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단단 Mar 29. 2024

성공하는 조직은 문화가 아니라 구조가 만든다

<룬샷>이 말하는 상전이와 토스의 조직 구조

최근 아주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약 4년 전(2020년)에 샤피 바칼이 쓴 <룬샷>이라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혁신적인 제품과 아이디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조직 문화에서 찾는다. 스타트업들의 유연한 문화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태동하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룬샷>은 혁신의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이유를 조직의 설계와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토스는 한국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성과를 이룬 대표적인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많은 기사와 언론에서 토스의 성공 원인을 자율적, 주도적,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서 찾는다. 토스에 와보니, 그런 가치를 강조하는 회사 문화가 있다는 것에 매우 공감한다. 하지만 사실 더 인상적으로 느끼고 주목한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토스의 구조적 장치였다. <룬샷>에서 말하는 상전이 원리를 토스 조직 구조에 비춰 이야기해보려 한다.


* 디스클레이머 : 사실 이 책은 조직 문화와 조직 구조를 개념적으로 분리해서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조직 문화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쓰이지만, 나도 조직 구조를 조직 문화와 구분하여 그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설계적 차원의 개념으로 말하려 한다.




성공하는 혁신은 문화가 만드는가, 구조가 만드는가

고무장화와 화장지 기업으로 유명했던 노키아는 2000년대 세계 최초 셀룰러 네트워크 사업에 성공하고, 지구상 무선전화의 절반을 팔아 치우면서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언론은 노키아가 세계에서 가장 위계서열이 없는 대기업이라고 찬양했으며, 노키아의 CEO도 "좀 재미나게 일해도 되고, 정도를 좀 벗어나도 되고, 실수를 해도 되는 거죠~"라고 말하며 조직 문화가 성공의 핵심열쇠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키아 지도부는 사내 엔지니어들이 제안한 인터넷 되는 터치스크린 전화기와 온라인 앱스토어 아이디어를 무시했으며, 몇 년 후 나타난 애플의 아이폰에게 시장 전체의 주도권을 내어주고 결국 2013년 모바일 사업부문을 매각하고 말았다.


아이폰, 넷플릭스, 구글 등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혁신 제품의 비결을 우리는 항상 궁금해한다. 혁신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 혁신의 아이템이 먼저인가, 그 아이템을 생각하고 키워내는 조직이 먼저인가? 그럼 그 조직은 어떤 조직인가? 이 궁금증의 끝에 조직 문화 담론이 나온다. 자율적, 주도적, 수평적 문화 등등 조직 문화의 구체 사례가 소개된다.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조직 문화를 도입한다. 그것을 명문화하고 교육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문화가 짠! 하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키아가 조직 문화를 거짓되게 말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대로 그 문화가 정착되고 유지되는 것은 단지 문화를 열심히 제창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얼음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물이 되지 않는다, 얼음이 되지

한 대기업 인사팀에서 업무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기 위해, 스타트업에서 유능한 인재를 뽑아 배치를 했다. 그런데 그 도전적인 스타트업 인재가 기존의 다른 대기업 사람들처럼 업무 하는 게 아닌가. 원래 성향대로 공격적이고 도전적으로 업무 하는 게 아니라, 보수적이고 리스크 회피적으로 일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의 사업가들은 대기업이 혁신에 실패하는 이유가 창업가 정신이 부족한 대기업형 성향의 사람들이어서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스타트업에는 대기업에서 온 인재가 부지기수다. 즉, 대기업 사람을 뽑았는데도 그 사람들이 스타트업답게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문화도 구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많으면 달라진다

<룬샷>은 복잡계의 상전이라는 물리현상을 말한다. 복잡계는 상호작용하는 부분의 집합체를 말한다. 그리고 그 집합체는 상(Phase)을 갖는다. 물을 예시로 들면, 물이라는 복잡계는 물분자(H2O)의 집합이고, 액체 상태와 고체 상태(얼음)이라는 상을 갖는 것이다. 물은 온도가 낮아지면 얼음으로 바뀌는데(상전이), 이는 개별 물분자의 속성이 아닌 집단 상호작용의 속성이다. 그래서 물 한 방울이 얼음에 떨어진다고 물로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얼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즉, 많으면 달라진다.

물의 상전이 vs 조직의 상전이


조직도 인간이라는 부분들의 집합이고, 어떤 상(룬샷* 초점 상태 혹은 경력 초점 상태)를 갖는다. 조직도 마찬가지로 복잡계이므로, 조직이 어떤 성향을 갖는 것은 개별적 차원의 속성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의 속성이다. 조직이 개인 경력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상태고 그런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스타트업형 인간이 합류하더라도 조직 전체의 획기적 제품 성공을 생각하며 일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직 자체가 시장을 바꾸는 획기적인 아이템을 위해 초기 가설들을 홀대하지 않고 실험하는 조직 상태고 그런 사람이 대다수라면, 대기업형의 사람이 합류하더라도 조직 문화에 동화되게 된다. 즉, 많으면 달라진다.


* 룬샷 : 다들 아이디어 제안자를 홀대할 정도의 초기 아이템. 하지만 결국 이 씨앗들 중에서 조직 전체의 승리와 성공을 가져다주는 중요하고 획기적인 아이템이 나온다.



토스의 조직적 특성이 2천 명 규모에도 유지되는 이유

토스의 조직 문화는 듣던 대로였다. 빠르고, 주도적이다. 해보려는 누군가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한국의 유니콘 스타트업 중에서도 혁신을 주도하는 스타트업으로 평가받는 곳 다웠다. <룬샷>의 용어를 빌리면 사람들이 '룬샷 초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조직 전체의 성공보다 개인의 커리어 발전에 신경을 쓰는 '경력 초점 상태'와 반대되는 상태다. 사실 작은 스타트업은 이렇게 일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커지면 그렇게 간단히 되는 문제가 아니다. 토스 커뮤니티(전 계열사)는 현재 2,000명에 다다른다. 그럼에도 새로운 인력들이 와도 이 토스의 조직적 특성이 '주류'로서 유지되고 있다. 토스의 조직적 특성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직이 상(Phase)을 유지하는 비법

<룬샷>에서는 인센티브 설계를 강조한다. 조직의 인센티브는 두 차원에서 생긴다. 하나는 조직 전체의 성장으로 다 같이 받게 되는 일괄 인센티브고, 다른 하나는 그 안에서 더 큰 역할을 감당했기 때문에 얻게 되는 개별 인센티브다. 조직이 '룬샷 초점 상태'를 유지하려면 일괄 인센티브가 개별 인센티브보다 커야 한다.


개별 인센티브를 줄이는 법은 조직을 수평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수직적인 구조인데 계층도 많다면 그 계층마다 더 높은 급여를 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승진이라는 사다리를 타는 것에 신경 쓰게 된다. 또 하나의 방법은 부서별, 개별 성과 인센티브를 지양하는 것이다. 전체의 성공에 누가 더 많은 기여를 했는지 측정해서 성과급을 지급하면 다른 사람들도 조직 전체를 위해 더 노력할 것 같지만 생각처럼 동작하지 않는다. 전체에 대한 개개인의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 부정확한데, 게다가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더 높은 자리, 상대가 더 낮은 자리에 위치하는 게임이 형성되기 쉽다.


일괄 인센티브를 높이는 법은 쉽게 말해 판돈을 키우는 것이다. 조직 전체가 성공을 하는 만큼, 나도 보상을 받게 된다. 판돈 자체가 커지면 팀 내에서 내가 부장인지, 막내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성공하면 얻게 될 보상은 그 차이쯤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미미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토스가 상(Phase)을 유지하는 방식

<룬샷> 용어로 말하면, 지위보다 판돈을 키워야 한다.


토스는 굉장히 수평적인 조직이다. 혹자에게 '토스는 관리자로 성장하기엔 불리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개별 제품을 담당하는 PO/PM들은 제품에 대한 제1의 DRI*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의사결정을 대신해 줄 상위 관리자를 갖고 있지 않다.(헤드나 리더는 의사결정이 아닌 코칭과 서포트에 대한 책임이 있다) 관리자를 최소화하기에 타 회사만큼의 진급에 대한 개념이 크지 않으며, ladder를 올라가는 일에 대한 장려나 강조도 적다.


토스는 개개인에 대한 성과 상대 평가가 없다. 회사의 모든 팀원들이 동일한 인상률에 동일한 인센티브를 받는다. 성과에 따른 연봉 조정을 신청자에 한해 반기마다 진행하긴 한다. 하지만 타 회사처럼 인센티브를 개인별, 부서별로 차등 지급하지 않기에 개별 기여가 아닌 전체 목표(판돈)에 집중하게 하는 구조라 볼 수 있다.


정리하면, 회사는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때 지위에 대해서는 최소화, 판돈에 대해서는 최대화하는 인센티브 구조다. 물이 얼음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상온 조건'이 필요한 것처럼, 조직이 경력 초점 상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 : 최종의사결정권 혹은 권한자. PO/PM뿐만 아니라 모두는 전문가로서 담당 업무 영역에 대한 고유의 의사결정권한을 갖고 업무 한다.




'우리 회사도 문화과 비전을 외치는데 왜 되지 않지?' 구조가 없으면 컬처 밸류를 아무리 외친다고 해도 되지 않는다. 물이 액체 상태를 유지하려면 온도라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조직이 원하는 문화를 유지하려면 조직의 구조(조직도), 인센티브 구조(보상 체계)를 바꿔야 한다. 여기서 소개하진 않겠지만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인원에 따른 조직의 위계의 수와 연봉과 지분이라는 인센티브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최적의 조직 설계를 하는 혁신 방정식까지 제시한다.


사실 샤피 바칼의 <룬샷>은 상전이라는 물리학 현상을 조직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 등 여러 차원에서 설명한다. 처음엔 물리학 이론을 비유로 들어 억지스럽게 대입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집합체의 상전이라는 속성으로 현상을 해석하는 방식의 탁월함이 인상적이었다. 샤피 바칼처럼 물리학자면서 창업자, 사업가인 사람이니 할 수 있었지, 다른 사람은 짚어낼 수 없는 통찰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책에서 소개하는 중요한 개념 하나가 더 있다. 스타트업은 영원히 스타트업이 아니다. 성장함에 따라 조직도 커지고 제품들도 성숙하기 마련인데, 조직의 모든 사람이 도전과 실험만 주야장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한 조직 안에 두 가지 상태가 모두 필요한 때가 오게 되며, 이 균형을 잘 맞춰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혁신을 만드는 조직 구조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풀어보겠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일을 하는 솔직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