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석 Nov 16. 2019

조급하고 일이 잘 안 되는 그대에게

조급한 사람은 타임랩스로 세계를 본다.


타임랩스(Time lapse) 영상을 찍어 보신 적 있나요?

흔히 광고나 다큐멘터리에서 밤하늘에 별이 순식간에 지나가거나 낮과 밤이 불과 몇 초 만에 뒤바뀌는 영상입니다. 보통 영상을 빠르게 재생하면 비슷하지만 타임랩스를 직접 찍어보면 다릅니다. 1초에 30장의 장면이 지나가고 우리는 그걸 움직임으로 인식합니다. 타임랩스는 3초, 5초에 한 장씩 찍습니다. 그 사진이 30장이 모이면 그제야 1초의 영상이 만들어집니다. 만일 3초씩 촬영해서 1분짜리 영상을 만들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무려 90분,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가끔씩 제 수업을 타임랩스로 찍어봅니다. 수업이 90분이니 대략 1분 정도 나옵니다. 그 안에는 저를 비롯해서 아이들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인데 타임랩스로 보면 순간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수업 때 “왜 빨리 안 붙지?” “선생님 이거 잘 안돼요”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예를 들어 글루건이 완전히 굳으려면 1분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걸 기다리지 못해 10분 이상 글루건 위에 글루건을 얹으면서 짜증을 냅니다. 결국 작품은 작품대로 지저분해집니다.


문득 그 아이는 세상을 타임랩스로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빨리빨리 진행되고 결과가 나오는 세상,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고 단 몇 초 만에 글루건이 단단히 굳어버리는 세상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재촉하는 아이를 보면서 저도 똑같이 결과를 재촉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아이보다 더 내 삶에 다양한 결과물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부터 시작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쓰고 있는 글들, 그림들 모두 빨리빨리 멋진 결과를 보고 싶어 합니다.


타임랩스만 계속 보신 적 있나요?

처음에는 신기함과 재미로 계속 보게 됩니다. 하지만 1분이 지나고 몇 분이 지나면 서서히 지칩니다. 빠른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눈이 아프고 말 그대로 정신이 산만해집니다. 타임랩스가 재미있는 건 개인적으로 딱 1분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몸은 본래의 시간으로 가길 원합니다. 하지만 정신만큼은 모든 것들이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내길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손이 따라가질 못하고 눈이 따라가질 못합니다. 답답해집니다. 여기서 스트레스가 발생합니다. 자신뿐만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빠른 속도를 요구합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이것 좀 빨리 해 주세요”, “아직도 다 못 풀었니?” 등등 서로에게 타임랩스적인 속도를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주말도 쉬는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평일에는 학원 숙제를, 주말에는 다음 주 학교에서 공부할 범위를 요약한 자료나 문제를 푼다고 합니다. 학교 가는 아이들을 보면 참 좋을 때라 생각한 적이 많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밀린 숙제와 선행학습으로 야근(?)까지 하는 모습을 봅니다. 어른으로 치면 다음 주에 할 업무까지 주말 동안 하라는 것이죠. 충분히 지칠만 합니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자기 자신에게 타임랩스를 원합니다.

운동을 시작했으면 다음날부터 체중을 재면서 조바심을 냅니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으면 한두 달 후에는 전문 작가 수준을 원합니다. 아이들의 경우 요즘 유튜브를 많이 봅니다. 유튜브에는 전문 작가들이 만드는 작품이 많이 나옵니다. 유행하는 게임 아이템을 종이로, 클레이로, 3D 펜으로 오리지널보다 더 멋지게 제작합니다. 심지어 타임랩스로 촬영해서 5분 안에 걸작이 탄생합니다. 여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학원에 와서도 걸작을 만들기 원합니다. ‘눈’이 높아진 것이죠. 부모님도 몇 개월 다니면 당연히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걸 다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받아들이는 속도와 실력에 따라 다릅니다.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는 생각의 속도와 세상의 속도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영화는 속도조절을 잘합니다.

소위 완급조절이라고 하죠. 기승전결의 시간 분배가 적절합니다. 보통 영화가 시작된 지 10분 안에 주인공에게 일이 ‘터진다고’합니다. 보통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10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영화에서 초반 10분 안에 주인공의 성장과정, 배경, 세계관을 모두 압축해서 담아내야 합니다. 또 영화 중간중간에 중요한 장면은 슬로 모션으로, 주인공의 성장에는 타임랩스로 빠르게 돌리기도 합니다. 느려서 지루하거나 빠르다고 재미있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성장을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해 봅시다.

생각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지금이 슬로 모션을 취할 때라고 생각하는 게 어떨까요? 감독이 이 부분은 몇 번이고 다시 촬영해서 들어가야 재미있다고 한다고 말합니다. 배우는 결국 계속 반복해서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완벽하게 해냅니다. 우리도 그러지 않나요? 수백 번이고 시도해서 간신히 성공한 경험, 누구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걸음마입니다. 대략 1000번 정도 넘어진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걸으려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일어서 있습니다. 이 부분은 타임랩스로 찍고 싶지만 불가능합니다. 완전히 다른 삶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장면입니다.


결국 일이 안 풀리고 빨리 안 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글루건이 빨리 굳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아이, 헬스장을 끊었지만 생각만큼 효과가 안 나오는 분,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하는 학생, 더 나은 삶을 위해 퇴근 후 열심히 공부하는 직장인들, 모두 중요한 장면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다르기 때문에 삶의 감독은 계속해서 반복 촬영을 요구합니다. 대충 찍고 넘어가면 결국 영화 전체가 허접해질 수도 있습니다. 철저하게 분석하고 반복해서 넘어가야 나중에 나라는 관객이 박수를 칠 대작이 완성됩니다. 그러니 우리 너무 자신에게, 서로에게 타임랩스를 원하지 맙시다.

작가의 이전글 먹는 것도 기념품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