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산책하며 동네 골목을 누비다 문득 내가 항상 가던 길로만 간다는 걸 알았을 땐 낯선 길 끝에 우뚝 선 담벼락이 있을 것만 같았다. 똑같은 건물은 한 채도 없는 골목에서 누구든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구경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들과는 전혀 다른 인류라도 되는 양 나를 훑는 시선을 상상한다. 내가 낯선 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강아지는 산책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비가 내리면 바닥에 고여만 있던 온갖 냄새들이 생기를 얻어 활기를 띤다. 강아지는 희미하던 냄새가 날뛰는 걸 감각적으로 알아채고 흥분한다.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다니다 나를 어느 골목으로 이끌었다. 나는 근처를 여러 번 산책하면서도 이런 길이 있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했던 골목이었다. 차는 들어오지도 못하는 어둑한 골목, 전구색 가로등, 진흙탕 웅덩이. 왠지 이 길 끝에 익숙한 도로가 나올 거 같아 안심한다.
작년에는 한밤중 신도시에서 주식으로 돈을 잃은 세 남성이 중년 여성을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화점에서 칼을 들고 날뛰던 사람도 있었다. 으슥한 골목은 사라지고 푸른빛을 띠는 가로등이 범죄율을 낮춘다고 해서 주광색이 많을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흉흉한 얘기들이 끊이지 않는다. 해가 변할수록 거리의 풍경만큼 많은 게 변했다는 걸 실감한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강아지를 집 쪽으로 몬다. 고바이 옆에 호젓한 놀이터가 있다. 나는 그 놀이터에서 아이 웃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전구색 가로등이 켜진 놀이터에서 한 아이가 홀로 늦게까지 그네를 타는 일이 없었다. 그런 아이에게 낯선 어른이 다가가 얼른 들어가야지 하고 채근하는 일도 절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