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용기

아니 에르노,「사건」

by 박규규

생생한 뜨거운 날 것 그대로의 자전적 글쓰기를 실천하는 아니 에르노의 글에는 힘이 있다. 이번에 읽은 「사건」은 아니 에르노가 20대에 경험한 임신 중절에 대한 자전적 글이다. 1963년, 임신중절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던 프랑스에서 작가가 경험했던 사건을 철저하게 낯낯이 최선을 다해 복기하는 글이다.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방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에서 당사자로서 겪는 본인의 감정과 타인의 시선에 대해 작가는 처절하게 이야기한다.


현실은 소설보다 잔혹했다. 소설이라는 하나의 안전망을 벗겨 ‘임신 중절’, 그러니까 ‘낙태’라는 것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은 생경함을 넘어 혼란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제대로 보라고 우리에게 자신을 던졌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분노나 혐오감을 자극할 수도 있을 테고, 불쾌감을 불러일으켜 비난을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라는 아니 에르노의 말이 가슴에 비릿하게 남는다. 섹스는 모두의 몫이었다가 임신은 여성의 몫이 된다. 임신중절을 고민하는 여성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모두 비슷하다. 타락하고 더러운 여자라 낙인을 찍어 각자의 판단과 잣대를 무자비하게 휘둘러 점차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사회가 법으로써, 제도로써 임신과 낙태를 보호하지 않는다. 보호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오로지 여성의 책임으로 몰아세울 뿐이다. 아니 에르노는 이 사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명징하게 보여준다.


“늘 그래 왔듯 임신 중절이 나쁘기 때문에 금지되었는지, 금지되었기 때문에 나쁜지를 규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법에 비추어 판단했고, 법을 판단하지는 않았다.” 함께 더욱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이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걸음에 발맞추어라도 우리는 이 글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읽으며 나의 한계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주 이외의 것이라 생각했던 나를 보았다. 제발 귀를 닫지 말자 다짐했다. 더 많은 목소리를 듣자고, 목소리를 내자고 생각했다.


‘칼 같은 글쓰기’를 실천하는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 늘 도전을 받는다. 무언가를 쓸 용기. 무언가를 말할 용기. 가슴 깊이 묵혀두었던, 또는 현재 진행 중인 나만의 감춰둔 이야기를 살아있는 그대로 깔끔하게 도려내 쓰고 싶다는 욕망이 인다. 언젠가 이 욕망을 제대로 표출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에 감탄한다. 멋진 글을 작고 가벼운 판형에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담아 ‘쏜살’같이 독자에게 꽂히게 하는 시리즈. 살짝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뺀다면 매우 감사한 기획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두꺼운 책을 다 읽어야 하는 것이 부담이라면 쏜살문고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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