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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Nov 14. 2019

마라탕

별거 아닌 개인적인 일기.


어머니께 마라탕을 해드렸다. 그것도 한밤중에. 최근 들어 감기로 계속 고생하셨다. 아들은 일하면서 끼니 잘 챙겨 먹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닌다. 하지만 매번 퇴근하고 어머니를 보면 대충 끼니를 때운 흔적이 보인다. 내가 밥 먹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든 진수성찬을 차려 주시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참 대충(?) 대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만큼 귀찮은 거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프더라도 뭔가 해주고 싶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귀찮다. 누구나 아프면 대충 먹게 된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이 제일 서러울 때가 아플 때라고 한다. 아프고 귀찮고 해서 대충 먹다 보면 자존감도 내려가면서 슬퍼진다고 한다.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어 라면을 끓여 드셨다고 한다. 아무리 사 먹으라고 용돈을 드려도 누나 손녀 과자 한 봉지 더 사신단다.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마라탕 원액을 주문했다. 개인적으로도 먹고 싶었다. 밖에서 먹으면 2~3만 원 나가는 것도 부담스럽고 이상하게 비싸게 느껴진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400그람짜리 소스가 단돈 4000원밖에 안 한다. 이 정도면 열명 정도는 정말 배부르게 알싸한 마라탕을 즐길 수 있다.

집에 마라 소스가 오자마자 바로 준비했다. 어머니는 그냥 나물만 데쳐 먹고 주무시려고 했단다. 극구 만류하고 집에 있는 나물과 돼지고기를 준비했다. 커다란 솥에 보글보글 물을 끓였다. 원래 소량을 해보고 나중에 해드리려 했지만 그날 또 대충 먹는 모습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간단했다. 아니 세상이 정말 이렇게 좋아진 것인가 싶을 정도다. 20분 만에 알싸한 마라탕이 완성됐다. 나물도 대충 때려 넣고 돼지고기는 듬뿍 넣었다. 수저를 들고 한 입 댄 순간 ‘헐 하이디라오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굳이 마라탕 집을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맛있었다.
내 요리 솜씨가 아니라 인터넷과 조리기술의 힘이다.

어머니는 정말 맛있게 드셨다. 든든하다고 하면서 어떻게 만들었냐고 몇 번이나 물으셨다. 평소 당뇨가 있어 면도 먹으면 안 돼서 라면 국물만 드시기도 했다. 이번에 자식이 진짜 얼큰한 마라탕을 해드리자 정말 기뻐하셨다. 아..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맛있게 먹을 때 느끼는 기쁨을 보기 위해서 요리를 하셨던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나도 좀 맛있게 먹어야겠다. 그냥 항상 맛있다고만 했지 어머니처럼 진심으로 우러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드린 용돈의 일부를 다시 주면서 ‘네가 산 것들 더 많이 사라’라고 하셨다. 웃음도 나오면서 왠지 측은해진다.

한밤중에 얼큰한 마라탕이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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