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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Nov 12. 2019

산만한 아들에게는 마찰이 필요하다

산만하고 정신없는 아들을 둔 어머님에게

오늘도 새로운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아이는 주저함 없이 학원을 돌아다녔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아이 그 자체였습니다.

수업을 하면서 아이의 행동은 마치 사냥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계속해서 움직여 사냥감을 찾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만큼 산만해 보이기도 했고 에너지도 넘쳤습니다. 아이에게 가만히 있는 것은 고문과도 같습니다. 그리기의 경우도 10초 만에 폭탄과 졸라맨을 다 그렸습니다. 다른 그리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기를 다하고 나서는 계속해서 주변의 돌아다닙니다. 구슬을 굴리기도 하고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칼을 휘둘러 힘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행동을 관찰하면서 평소 아이가 받을 평가가 예상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는 에너지 넘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지만 학교나 집에서는 ‘다루기 힘들고 산만한 아이’라고 불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생님과 신나게 칼싸움을 하고 난 뒤 아이는 자신이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엄마 아빠 말 안 들어서 제가 치료받아야 한데요.


이 말을 들으면서 부산한 움직임, 한 가지에 집중하기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보는 아이가 안타까웠습니다. 실제로 아이는 ADHD 판정을 받았고 약물치료와 병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후에 부모님께 용기 내어 말씀해 주신 것과 주저 않고 아이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만들기나 그리기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만들기의 경우도 힘도 세고 빨리빨리 작업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만큼이나 서툴고 완성도가 낮은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아이에게 테이프와 글루건을 주었습니다. 빠르게 칼을 만들지만 조금만 흔들어도 금방 부러질 듯 흔들립니다. 이런 모습에서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말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좀 꼼꼼히 해
천천히 해
대충 하지 말고


어머니가 정확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항상 듣는 소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말한다고 아이가 변할까요? 만약 말 한마디에 변한다면 우리 어른들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께 말씀드린 것은 이것입니다.


아드님에게는 마찰이 필요합니다.


어머니는 자뭇 궁금해하십니다. 마찰? 뜨거운 열? 말씀이신가요?


아닙니다. 강한 스킨십, 뒹구는 거, 그리고 무겁고 한 번에 끝내기 어려운 재료들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종이 자르기나 테이프는 아이가 금방금방 합니다. 글루건도 그냥 죽죽 짜버리지요. 그래서 수업에서 톱질을 시켜봤습니다.


톱질이요? 위험하지 않나요?


바이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규칙만 지키면 전혀 위험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몸에서 김이 날 정도로 힘차게 톱질을 했습니다. 일부러 어른들도 자르기 어려운 두꺼운 각목을 주었습니다. 원래 귀찮으면 대충하고 포기할 것 같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톱질했습니다.


실제로 아이는 기존의 재료들과 다르게 많은 힘과 마찰, 톱질에 따른 온몸의 진동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자극이고 아무리 자신이 힘들다 할지라도 조금씩 잘리는 나무를 보면서 성취감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무와 톱이 만나 마찰이 일어납니다. 마찰뿐만 아니라 진동도 발생하고 드득 거리는 톱질 소리도 발생합니다. 아이의 에너지가 곧 진동, 소리로 변환되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빠르게 결과를 볼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결과가 눈에 안 보이는 게 아닙니다. 아주 천천히 자신의 온 힘을 들일 때마다 조금씩 결과가 보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과정입니다.


온 힘을 들이되 다양한 자극으로 내 몸으로 돌아오는 것. 그리고 결과가 조금씩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산만한 아이에게 굉장히 필요한 마찰력입니다. 꼭 톱질뿐만이 아닙니다. 힘센 어른과 힘 있는 몸싸움, 뒹굴기도 좋습니다. 풀려 날 수 있을 때까지 꽉 껴안아 주거나 거꾸로 뒤집거나 하면서 서로의 강한 에너지를 교환하는 일, 즉 열이 발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끊임없이 주변을 건드리고 말하고 옴짝달싹 못하는 아이의 에너지를 열로, 진동으로, 소리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아이의 에너지는 즉각 차단됩니다.


그러지 마

정신없어 죽겠어

시끄러워.

가만히 있어.


이런 말로 에너지는 계속 쌓입니다. 아이는 에너지를 변환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쌓아두는 것밖에 하지 못합니다. 에너지는 결국 타인과의 갈등으로 변환됩니다. 마치 한평생 돈을 벌기만 했지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도박으로 날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온전히 타인과의 갈등이 아니라 내적 성장을 위해 사용하는 법을 알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직접적인 자극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마찰입니다. 최대한 많은 힘을 들여서 무언가를 만들게 해 주세요. 다만 무작정 반복 작업이나 누가 봐도 지루할 것 같은 작업이면 안됩니다. 제일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톱질과 드릴로 구멍 뚫기입니다. 망치로 무언가를 부수는 것도 좋지만 워낙 시끄럽고 안전문제도 발생합니다. 바이스를 이용해 한 손만으로 톱질하면 훨씬 안전합니다. 드릴도 저속 회전 드릴을 사용하면 충분히 안전합니다. 안전규칙을 정해주고 함께 해보세요. 산만한 에너지가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할 때 함께 있어주세요. 자신의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법을 배울 때 아이는 산만함도 다룰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은 산만한 아이를 대상으로 쓴 하나의 팁입니다. 정답은 다양합니다. 만약 ADHD 판정을 받고 약물 처방을 받고 있다면 전문가의 지시를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집에서 아이와 함께 무언가 하고 싶을 때 이 방법을 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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