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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Sep 03. 2023

우기

 나는 걸어야 했다. 조명에 비춰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싶었지만 나는 걸어야 했다. 지루한 삶이 이렇다. 시계가 도는 방향대로, 떠밀리는 대로 살아야 한다. 너도 나도 말을 보태지만 달갑지 않다. 따뜻한 말들은 차가운 초침에 부딪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차라리 곁에서 춤이라도 실컷 춰 줬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장난도 환영이다.

 "그건 그 사람 문제예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익숙해서, 완벽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내게 의사가 말했다. 완벽할 수 없는 거라고, 거기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문제인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분명 목이 메었지만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하는 압박이 떠나질 않았다. 그건 분명 내 잘못이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의 잘못은 아니라 흥얼거려도 나는 완벽해야 한다.

 "운동은 하기 싫어서 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돼요."

 내 몸을 힐끗 보시더니 건강 관리는 잘하고 계신 거 같아 다행이라 했지만 난 사실 주짓수를 그만둘까 싶기도 했다.

 "재미있어하는 시간을 늘려 보세요."

 배구를 오래도록 해볼까. 왜 그런 사람이 돼 볼까 싶기도 했다. 학교에 한 명쯤은 꼭 있는 미친 선생님. 교사 사이에서도 구설수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말 그대로 미친 사람이. 공이나 하나 던져주고 나는 한편에서 스파이크 스윙을 연습하고 벽치기를 하는 선생님. 거기까진 나쁘진 않지.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관리자가 뭘 시켜도 못 한다고 들어 눕고 웃음 치료를 한답시고 한 시간 내내 '하하 호호' 하고(형태소 그대로의 소리를 내며). 뭐 그런.

 그러고 보면 몇 달 전부터 일탈 일탈 노래를 불렀는데 여태 송정 바닷가를 한 번 못 갔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조수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너는 방금 그 파도와 어떻게 다르니' 하고 물어야 생각이 정리될 거 같았는데 말이지. 시각 정보에 의하면 조수가 꼭 단순한 반복 같다가도 동그랗게 제자리만 맴도는 나랑은 좀 다른 거 같단 말이야. 훌륭한 공연을 마치고 배우 일체가 손을 잡고 내달렸다 우르르 교체 되는 그런 그림이라 파도는 꼭 일탈과 닮았고. 원심력에 의해 날아간 물체가 직선 방향으로 힘을 받는 것처럼.

 우산이 있었지만 굳이 펴지 않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터라 크게 젖지 않았다. 터덜터덜 걸으며 머릿속으로 가족과 친구를 떠올렸다. 누구에게도 전화하고 싶지 않았고 나는 그저 혀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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