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 모호한 뜻만으로 충분하다

『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by 박규규

“모든 건 사라지지만 점멸하는 동안은 살아 있다. 지금은 그 모호한 뜻만으로 충분하다.”(「전갱이의 맛」)

언젠가 단편 소설이 주는 미완(未完)의 완(完)이 주는 기분이 좋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장편보다 단편 소설을 읽을 때 남는 긴 여운이 더 좋다고도 했다. 이번 소설집을 읽으며 이 기분을 오롯이 체감했다. 영민한 사냥꾼의 소문난 솜씨를 눈앞에서 마주한 기분이었다. 사냥꾼은 삶의 비극의 한 면을 계속 사냥했고 나는 솜씨의 방향을 목도하는 내내 손톱에 힘을 주었더니 살갗에 손톱자국만 가득했다.


경제적 곤궁의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손톱」, 「너머」, 「친구」 이 세 편의 소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엄마가 언니의 돈과 대출을 모두 들고 도망갔던 것처럼 본인의 돈과 대출을 다 들고 사라진 언니가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저금하고 빚을 계산하는 소희는 결국 본인의 다친 손톱의 치료비로 날아갈 돈 걱정에 “엄마 없이도 살았고 언니 없이도 사는데 그깟 손톱 없어도 된다”며 손톱을 유리에 짓누르는 모습(「손톱」). 두 달간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N은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N이 학교에서 겪는 복잡한 사건들은 정규와 비정규의 문제다.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기에 계약 연장을 원하던 N은 그들의 가름 놀이에 다 포기하고 싶지만 다시 계산하는 모습(「너머」). 학교폭력을 당했음에도 ‘친구’라며 오히려 그들을 불쌍해하며 걱정하는 민수와 친굴 걸요, 하는 엄마 해옥의 모습(「친구」)을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하기엔 분노가 치민다. 이들의 모습은 사회의 가학적인 이면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누군가의 단면이다. 이들의 삶을 바라보고 있자면 사실 나와도 그렇게 멀게 느껴지진 않는다. 단지 누군가는 겪어야 할 일을 이들이 대신 겪게 된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래서 개인의 불행일 수 없고, 그래서 더욱 분노케 되고, 그래서 무력한 슬픔에 휩싸여 머물게 된다.


“소희는 강변을 달리는 통근버스 차창에 바짝 붙어 앉아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본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알지 못한다.”

요즘 책에 손이 가지 않는다. 활자의 이불을 덮고 누울 수가 없다. 삶의 무력감과 허망함이 차올라 다른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시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읽었다. 하필 이 책이어서 많이 울 수밖에 없었다. 읽음으로 내가 다시 드러나진 않았다. 그저 천천히 다시 사라졌다. 희미하고 투명하게, 슬프면서 좋았다. 그런 게 왜 있는지 나도 알지 못한다. 사라지는 기분을 배웠다.


아직 멀었다는 말, 이 소설집의 제목이 담고 있을 의미를 생각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만든 수많은 '너'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