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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늼 Feb 03. 2017

01. 첫 번째 이직 준비

생애 처음으로 취준생이 되었다.

0.

작년 11월 나는 1년 간 일하던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나의 첫 번째 회사이자 첫 사회 경험을 안겨 준 회사를 나오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이제 퇴사한 지 3개월. 이제야 나는 슬슬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2개월을 쉬면서 내가 일했던 회사와 일하고 싶은 회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퇴사하는 시점에 미리 글을 써 둔 게 있지만 그때의 감정을 좀 누르고 다시 글을 쓴다. 사실 일을 구한다고 얘기하는 게 창피한 것도 있었다. 내 기준에서 '27살에 무직인 상태에서 알바로 전전긍긍 삶을 연명하고 있는 내 자신'이 그렇게 바람직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 첫 직장의 과거를 정리한 시점이 되니 새롭게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이제야 나는 스스로 '일을 구하고 있다' 고 말하고 있다.


01.

어제 인턴을 같이했던 옛 동료가 본인이 같이 일했던 대리님이 일하는 PR회사를 추천해주었다. 우연찮게도 구직 사이트에서 내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회사였고, 관심 순위가 높았던 회사를 언급해서 사실 굉장히 놀랐다. 사람이 살다 보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느낄 때가 있지 않나? 난 이번에 그런 필연이 다가온 줄로만 알았다. 근데 숨을 고르고 나니, 그 회사가 정말 나에게 맞는 회사가 맞는지 궁금했다. 괜히 너무 고맙다고 마치 바로 입사할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나 걱정도 되었다. 하필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밖에 있던 터라 자세히 살펴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추천해준 회사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PR 회사다 보니 내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대행사들 특성상 클라이언트들의 일을 대신해줄 뿐 본인들의 이야기를 외부에 노출 하지 않는 것 같다. (전에 일했던 회사도 BTL 행사를 주로 하던 PR회사였는데, 창업한 지 8년이 가까이 되었음에도 외부에 노출된 기업 정보는 거의 없다.) 그래도 전 회사는 오프라인 프로모션으로 브랜드를 가지고 있던 터라 프로모션 브랜드가 좀 알려져 있었을 뿐, 근무 환경에 대한 얘기는 어디에서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생각하고 보니 내가 일했던 첫 회사는 알려지지도, 알 수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도대체 뭘 보고 일은 시작한건지...' 이쯤 되니 과거의 내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는 분명 이전 회사와 맞지 않는 점이 있었고, 바라는 것이 달라 회사를 나왔다. 다시 이직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이 회사는 전 회사와 무엇이 다른가? 내가 바라는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02.

전에 일했던 회사. 돌이켜 보자면, 나는 회사의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고 관리하는 목적으로 입사 했었다. 그 새로운 브랜드는 장차 회사 성장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사회적 기여에도 관여할 수 있는 브랜드였다. 나는 그 뜻에 공감하였고 큰 관심을 보였다. 아니 관심을 넘어 그 브랜드를 소유하고 싶었다. 브랜드를 성장시켜서 분사하는 것. 그래서 나는 입사 때부터 최종적인 목표가 '퇴사'였다. 이 기형적인 시작은 원래 친분이 있던 대표님의 권유도 있었고 그간 꿈꿔왔던 창업의 꿈도 함께 있었다. 그렇게 입사 후 석 달간 나는 맨땅을 팠다. 처음 보는 직원들에게 새로운 브랜드가 나와야 하는 이유를 공감시켜야 했고, 미션을 만들고, 수익모델을 만들고 심지어 로고까지 모든 걸 만들어야 했다.


브랜딩을 런칭한다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솔직히 체력과 정신의 한계 모두에 부딪쳐서 나는 브랜딩 런칭을 포기했다. 정말 힘들었다. 절대로 두 번 다시 하기 싫다는 생각으로 모든 의욕을 잃었다. 대표님께서 큰 힘을 실어주시긴 했지만, 당시 나에게만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없는 환경 탓에 나 혼자 동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어쨌든 회사 입장에서는 브랜드 런칭을 안 할 수 없었다. 결국 대표님이 나 대신 더 뛰어들어서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대표님이 투입된 후 딱 16일 만에 이름이 정해지고 페이스북 페이지 런칭과 첫 번째 프로젝트까지 수주가 되었다. 좌절감과 성취감 모두를 얻었던 시간이었다. 이 과정 속에 시간은 물 흐르듯 지나갔다. 


어떻게 지나갔는 지 몰랐던 이전 회사의 나날을 다시 되짚어 본다. 일단 브랜드를 런칭한 초기에는 야근과 주말 출근이 밥 먹듯이 있었다. 자기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고, 한 사람이 가지는 업무 책임감이 매우 높았다. 사내 분위기는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음료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었다. 대표님은 조심성이 많은 다혈질 족장 같았다. 언제어디서나 내 팀원 대신 몸 바쳐 싸워줄 든든한 리더였다. 팀장님은 진행할 일들에 마음은 급하지만, 시간을 느리게 만들 줄 아는 속 깊은 수도승 같았다. 그 외 모든 직원들은 사람다움이 넘쳤고 그 중에 나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전우애가 넘치는 곳이었다. 


우리가 힘들게 일을 했던 탓을 하자면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벌게했던 소수의 클라이언트새롭게 시작한 일들이 자리잡지 못해 미숙했던 업무 프로세스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힘들게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갔다. 프로세스를 직접 만들고, 자체적으로 실험을 하고, 희생도 하고, 혜택도 보면서 시스템을 만들어나갔다. (비록 난 오래 일하지 않았기에 혜택을 많이 못 받았지만, 회사에 충분히 기여한 이들에게는 금전적인 혜택도 많았다.) 그래서 퇴사 말미에는 팀 제도가 자리잡기 시작했고, 근무 환경이 조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욕심이 많았고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것을 찾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회사 구성원들이 이 사실을 인정해주었고, 나는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떠난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다.




02. 그만 둘 줄 알았더라면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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