인데 여기에 돌기가 생기면 꽤 오랫동안 형태를 유지합니다. 스티커로 되어 있어 잘라 원하는 곳에 붙일 수 있습니다. 강사님의 경우 집안의 다양한 물건들에 다 붙여 놓는다고 합니다.


숫자 입력은 앞에 숫자 부호를 넣어줘야 합니다. 앞으로 숫자가 시작됩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일반인은 글자와 숫자 구별이 시각적으로 구별되지만 저시력자의 경우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그 외에도 오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1,2,3,4,5,6 모든 구멍을 찍습니다. 이걸 두 번 반복하면 ‘아 오타구나’라고 알 수 있다고 합니다.

6개의 칸에 한 모음, 자음씩 입력할 수 있습니다. 문장을 기록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점자입력이 꽤나 복잡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점자를 읽고   있는 사람은 전체 시각 장애인의 10% 불과하다고 합니다. 읽고 쓰기 모두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손으로 읽는 작업은 배우진 않았지만 아무리 손으로 돌기를 만져도 ‘이걸 어떻게 감지하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읽는 작업은 보통 집게손가락으로 한 번에 한 셀을 만져서 읽습니다. 강사님도 돌기가 선명하면 괜찮지만 닳아서 흐릿(?)해지면 읽기 힘들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강사님은 오늘 이 시간이 재미가 90%였다면 나머지 10%를 기억해 달라고 했습니다. 바로 시각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반인이 너무나 당연한 상황들이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해프닝을 떠나 생명에 위협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샴푸와 린스도 형태가 비슷합니다. 출근할 때 머리를 감을 때 점자를 못 읽어 린스로 감는 일은 해프닝입니다. 


하지만 감기나 병에 걸렸을 때 상비약을 먹을 때는 어떨까요?

이게 두통약인지, 소화제인지 점자나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구별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실제로 많은 분이 제시간에 약을 먹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이는 생명 하고도 연결됩니다. 그만큼 많은 시각 장애인 분들이 세상에 있는 정보에 접근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돌기들을 훼손하기도 한다고 합니다.(다행히 법으로 점자를 훼손하는 일은 처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강사님의 경우는 자신이 생활하는 부분에서는 많은 곳에 점자를 모텍스에 찍어 붙여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판기에 메뉴, 동전을 넣는 위치도 사실 시각 장애인에게는 구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사소한 곳에도 점자가 붙어 있어야 하는 거죠.

제 이름입니다. 실제로 강사님은 이렇게 잘라서 생활용품 곳곳에 붙여 둔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정보에 취약한가, 그리고 정보 접근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오늘  시간을 통해 조금은 이해하고 함께 바꿔 나가면 좋겠습니다


라고 마무리하셨는데 많은 여운이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점자를 배운 이 시간은 즐거움과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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