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무용(無用)의 춤을

나는 왜 시를 읽는가?

by 박규규

소용과 쓸모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에서 시는 무용(無用)의 것이구나, 전공 교재와 ‘최신’, ‘최다 빈출’이라는 이름이 당당히 적힌 자격증 교재들 더미 옆에 어느새 먼지를 소복이 뒤집어쓴 시집들을 보며 생각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학업과 스펙 쌓기의 연속에서 시를 찾아 읽는 것만큼 낭비되어 보이는 것이 있을까. 찰나의 순간에도 나의 시선을 빼앗아 갈 준비가 된 영민한 사냥꾼 같은 매체들의 유혹을 피해 가뜩이나 이해할 것도 너무 많음에도 이해할 걸 더 늘려가는 행위인 시 읽기는 누구와 대화 거리 조차 되지 않는 낭비의 모양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내가 시를 굳이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쓸모를 증명하려 바둥거리는 취준생인 내가 유일하게 죄책감 없이 일탈하는 시간이 시를 읽는 시간이다. 비록 시를 읽으려 무거운 책가방에 한 권을 더 챙겨가는 수고와 아르바이트 시작 전에 잠시 읽고자 30분 일찍 출근하는 수고를 들여야 할 때도 있다. (이 정도 수고는 사실 취준생 모두가 경험하는 찌질한 무력감에 비하면 가볍기만 하다) 그렇게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시를 읽을 때면 예민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무언가를 발견하는 시인들의 시선과 사유를 나에게 닿게 하여 세상을 조금 더 다양하게 바라보게 된다. 시인의 언어와 나의 마음의 온도를 맞추고 시선을 주고받으며 활자의 감정을 톺아가다 보면 운명처럼 나에게 닿는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때 오는 희열의 기억이 계속 시를 찾게 한다. 가끔은 웃기게도 시를 읽으며 경험한 시인의 시선과 사유가 내 것이 된 것 같아 나름 내가 이 사회 속에서 썩 나쁘지는 않은 사람, 그래도 마냥 버려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적당한 값어치가 있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내 몸에 감정의 폭동을 덕지덕지 붙여준 김소연의 시, 일상의 언어로 일상의 마음을 위로하는 박준의 시, 그 무엇도 시가 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멋진 감탄을 뱉게 한 김민정의 시, 따뜻한 시선이 나를 살게 하기도 함을 알려준 문태준의 시, 낯설고 이질적인 감정을 찾아 떠나게 만들어준 임경섭의 시, 미지근한 회색의 온도로 생각을 건축물처럼 쌓아 올리게 해 준 박세미의 시 등을 읽으며 느낀 나의 순간들이 쓸모가 없다 하여도 좋다. 때로는 그들의 문장을 사랑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들의 시선을 동경하기도 하며, 좋은 시를 만나면 시집 귀퉁이를 꾹꾹 접어가며 힘차게 표시하던 나의 행동이 쓸모없어도 좋다. 그래도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러니 그럼에도 시를 읽는 동안은 내가 좋아하는 일의 기쁨과 해야 할 일들을 마주 선 경계에 두고 무용(無用)의 춤을 추는 어린아이로 살고 싶다. 시가 영원히 아름답고 쓸모없는 존재로 내 안에 남아주었으며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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