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이름은 루시 바턴

by Gyu
“엄마, 엄마가 소설을 쓸 때는 그 내용을 다시 쓸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와 이십 년을 살았다면, 그리고 그것도 소설이라면, 그 소설은 다른 사람과 절대 다시 쓸 수 없어요!”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이런 걸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찍은 사진을 보며 어떤 일이 있었나 상상해 본다. 너덧 살 정도 먹은 내가 신발을 신고 현관에 앉은 채 떼를 쓰고 있다. 나가자고 보채는 거 같은데 내가 나갔는지, 나가지 못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다만 그날의 내가 꽤 귀여웠구나 싶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삼익비치 아파트 앞에는 워터파크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종종 그곳으로 놀러 갔었고 그곳에서 찍힌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형형색색 슬라이드는 또렷하나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건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소규모 테마파크인데 또래에 비해 놀이기구를 못 탄다고 핀잔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 자책했다. 친구와 함께 땡볕을 걸으며 여름 방학 동안 축구 교실에도 다녔다. 축구 교실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나지 않으나 난 유난히도 축구를 싫어했다. 그곳으로 걸어가는 길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심정이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 속상해했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몇 년 전 얘기로 시작한다. 루시 바턴이 소설가로 성공하기 전, 입원한 상태에서 어머니와 병원에 있으며 회고하는 소설이다.


기억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나는 사진 속에 나를 보며, 어쩌면 가지 않았을 장소에 대해 추억하기도 한다. 혹은 가지지 않았을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몇 년 전에는 일기를 꼬박꼬박 쓰기도 했었는데 그때 기록을 들춰보면 생경하다. 그런 날들이 모여 오늘이 됐다니.

가끔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 마음이 표표하다.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느닷없이 찾아온다. 내게 가해지는 역학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되려 거울 속 내가 더 무거워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러다 뒤돌면 걸음걸음이 나부끼는 듯 중력을 거부한다. 책을 덮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울을 아주 오래 보고 있었던 것 같다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