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 - (1)
아무것도 아닌 채로 재의 수요일을 보냈습니다. 사실은 작은 묵상을 홀로 삼켰지만, 별다른 일 없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저의 사순절은 아무도 모르게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아무런 금식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늘 그리하였듯 마음이 당기면 먹고, 아니면 말면서 일상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사순절이 고난주간을 향한 여정이라면, 그 여행의 종착은 부활을 넘어 성령강림절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들이 의미하는 건 결국 흐르는 시대 위에 계속 살아야 할 우리의 역할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꽃샘추위가 유난히 빠르게 찾아온 걸까요? 나는 아직 겨울을 다 보내지 못했는데 이제 봄을 살아야 한다고 재촉하는 듯합니다.
떠밀려 살아가는 게 우리네의 인생이라지만 파도가 조금은 완만한 물길로 나를 이끌었으면 하는 바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여전히 겨울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이유는 봄에 피어날 새로운 날들을 받아들일 용기가 전혀 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뒤바뀌는 내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묵상함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념하며 12월의 대종장을 마감합니다. 분명 예쁜 노래를 부르려 설레는 마음을 품었겠지만, 그 뒤에 감춰진 불안한 마음이 새하얀 눈처럼 소복이 쌓여있었지요. 그게 못내 저를 두렵게 합니다.
뭘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에는 꼭 잘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잘 살아보는 게 서투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 당신을 만나면 저도 부족한 제 사람을 어찌 채워야 할지 배워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이유이지만 그래서 당신은 행복해야 합니다. 귀한 당신...
우리가 이젠 반갑게 소회를 풀기보다 진정을 담아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길 바랍니다. 가끔 보고 지나치면 결국 반가운 인사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알아야 고민과 일상을 알기에 앎은 사랑이 시키는 노동인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다지 잘 사랑을 못하고 살아온 것이겠지요. 그러니 제가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다음에 만나면 당신이 요즘 무얼 하고 사는지 알려주세요. 우리가 그 정도는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제 글이 있는 이곳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만나주어 저 역시 참 반가운 마음입니다. 꼭 평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