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의 남자아이들과 스페인! 열아홉 번째
아이들과 함께 다니다 보면 간식이나 먹는 문제가 뜻밖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이마다 먹는 양도 다르고 선호하는 음식도 다릅니다.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고 가정 교육관의 차이로 패스트푸드나 군것질 자체를 못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의 문화를 반영하되 최대한 무난한 메뉴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 전통음식 빠에야를 주문할 때도 특이한 메뉴에 도전하는 것보다 우리나라 리소토와 비슷한 맛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매운 음식도 어른과 다르게 상당히 약합니다. 우리는 매콤하다고 느끼는 것조차 아이들은 매워서 물에 헹궈 먹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길에서의 군것질거리도 ‘먹어볼까?’ 라기보다는 ‘모두가 다 먹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식사 외에 군것질은 보증된 대기업의 과자(예를 들어 프링글스)나 블로그에서 충분히 맛집으로 평가된 집만 시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여행에서 다양한 군것질을 하고 싶어 합니다. 비록 포장지에 쓰여 있는 단어가 뭘 말하는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선생님들로선 여간 부담이기도 합니다. 만약 몇 조각 먹고 도저히 못 먹는 음식이면 결국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무리 고르고 골라서 구입해도, 선생님이 맛보고 맛있다고 판단해도 결국 아이들이 안 먹는 일도 많았습니다. 최대한 보수적이고 무난한 메뉴만 고를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마트 앞을 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과자, 음식들을 보고 한번 먹어보고 싶어 했습니다. 목적지로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만약 공동 간식으로 적당한 과자를 고른다면 시간이 지체될 상황이었습니다. 평소였으면 나중에 먹자고 하고 이동했을 것입니다. 문득 원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먹는 것도 기념품이네요. 한번 아이들이 자기 돈으로 기념품 사는 것처럼 구입할 수 있게 해 보는 게 어떨까요?
이 말이 생각난 이유는 예전에 뉴욕에서 먹는 것에 돈을 아낀 결과였습니다. 뉴욕에서 맛보지 못한 치즈 케이크, 요리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돈을 아껴서 다른 기념품을 샀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작 한국에서는 그때 맛보지 못한 요리들이 더 아쉬웠습니다. 그때 깨달은 건 물건만큼이나 음식도 중요한 기념이라는 것입니다.
이후에 아이들은 스스로 기념품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듯 먹을 걸 샀습니다. 단 실패해서 버리는 것도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패도 좋은 추억 중 하나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에서 두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숙소에서 선생님이 아무리 물통을 준비하라고 해도, 물을 채워준다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여행 중 마실 물이 바닥나 다른 친구에게 달라고 하거나 선생님에게 목마르다고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하지만 자기 돈으로 음료수나 먹을 걸 구입하면서 물건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자기 것이라는 개념이 명확해지면서 음료수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출발하기 전에 가져와 물을 채워달라고 먼저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돈도 아끼고 다른 음료수를 살 수 있죠
아이들 입에서 이런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이 챙겨주어도 그냥 버리거나 깜빡한 아이들이 자기 것이 되었을 때 비로소 관리하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부모님들께서 부족하지 않게 용돈을 주었음에도 아이들은 아낄 수 있는 것은 아끼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돈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기념품을 구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공지할 때도 소량의 기념품을 구입할 예정이니 최소한의 환전을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예전 학생 때 수학여행이 생각납니다. 가서도 기념품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자유롭게 돈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로 보는 것 위주의 관광밖에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돈을 쓰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 이건 뭐라고 쓴 거예요?”
“선생님 이거 무슨 맛일까요?”
“번역기로 검색해 보니까 레몬 맛이래요!”
아이들이 스스로 물건을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스마트폰으로 구글 검색 앱을 실행시켜 글자를 찍고 번역합니다. 아니면 주인아저씨에게 대화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마치 새로운 게임 미션을 발견한 것처럼 집중합니다. 자기 지갑에서 동전 하나 지폐 하나 꼼꼼하게 챙깁니다. 어떤 아이는 계산을 제대로 했는지 다시 한번 영수증을 보고 확인합니다.
이후에는 질문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새로운 학습이 시작된 것입니다. 과자나 음식점 메뉴판의 글씨를 보면서 어떤 내용인지 번역 앱을 이용합니다. 사용이 서툰 아이들은 형들이 도와줍니다. 이전보다 여행의 지분이 아이들에게 좀 더 넘어간 기분입니다.
여행하다 보면 가족 단위의 여행객을 종종 봅니다. 부모님은 아이들을 잘 챙겨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스마트폰 삼매경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 년 전 일본의 블루보틀 커피숍에 갔었습니다. 워낙 유명하기도 해서 커피 한 잔 마실 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 한 가족이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미리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옆에서 계속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커피를 구입해서 함께 앉았습니다. 아이는 계속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했습니다. 슬슬 상황이 불안해집니다. 어머니는 어서 마시라고 아이 앞에 음료수를 가져다주지만 아이는 한 모금 마시는 척하더니 다시 게임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은 이미 새빨개 졌습니다. 아버지는 사람이 많아서 큰소리로 혼내지 않고 이를 악물고 아이에게 경고했습니다. 그제야 아이는 귀찮다는 듯이 마시기 시작합니다. 아이에게는 여행보다는 스마트폰 속 세상이 더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만약 목이 말라서 자신의 돈으로 사 먹는다면 계속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이 사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받은 돈으로 해야 한다면 무엇 하나 할 때 고심하고 고민할 것입니다. 또 그런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부모님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챙겨준다는 개념은 물질을 제공하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나에게 있는 돈이나 능력을 사용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이와 여행할 때 아이에게 직접 무언가를 먹을 돈을 주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을 경험하게 한다면 훨씬 더 성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