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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Aug 20. 2021

내가 제주에서도 달리는 이유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막상 자주 여행을 다니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비행기의 공기가 우울했기 때문이다.

답답한 현실을 떠나 여행을 가도

어차피 곧 귀환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은데 어떻게 여행이 마냥 좋을 수 있겠어.

끝이 없는 자기 회피의 연속일 뿐이지."


그래서 여행을 자꾸 떠나기보다

그 시간에 현실을 더 낫게 바꾸는 선택지를 택했다.

그냥 열심히 일했다는 얘기다.


그럼 더 나은 현실의 사람이 되었느냐?

그냥 여행 잘 안 다닌 사람이 되었다...



'여행이 자기 회피가 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여행이 일상이 될 수는 없을까?'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인 삶.

현실적으로 당장 디지털 노마드가 가능하지는 않아도

그렇게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8월 한 달 동안 제주에 내려와 있다.

짧게 떠나는 것이 아닌 길게 머무는 것.

나는 한 달 '여행'이 아니라 한 달 '살기'를 하고 싶었다.


그냥 현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의 한 달이 곧 내 현실이 되는 것.


제주에서의 한 달에 나를 녹여내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도

동시에 나다운 모습을 녹여내고, 나다운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나에겐 그 의미가 달리기다.

여기서도 나의 시간에 나인 활동을 한다는 것.

나의 최소한의 루틴을 유지하는 것.


평소와 같은 키로수를

평소와 같은 페이스로 뛰고

평소처럼 땀도 충분히 흘리지만

제주의 푸른 바다를 왼편에

제주의 초록 들판과 풀 뜯는 말들을 오른편에 두고

제주의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키며 달린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낯선 이곳에 섞여 있다.


나의 제주살이 러닝 코스, 섭지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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