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일하는가

김혜진,『9번의 일』

by 박규규


사람으로 태어나 부품의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삶의 과정.


이 소설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을 일했던 남자가 ‘저성과자’‘관리대상’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세 번의 직무교육과 퇴직 권유를 받았다. 남자에겐 아직 고등학생 아들을 비롯 가족과 남은 대출 이자가 있다. 결국 퇴직을 거절하여 상품 판매직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이것이 끝이라면 해피엔딩이었을까. 계속해서 직책과 근무지는 바뀐다. 그에 따라 남자는 점차 인간의 모습에서 회사의 부품이 되어간다. 살기 위해, 그저 안정적인 삶의 모습을 영위하기 위해 발버둥을 칠수록 남자의 인간성이 상실된다.


“나는 회사가 시키면 뭐든지 합니다. 그게 잘못됐습니까.”

그는 어느새 한 시골 마을에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파견 나가 마을 주민들이 부지 위에 세운 반대 텐트를 부수고 공사 기초를 다지는 일을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게 하는 그의 대답은 위와 같다. 그를 칭하는 이름은 9번이다. 일에 이름은 필요 없다. 이 일이 끝나면 다시 그는 원래의 삶을 되찾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 끝에 안정이 없을 거라는 걸 독자는 알 수 있다. 소설의 전반에 걸쳐 보기 싫은 문장이 있었다. “저도 모릅니다. 저도 시키는 대로 해야죠. 어쩔 수 있습니까”“회사의 지시대로 움직일 뿐” 따위의 문장들. 문제 원인의 흐름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찾을 수 있을까. 시작도 전에 무력과 패배에 고개가 숙여진다.


“만족스러운 삶, 행복한 일상, 완벽한 하루, 그런 것들을 욕심내어본 적은 없었다. 만족과 행복, 완벽함과 충만함 같은 것들은 언제나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짧은 순간 속에 머무는 것이었고, 지나고 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것에 불과했다. 삶의 대부분은 만족과 행복 같은 단어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쌓여 비로소 삶이라고 할 만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남자는 믿었다. 나도 믿는다. 삶의 자세와 태도의 문제일까. ‘인간성’이라는 정의가 바뀌고 있는 것일까. 일은 무엇인가. 일을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소설은 계속해서 질문한다. 황량한 소설 끝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살기 위해 노동하지만 노동을 통해 삶의 중심이 썩어가게 하는 자본과 시스템을 낱낱이 고발하는 비극. 마음을 다치게 하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게 하는 자본의 논리와 이익에 눈먼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일이라는 건 결국엔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좋은 거, 나쁜 거, 그런 게 정말 있다고 생각해요?” 책 속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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