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은 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귤 Apr 01. 2017

봄맞이

    3월이 되고, 봄이 왔다. 난 여전히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쉽사리 이불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밖에서 부는 바람은 겨울의 칼바람에서 봄의 산뜻한 바람으로 바뀌었지만, 이불속을 벗어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나는 겨우겨우 이불속을 벗어나, 자기 전까지 읽던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자 아침 햇살이 가득 찬 거실이 날 반겼다. 난 부엌으로 가 물 한잔을 마시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뉴스에선 오늘부터 황사가 시작돼서 날씨가 우중충할 거라 했지만, 예보와 다르게 맑은 날씨에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했다. 난 아침밥은 가볍게 거르고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이런 게 좋은 날에 집 안에만 있다는 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난 나갈 준비를 마치자마자 바로 집을 나섰다.    

    거리엔 아직 벚꽃도 피지 않았지만, 충분히 봄이란 걸 느낄 수 있는 날씨였다. 날씨는 포근했고, 거리에 곳곳에 보이는 조그만 새싹들이 봄이란 걸 느끼게 해줬다. 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걷다, 핸드폰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음악을 틀었다. 가장 먼저 흘러나온 노래는 봄의 대표곡이 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었다. 나는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봄을 만끽했다. 봄에 취해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시내에 도착해있었다. 나는 딱히 필요한 건 없지만, 일단 상점가로 향했다.

    이왕 나온 거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의 입학 선물을 살 겸 상점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학교라는 곳을 처음 접하는 조카에게 필요한 게 뭘까?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선물이 없을까? 많은 고민을 하다 결국 학용품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 문구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턴 문구점에 들을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문구점에 들어서니 기분이 새로웠다. 마치 학교에 처음 가는 새내기처럼 설레기도 했다. 나는 문구점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가방과 실내화 가방, 노트 몇 권과 샤프를 샀다. 솔직히 조카가 마음에 들어할 진 모르겠지만, 나름 생각해서 골라준 것들이니 기쁘게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시내를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난 내 선물을 받고 좋아할 조카를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가볍게 발을 옮겼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던 중 내 눈에 새롭게 생긴 카페가 보였다. 평소에 홍차나 커피 같은 음료를 좋아하기도 하고 카페 분위기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는 난 자연스럽게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카페는 밖에서 보기와 다르게 아기자기했다. 곳곳에 전시된 미니어처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 가장 눈길이 가는 건 벚꽃나무 밑에 앉아있는 커플이었다. 달달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지만, 난 보자마자 조금 외로웠다. 봄이 되었지만 내 마음은 하직 한 겨울이었다. 급격히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난 얼그레이 한 잔을 시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차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다른 작품들도 눈여겨보았다. 개울가에서 노는 아이들, 단풍이 떨어지는 거리를 혼자 걷는 남자 같은 작품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난 아직 차를 마시진 않았지만, 이미 카페에 마음을 뺏겨있었다. 다음엔 꼭 여자 친구를 만들어서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던 얼그레이가 나오고, 난 얼그레이를 마시며 카페 창 밖으로 펼쳐진 봄의 시작을 바라보았다.

    새롭게 피어나는 새싹들과, 따뜻한 햇살 아래서 뛰어노는 아이들, 드문드문 핀 꽃까지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난 차를 다 마시고 나서, 그들 곁으로 나아갔다. 한 손엔 조카의 선물을, 다른 한 손엔 봄바람을 담은 체 봄이 온 길 위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두 눈 가득 봄을 담고서.


매거진의 이전글 어제와 다른 오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