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MENT

글쓰기에 대하여

쓰는 삶이 되기 위하여

by 박규규

나에게 글은 언제나 쓰지 않을 때 글 같았다. 내가 쓰지 않을 때 비로소 글처럼 느껴졌다.

내 몸 가득 넘실넘실 차오르는 생각과 문장들이 내 손끝에 머물 때 글 같았고, 가득 차올라 눈물로 휘발될 때 글 같았다.


내 몸 가득 차올라 더 이상 손끝에도, 눈물에도 머물 수 없을 때 글을 썼다.

늘 한숨으로 시작하고 한숨으로 마무리했다. 글자를 적기 위해 존재하는 백지들은 나를 좀먹었고, 나는 눌러쓰던 활자와 필압은 나를 압박했다. 글자와 글자 사이 존재하는 틈에 나의 마음을 숨겨 놓게 되니 나의 글은 언제나 비문으로 가득했고, 정작 어디에도 소비될 수 없는 문자만이 가득했다.


국문학을 전공한 나에게 글쓰기는 언제나 약점이었다. 감성은 충만했고 두서는 없었다. 쓸 때마다 계획과는 다른 글이 맺어져 언제나 내 손에서 폐기 처분되었다. 누군가 글을 쓰는 걸 요청할 때 두 눈은 흔들렸고, 요상한 말들로 요청을 회피하기에 바빴다. 내 어휘는 언제나 부족하여 부족을 채워보려 시를 읽었다. 시를 읽으면 그 순간 내가 시인이 된 듯하여 다시금 쓰게 되었으나 그것도 몇 편의 글과 함께 좌절되었다.


요즘 내 안에는 무수한 생각들이 떠다닌다. 뭔가를 쓰고 싶어 미쳐버릴 것만 같은 순간들이 나를 잡아먹을 때가 있다. 털어도 털어지지 않는 순간들과 머리를 터져버리게 만드는 생각들로 꽉 차있다. 지금 이렇게 쓰는 것도 조금은 소비하고자 쓰는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고 다시 보게 된다면 또 폐기처분이 되어버릴 게 뻔한 이 글을 바로 이 공간에 박제하고 부끄럽게 바라보려 한다.


언젠가는 ‘귀한 시작이었다’ 생각할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나에게서 배설되어 잔인하게 뜯기고 부서져도 이 욕망이 내 안에서 다 나가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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