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의 할머니

『나의 할머니에게』

by 박규규

나의 할머니에게

우선, 이 책의 기획력에 감탄과 찬사를 보냅니다.

할머니에 대한 소설 엔솔로지라니. 내겐 취향 저격을 넘어 필수 불가결한 책이다.

할머니. 너무도 많은 추억을 함께한 나의 두 할머니를 생각하며 읽었다.

소설 리뷰를 빙자한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할머니와 단둘이서 12일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난생처음 24시간 12일을 꼬박 할머니와 함께한 그 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자신이 피해가 될까 한국에서 영양제 주사 맞고 온갖 약을 미리 다 타 오신 할머니.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해 늘 1등으로 집합장소에 가셨던 할머니. 그 누가 괜찮냐 물으면 묻지 말고 갈 길 가라 손사래 치던 할머니. 사진 찍자고 하면 됐으니 너나 실컷 찍으라고 핸드폰을 뺏어 나를 찍어주던 할머니. 늦은 밤 내게 컵라면 하나 끓여 같이 먹자 조심스레 귓속말하던 할머니. 아침엔 한국에서 챙겨 온 홍삼 분말을 뜨거운 물에 타서 내게 마시라고 역정을 내던 할머니. 70대의 몸으로 그 고된 패키지를 소화하느라 숙소에 오면 그냥 곯아떨어지는 할머니. 다리를 주무르면 됐다고 가서 니 할 일이나 하라고 소리치면서도 가만히 안마를 받던 할머니. 좋은 풍경을 가만히 보다 나를 지긋이 불러 이야기하던 할머니.

“나는 눈에 가득 담아 갈 거야. 사진은 필요 없어. 내가 여길 다시 올 일이 있겠냐. 내 인생에 여긴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니 그냥 눈에 가득 담아 갈 거야. 너도 사진 말고 눈에 가득 담아.”


할머니는 본인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여행을 했던 거였다.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고 계셨다.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에 고개를 돌려 “됐으니 사진이나 찍어. 남는 건 사진이야. 난 사진으로 할머니랑 온 거 기억할 거니까 가만히 서 있어봐.” 하며 퉁명스레 할머니를 찍었던 기억이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올랐다.


감히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여섯 편의 소설은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를 재현한다. 그리고 먼 미래 노년의 모습까지도 상상하게 한다. 내 옆에 서 있는 할머니의 삶과 그 내면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책을 읽다 할머니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 손가락 각 한 마디씩이 없다는 게 불현듯 떠올랐다. 어렸을 때 낫에 베여 잘렸다고 한다. 그 어린아이가 겪어야 했을 아픔이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할머니의 시간이 궁금하다. 그리고 듣고 싶고 할머니의 곁에 있고 싶다. 할머니의 식혜가 오늘따라 생각난다.


사실 이 책에 대해 써 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다. 근데 결국은 다 지우고 이렇게 만 남았다.

소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좋으니 꼭 읽었으면 좋겠다.

윤성희의 소설은 세심함과 온기가 여전히 좋았고, 백수린의 소설은 외로운 마음과 할머니를 향한 애정이 가득 느껴져 좋았으며, 강화길의 소설은 특유의 냉철한 시선과 분위기에 정신이 번뜩했고, 손보미 소설 특유의 문체와 서사에 다시 매료되었으며, 최은미 아득함과 뭉근함이 좋았고, 손원평의 잔혹한 상상력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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