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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Nov 20. 2020

두렵지만 하고 싶은 글쓰기

나의 브런치 첫 발자국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학창 시절, 손자병법의 이 말이 인상적이었던 탓일까. 어렸을 때 나는 그럴듯한 말이면 아무 데나 다 적용해서 생각해버린 듯하다. 안타깝게도 인간관계에서조차 이 말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미니홈피 글이건 무엇이건 내가 다른 사람의 글과 사진을 보는 것은 괜찮지만 남이 나에 대해 아는 건 내 손해라고 생각했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나의 무언가를 드러내는데 두려움이 많다. SNS도 공개 계정은 생각도 안 했고, 요즘에서야 비공개 계정으로 몇몇 친구들하고만 조금 하는 정도다. 그런 내가 왜 글쓰기를 하려는 것일까. 며칠 전 글쓰기 뽐뿌를 받고 브런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계정이 이미 있었다. 심지어 약 2년 전 '글쓰기를 해볼까'라는 아무 내용 없는 글이 내 서랍에 있었다.


2년전 나도 모르게 기억에서 사라졌던 글쓰기 다짐글


 2년 전의 나도 글쓰기를 해보려 (생각만) 했었다.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저 글 이후로 한 포스트도, 아니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브런치에 가입했고, 글쓰기를 다짐하는 포스트를 썼다는 것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글쓰기 엄두도 못 내면서, 글쓰기에 자꾸 기웃거린다. 그냥 써보면 되지, 나는 왜 주저하는 걸까.




주저하는 이유


 우선 서두에 말했듯이, 나를 드러내는 게 두렵다. 옛날부터 개인적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별로 해본 적이 없다. 글을 통해서도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 알게 되는 게 싫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그걸 보고 왈가왈부하는 게 싫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할 일을 풀어놓는 것만 같았다.


 그런 나에게 글쓰기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완성된 이유와 결론으로 완벽한 전후 사정을 담는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읽고 오해가 없도록 말을 고르고 골라 기승전결에 맞게 쓰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댓글로 달릴 악플들을 예상한 후, 이를 사전 차단할 논리를 미리 실어 놓는 것이다. 당연히 이는 곧 마음의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을 좋은 모습, 좋아 보이는 이야기만 쓰는 것이다. 이건 우선 써지지가 않았다. 좋아 보이는 무언가만 골라 쓰려고 하니, 별로 쓸 거리가 없었다. 그리고 쓰면서도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다. 아, 재미없다. 자신의 진심과 진짜 이야기를 쓰지 않으니 술술 쓰지 못하고 억지로 쓴다. 글은 껍데기만 있는 듯 뻔하고 생기가 없다.


 또 다른 주저하는 이유는 그냥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학과 과학을 더 좋아하던 공대생이었다. 글쓰기를 배우거나 연습해 본 적이 없고, 몇몇 글을 쓸 기회에서는 그다지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뭇 공대생들처럼 핵심만 딱 말할 줄 알았지 잘 풀어쓰거나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글을 잘 못 쓸까봐 두렵다.


근데 나는 왜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


 살면서 나에게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재밌는 일, 신기했던 일, 슬픈 일, 놀라웠던 일 다양한 일들이 있었고, 또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며 가치관도 바뀌기도 했다. 분명 많은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 집에 앉아 생각하니 지금 거울의 내 모습이라는 사진 한 장만 달랑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라는 시간을 강물에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언가 남기고 싶었다. 무언가 남길 수 있는 일 중에 글쓰기가 제일 만만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글쓰기가 아니라 끄적임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잘 쓰는 능력은 없어도, 뭐라도 끄적이는 건 그래도 아무것도 없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다. 풀어서 말해보자면 내가 글을 쓰면 누군가가 읽고 '너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랬구나. 나도 이건 그렇게 생각하고, 저건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얘기하는 거다. '오 반가워.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어. 저건 나도 들어보니 공감이 간다.' 그렇게 몰랐던 사람이 서로 알게 되고 공감하고 깨닫고 배워간다.

 기본적으로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내가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나는 누군데, 우리 이 일을 한 번 해봅시다'할 수는 없지만, 나누어지는 글을 통해서는 가능하다. 그냥 글을 쓰는 일이지만 어떤 즐거운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그러니까,

글을 못 써서 두렵지만, 끄적이는 건 가능할 듯해서

그리고 나를 드러내는 건 두렵지만,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쓰기와 함께 하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내 작은 결심이 나에겐 삶이 되고, 누군가에겐 반가움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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