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삶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by 박규규

제2차 세계대전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한 반전(反戰) 소설이다. 주인공 빌리 필그램의 시간여행을 따라 뒤섞인 시간과 사건을 마주하며 한 인물의 생애와 그 전쟁의 이야기를 고루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반전(反戰)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냥 전쟁을 허망하게 스쳐 지나가듯 보여줄 뿐이다. 드레스덴 폭격도 지나가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오히려 전쟁이 끝난 후 에드거 더비가 찻잔을 훔쳐 총살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가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전쟁 영웅은 이 소설에 없다. 동료를 구하지도 나라를 구하지도 않는다. 폐허로 변한 전쟁의 참극도 “잿빛의 달 표면”, “돔을 이루고 있는 돌과 목재로 이루어진 레이스” 등과 같이 눈에 비극이 바로 그려지지 않게 묘사한다. 우연히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은 수동적인 인물 빌리를 앞세워 보게 되는 이야기 속엔 전쟁의 스케치만 보인다. 전쟁 앞에서 개인은 힘이 없다. 그리고 그냥 상황에 따라 우연히 살거나 또는 죽는다. 모든 죽음 뒤에 “뭐 그런 거지”라며 덤덤하게 당연한 순리처럼 받아들이는 빌리의 말이 더욱 비극으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이 소설에는 재밌는 장치들이 많았다. 먼저,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과 생명체다. 외계 생명체를 만나 시간과 시간 사이를 발작적으로 여행하며 소설의 서사가 진행된다. 행성의 생명체는 좋은 것만 본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은 이렇다. “하지만 다른 날에는 당신이 보거나 읽던 어느 전쟁 못지않게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냥 안 보고 말지요. 무시해버립니다. 우리는 기분 좋은 순간들을 보면서 영원한 시간을 보냅니다.” 이들의 태도가 곧 빌리의 태도가 되는데 전쟁의 고통 앞에 어쩔 수 없이 체득하게 되는 사람의 모습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는 도입이다. 1장에 한 소설가가 전쟁 한참 지난 후 드레스덴에 대해 소설을 쓰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드레스덴에서의 상황을 복기하기 위해 친구를 만나러 간다. 친구의 부인은 소설을 쓰려한다는 그의 말을 듣고 말한다. “그럼 전쟁은 그냥 멋지게 보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또 많이 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전쟁에 위층에 있는 애들 같은 어린아이들이 나가 싸우게 되겠죠.” 나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흐름을 시작하는 큰 장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현실과 너무 멀어지지 않게 그 긴장을 유지하도록 돕는 지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매우 좋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소설의 서사에선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몬태나의 작은 로켓 속 문장이다. 이 문장은 나에게 에피파니(epiphany)를 선사했다. 이는 쾌감과 울렁임에 한동안 묵상했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겪을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눈물 없이 슬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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