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밀레니얼 세대(1981~1995년에 태어난) 다음 세대인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 이른바 Z세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들려준다.
-불안 세대-
2025학년도부터 AI교과서가 도입된다. 전국에서 천 명이 넘는 교사가 출판사와 협력해 교육 연수에 참여했다. 미리 교육을 받은 교사는 AI교과서를 사용하는 학교에 가 다른 교사에게 연수를 실시한다(AI교과서 사용 여부는 학교 선택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거액이 들었다. AI교과서 개발, 교원 연수, 홍보, 배포 등 정확한 금액은 몰라도 다른 모든 예산을 삭감하여 진행했으니 알만하다.
천문학적 금액을 사용했음에도 반응은 차갑다. 학부모 단체는 ‘집에서 스마트 기기 사용 조절을 위해 애쓰는데 학교에서 스마트 기기 사용을 장려’하는 건 어불성설이라 한다. 교사도 의아하다. 연수 중에 들은 내용은 ‘아직 개발 중이라 보여줄 순 없고 이런 기능이 있다 ‘는 소개가 전부였다. 학교에선 AI 교과서를 선택하려고 보니 값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겠냐는 조사 항목도 있어 황당했다고 한다. 교육부가 현재 AI 교과서를 추진하는 방식은 방약무인하다.
대한민국 밖은 SNS 사용을 놓고 시끄럽다. 미국은 틱톡을 금지했다(정치적 견제이긴 하나). 호주는 SNS 사용을 16세부터 가능하게 하는 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초등 교육 일선에 선 나 또한 6학년 학생에게 ‘소셜 미디어’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시청 연령에 맞는 때에 보여준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몸소 느끼기 때문이다.
도서에서는 아이들이 나이에 맞게 어떤 활동을 하며 자라야 하는지, 부모, 학교,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강조하기 위해 SNS가 가진 부작용을 설명한다. 통계와 다양한 논문을 바탕으로 쓰인 저서가 한국에 적용되는지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다. SNS는 어떤 형태로든 불안과 우울을 유발한다. 저조한 출산율만 봐도 그 영향이 단지 청소년에게만 미치는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전 세계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이웃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처럼 느끼기 때문이라고. 그 일이 매일 반복될 거라는 위협의 실체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우리 동네에 그런 일이 있었다. 나보다 몇 살 어린 남자 동생이었는데 혼자 공놀이를 했다. 그러다 공이 주차된 트럭 아래에 꼈다. 동생은 천진난만하게 공을 빼고 있었는데 트럭 운전수가 그걸 보지 못하고 후진했다. 가족끼리 알고 지내 자주 놀기도 했던 동생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소식을 듣곤 모두가 애통해했으나 어떤 아이도 동네에서 공놀이를 금지당하지 않았다. 우리 보호자는 이 사건이 사고인 것을 알았다. 아마 이와 비슷한 사건이 그 해에만 몇십, 몇 백 건 더 있었을 테지만 우린 알지 못했다. 우린 애도 기간 후에 여전히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뉴스나 SNS가 자극적인 사건에 집중하고 보도하는 이유는 광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다. 코로나19 보도가 얼마나 공격적이었던지 기억한다. 사실 확인이 필요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송신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뚫렸다’, ‘의료 마비’ 등 사동 표현과 공포를 조장하는 단어를 사용하며 무기력감과 혐오를 키운 게 바로 언론과 SNS다.
‘불안 세대’ 저자는 묻는다. 정녕 오프라인 세계는 보이는 것만큼 위험한 것일까. 혹은 수입을 위해 자극적인 부분만 보도되는 걸까. 또 온라인 세계에 자유롭게 노출되는 건 건강할까. 13세 이상 SNS 사용 금지라는 조항이 있음에도 SNS 가입 시 아무것도 묻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것은 정당한가. 토의해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