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지만 요리를 안 했다.
나 혼자 먹을 건데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이 아까웠다.
맛에 대한 역치가 낮은 나는
라면 정도면 만족감과 효율성에 있어서 최고의 음식이었다.
다른 게 먹고 싶을 땐 그냥 사 먹거나, 시켜먹거나...
제주에 내려와서 요알못인 내가
요리를 해보겠다고 주방에 자꾸 얼쩡거리고 있다.
당근사과 주스도 만들어보고, 감바스도 만들어보고,
요리 잘하는 친구 옆에서 도움 안 되는 보조도 자청해서 해보고 있다.
얼마 전 읽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에서
주인공이 여름 별장에서 음식 만들어 먹는 얘기가 계속 나와서 그런가..
팔로우하는 김영하 작가님이 인스타에 올리는
#오늘의점심 피드를 재밌게 봐서 그런가...
난 원래 잘 먹긴 했다.
아니 식탐이 좀 있다. 여기서 먹깨비로 불린다.
서울 먹깨비가 제주 와서 리틀 포레스트가 되고 싶어 한다.
아이러니하게
음식을 음식으로 접하던 이전보다
음식을 글로 접하는 요즘
음식에 대한 애정이 더 생긴다.
꽃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부르고
가까이 가서 보면
그 꽃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처럼,
음식의 재료를 알고
요리의 과정을 알고
그 맛을 알아가며 먹으면
그 음식의 의미가 달라진다.
여기서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감자전이 먹고 싶어 도전해봤다.
다른 재료 없이 감자 하나만으로
쫄깃하고 맛있는 감자전을 만드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어깨너머로 본 대로 감자전 만들기는 간단하다.
감자를 갈아서 30분 정도 체망에 두면
감자물에서 하얀 전분이 분리된다.
물은 따라내어 버리고 하얀 전분과 간 감자를 다시 섞어 전으로 부치기만 하면 된다.
식감을 위해 감자 하나 정도는 짧고 얇게 채 썰기를 해서 넣어주고
약간의 소금으로 감칠맛만 내주면 된다.
처음 시도한 감자전은 감자물을 잘 빼지 못하고
소금도 안 넣어서 맛이 덜 했는데
두 번째 감자전은 전집에서 파는 것처럼 쫄깃하고 맛있었다.
친구들과 전집에서 감자전을 시키면
별생각 없이 우걱우걱 먹던 나인데
지금은 한 입 한 입 맛있게 먹고 있다.
그냥 맛있다가 아니라
감자물만 빼내고 전분을 남긴 쫄깃함이 느껴져 맛있고,
식감을 위해 일부러 채 썰어 넣은 감자 씹는 맛이 느껴져 맛있고,
약간의 소금이 쳐져서 나는 감칠맛이 느껴져 맛있다.
만들면서 의도했던 맛이 나니 만족스럽다.
리틀 포레스트 영화가 나왔을 무렵
보다가 지루해서 껐던 것 같은데
여기서 스스로 요리도 하고
넷플릭스에서 리틀 포레스트를 직접 찾아 틀고
아침마당 방청객처럼 리액션하며 과몰입해서 보고 있다.
직접 해 먹는 음식이 그들의 작은 숲이었던 영화 속 주인공들...
제주에서 그들의 작은 숲을 공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