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겨울방학』
무언가를 상실한 채(그렇다고 정의되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대체로 자본주의 사회 속 가장 필요한 물질인 ‘돈’이 없는 삶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으며 그 밖에도 사랑을, 가족을, 신체의 자유로움을 잃은(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삶을 보여준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서사에 담긴 이야기들 속에는 삶의 표피를 꿰뚫어 마주하게 문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애초에 비판적인 읽기가 잘 안 되는 나지만 이번에는 시도조차 하기 싫어 이야기에 집중하며 읽었다.
자신의 집에서 잠시 지내는 조카에게 “네가 내게 배운 것이 가난만은 아니라면 좋을 텐데”라고 말하며 어린 조카가 너무 빠르게 알아버린 ‘가난’이라는 추상적인 비교 수단을 친밀함으로 가려주는 고모의 마음이 맴돈다.(「겨울방학」) 자신의 방 앞을 가로막은 벽 때문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 갇힌 ‘나’는 마음먹으면 충분히 부수고 나갈 수 있다, 생각하지만 그 고립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매일 전화를 걸어 ‘나’를 꺼내려는 회사 팀장의 회유 속에서 매일 눈을 뜨고, 돈을 벌어야 된다, 생각하면서도 스스로의 고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에 잠시 빠졌다. 현대 사회에서 능동적인 고립은 곧 죽음과 같다. 그럼에도 나에게도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나도 고립을 자처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공감에 빠졌다.(「囚」) 불편한 다리에 대한 시선을 감내하며 쉼 없는 노동으로 살아온 ‘조’. 어머니의 요양 병원비까지 충당하려면 더욱 일이 필요해 찾아간 먼 곳의 카페에서 만난 사람은 자신들의 장소가 ‘기다리는 곳’이라 말한다. 자신에 대한 편견 없는 그에게 카페에 대한 소개를 듣고 커피를 배우다 “어머니가 수술실에 들어간 그때에서 이제야 1초”가 흘렀음을 인지한다. 삶의 버거움에서 그제야 조금 벗어나 안정감을 누리게 된 그 순간의 안온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삶은 공평하지 않다. 언제나 상대적이고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 속에서 가치를 찾고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때론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에는 저마다의 소중한 무지개가 있다고 소설은 말한다.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인생의 갈래에서 무지개를 찾는 행위는 때론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희망 없는 고문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삶의 깊은 밑바닥부터 샅샅이 어루만지고 만지다 보면 내 현실의 순간과 절묘하게 맞닿아 발견될 작은 무지개는 반드시 존재한다. 허공에서 공기를 잡는 듯한 허무맹랑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아 좋았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스스로 작은 무지개를 찾아내는 이야기이기에 천천히 읽고 싶었다.
추운 현실 속에서 잠시 주저앉아 쉬다 보니 어느새 따뜻해지는 봄을 발견하는 겨울방학 같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