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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Nov 17. 2019

아이들은 곡선으로 움직인다.

열 명의 남자아이들과 스페인! 스무 번째

바르셀로나를 걸어 다니면서 유독 과거 건축물을 많이 봅니다. 화려한 장식 중에서 곡선이 돋보입니다. 사실 건축양식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저 구불구불한 곡선에 눈이 많이 갑니다. 계속 건물을 관찰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직선으로 해도 되는데 굳이 곡선으로 처리한 이유가 뭘까?’


기둥 하나에도 곡선이 묻어 있습니다. 기둥과 천장이 서로 붙어 있는 수직의 공간에도 곡선을 넣었습니다. 곡선을 넣자 인상하게 눈길이 갑니다. 그냥 지나갈 건물도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은 수직이 많지만 곡선이 가득한 과거 건물들은 한 번씩은 힐끔 보고 지나갑니다.


곡선의 ‘끝판왕’은 당연히 가우디의 건물입니다.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그가 설계한 부호들을 위한 맨션인 ‘까사 밀라’에 가면 곡선이 숨 막히도록 가득 차 있습니다. 내부의 장식은 물론 가구조차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옥상에 가면 단순한 굴뚝이나 환기구 하나도 직선이 없습니다. 마치 외계인들 사이에 있는 듯합니다. 로마 병사를 상징하는 외관, 성모 마리아의 십자가 등 모든 것을 곡선으로 설계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사이에서 뛰어다니며 영상통화로 부모님께 보여주느라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행여나 위험할까(정확히는 민폐를 끼칠까 봐) 유심히 바라봤습니다. 다른 관광객들은 앞사람이 지나간 곳을 따라가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에 반해 아이들은 자유롭게 구불구불한 계단도 아랑곳 않고 다닙니다.


아이들을 관찰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곡선이구나


그곳의 특이한 조각들 모양처럼 아이들의 동선도 구불구불 곡선이었습니다. 평소 길을 갈 때도 그렇습니다. 굳이 똑바로 따라오면 되지만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기면 저리 갔다가 이리 왔다가 합니다. 선생님들은 더 피곤해지지만 아이들은 이상하게 힘이 더 샘솟는 것 같습니다. 왠지 아이들이 더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더 힘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최단 경로와 아이들의 경로

선생님은 구글 지도로 최단경로를 찾아 길을 갑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를 갈 때 최소 환승이나 최단경로를 찾지 최장 경로를 찾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릅니다. 굳이 안 봐도 될 것들을 보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면 가보려고 합니다. 문득 일본 여행을 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혼자서 하는 자유여행이었습니다. 그때 제일 행복했던 때는 목적지만 설정하고 가는 길은 최단경로가 아니라 맘 가는 대로 갈 때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눈길을 끌면 바로 다가가 구경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었습니다. 결국 도착시간이 예정보다 2시간 이상 늦긴 했지만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의 경로를 보면서 ‘조금은 구불구불하게 가도 괜찮겠다’ 생각했습니다.


직선은 성공 곡선은 방황?

흔히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장식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엘리트 코스’ ‘쉬지 않고 쭉 달려온 길’ ‘한눈팔지 않고 이 길만을 왔다’ 등 곡선보다는 직선적인 느낌이 많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그렇습니다. 내비게이션도, 지도 앱도 모두 최단경로만 보여줍니다. 가장 효율적인 길은 직선입니다. 곡선은 방황하는 것 같습니다. 수업 때도 아이들이 갈팡질팡 할 때는 걸음 자체가 구불구불 곡선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는 것이,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하는 것이 모두의 꿈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자신의 능력, 불의의 사고, 환경 등에 막혀 멈춥니다.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의심도 합니다. 그때의 길은 그려낼 수 있다면 구불구불한 곡선일 것입니다.


방황과 곡선 덕분에 우리는 살아남았다.

우리들은 시험 볼 때, 취직 준비할 때,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의  좌절감, 방황이 있습니다. 직선보다 곡선이 훨씬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방황 덕분에 우리는 성숙하고 삶을 소중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성공하기까지 대략 3000번은 넘어진다고 합니다. 그 덕에 뛰어다니고 새로운 삶의 레벨로 올라갑니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신의 경지에 이르려면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가우디의 건축물도 오랜 시간을 필요했습니다. 심지어 사그리다 파밀리아도 아직 30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떠나 새로운 경지, 삶의 레벨로 올라가려면 곡선은 필수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화성 탐사선에 탑재되어 있는 알고리즘은 최단경로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최신 기술로 무장한 탐사선은 최대한 작은 공간에서 많은 것을 관찰하도록 알고리즘이 짜여 있다고 합니다. 즉 최대한 구불구불하게 가도록 설정했다고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들과 같은 동선입니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 인류가 진화하려면 필수적인 움직임입니다. 어쩌면 가우디도, 우리의 삶도, 아이들의 움직임도 새로운 발전을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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