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을 생각하다.
쌤, 답지 봐도 돼요?
수학 공부를 할 때 답지를 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얘기만 철석같이 믿고 중고등학생 때 답지 안 보고 공부하느라 야자시간 3시간 동안 달랑 문제 한 개만 풀었던 적도 있다. 어떻게 답지를 보며 공부해야 할 지 몰라 선생님에게 답지를 봐도 되냐고 물어봤다. 선생님이 이렇게 답해줬다.
"답지는 적당히 봐야지!"
선생님은 분명 정확한 답변을 했고, 맞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답답했다. 나는 답지를 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적당히가 무슨 말이란 말인가.
'적당'이라는 말은 마술과도 같은 말이다. 어디에나 쓰일 수 있는 말이고, 언제나 답이 되는 말이다. 세상 모든 문제는 양 극단에 답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세상 모든 정답은 적당이라는 범주 안에 있게 된다. 그래서 '적당'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좋다'라는 의미의 지위를 얻는다. '적당했어, 적절했어!'라는 말은 굉장한 칭찬의 표현이 된다. '날이 적당하다', '적절한 예시를 들었다', '옷 사이즈가 딱 알맞다' 이 모든 '적당'의 사촌들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을 바꿔도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날이 좋다', '좋은 예시를 들었다', '옷 사이즈가 딱 좋다'
하지만 나는 적당이라는 말에 어떤 불만족감을 느낀다. 이 말은 앞서 말했듯 사회적으로 '좋은 말'의 지위를 부여받은 단어이기 때문에 뭐라고 반박하기도 애매하다.
야, 적당히 해
하지만 이 말은 분명히 기분이 나쁘다. 이 말을 들으면 내가 무언가 오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 순간, 내 안에 꽉 차 있던 모든 자신감을 당혹감으로 바꿔버린다. 게다가 이 말이 기분 나쁜 또 다른 진짜 이유는 도대체 어느 정도로 덜 해야 하는지 그 순간 전혀 모르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갈 길 잃은 영혼이 되어 당혹감은 두 배가 되고, 한 순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적당'이라는 말은 '그 정도'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끼리 쓰는 업계 용어, 전문 용어와 같다. 적당이라는 말이 쓰이는 주제에 대해 모두가 컨센서스를 갖고 있을 때 이 말은 효과가 있다. 적당이라는 말은 어린아이, 뉴비,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 폭력적인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 때 수학 과외를 하게 되면서 똑같이 나에게 묻는 학생들에게 '답지는 적당히 봐야 한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수학 문제의 답지를 보는 최상의 방법
기본적으로 답지는 당연히 보지 않는 게 좋다. 답지를 보지 않고 직접 이런저런 풀이법을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과정이 전부 학습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풀리는 한 문제를 가지고 너무 오랫동안 고민에 빠져있다면 분명히 잘못하고 있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학 공부를 하다가 어려운 문제가 나타나서 시간이 좀 걸리겠다 싶으면 고민 시간을 딱 정하는 거다. 5분, 혹은 10분. 이 두 개의 옵션 중에 문제 난이도에 맞게 시간을 정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치열하게 생각해본다. 안 풀리면 답지를 흘끗 본다. 여기가 중요하다. 꼼꼼히 보는 게 아니라 흘끔 보고 풀이법의 힌트를 얻는다. 여전히 느낌이 안 오면 푸는 방법이 캐치될 때까지만 몇 줄 읽어 내려가 본다. 느낌이 오는 순간에 답지를 덮고 다시 문제를 풀어본다. 그렇게 문제를 다시 풀다가 또 막힌다면 답지를 이어서 더 읽어본다. 다시 느낌이 오는 순간에 답지를 덮는다. 이렇게 반복하며 문제 하나를 푸는 것이다.
이 앞의 한 문단이 내가 생각하는 '적당'의 의미다. 이렇게 보면 수학 문제 하나에 30분이 걸릴 수도 있지만, 같은 공부 시간 대비 최고 효율의 수학 능력을 얻을 수 있다.
나는 회사에서도 후배에게 무언가 지시를 할 때 '적당'이라는 말을 쓰게 되면 그 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나는 적당이라는 말을 쓸 때는 그 말에 대한 컨센서스가 있는 상대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당이라는 단어의 경계는 이 지점에 있다.
이 경계를 아는 사람에겐 적당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폭력적인 단어가 아니라 소통의 실마리와 같은 단어가 될 수 있다. 같은 컨센서스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최고로 효율적인 의사소통의 단어가 될 것이고, 컨센서스가 다른 사람 간에는 서로가 생각하지 못했던 큰 전제의 차이를 좁혀 주는 시작점의 단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