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기억, 담배의 기분

『커피와 담배 , 정은

by 박규규

“쓰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해 쓰는 것이고, 정직하게 대면한 맨얼굴을 드러내며 쓰는 것이다.”


『커피와 담배』 제목만 보고 골랐다. ‘정은’이라는 작가의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

나에게 커피와 담배는 늘 익숙함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양가적 존재다. 밀도 높게 꽝꽝 언 각얼음에 담긴 산미 가득한 커피는 내 취향을 상징한다. 그리고 타인과의 만남의 도구로서도 훌륭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는 커피가 좋다. 이상한 로망과 멋짐을 상징하나 그러나 고약한 냄새에 뒷걸음치게 하는 담배는 내게 가깝고도 가깝고 멀고도 멀다. 늘 생각나지만 기어이 욕구를 꾹 참고 피지 않는 담배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늘 몽롱하게 내 안에 존재한다.


커피와 담배라는 주제로 정은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자신을 글 안에 담았다. 나는 글 안에 본인이 녹진하게 담긴 이야기를 애정한다. 끈적한 이야기를 마음에서 휘휘 젓다 보면 사이사이 내 내면 한 켠 쌓인 이야기도 어느새 묻어나와 나를 덮는다. 난생처음 읽어 본 작가의 글에서 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커피를 매개로 만났던 여러 만남과 독한 담배 연기를 쫒아 헤매던 방황의 길들이 책을 읽으며 스쳐갔다. 그렇게 만난 인연과 이야기를 입안에서 잘근잘근 곱씹었다. 타인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와 만날 때 생기는 화학적인 반응은 늘 나를 책상 앞에 앉게 한다. 끝내 내 이야기를 적는 것으로 귀결된다.


각얼음을 휘휘 젓다 시원하게 들이마시는 커피는 상상만으로 나를 즐겁게 한다. 늘 천천히 마시는 터라 점차 얼음이 녹고 그 색이 연해지는 걸 바라보며 달라지는 농도를 즐기는 일도 내겐 커피의 재미다. 아침에 끌리고 식사 후엔 간절해지는 커피의 마력이 이 글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읽는 재미와 감각 재미가 눈 앞에서 그려진다. 말의 흐름에 흘러가다 보면 책은 끝나고 아쉬움만 가득하다. 괜히 입만 쩝쩝 다시다가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내려 마신다. 그리고 저 먼 허공에 흡-파-흡-파 멋쩍은 공기를 뱉으며 담배 피워보는 시늉을 해본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이야기가 주는 힘. 나와 연결고리 없는 인물의 목소리가 내게 끼치는 영향. 이게 글이 읽는 이에게 닿는 묘미이자 독서의 즐거움일까.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서 즐거움과 영향을 받는 일. 취향을 쌓아가는 일. 오늘도 쾌락 충전이다.


기대 없이 읽은 책에 빠질 줄은 몰랐다. 작가와 출판사 등 여러 나름의 기준으로 책을 고르던 내게 새로운 독서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아쉬운 건 딱 하나. 너무 약한 책의 재질. 쉽게 표지가 헤지고 책이 휜다. 가격에 비해 너무 모자란 책의 질이 아쉽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말할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