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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귤 Jul 15. 2024

명량한 은둔자

고독과 고립 사이에서 균형 잡기

벌써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난 지 꽤 오래됐다. 나이가 많이 든 것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젊을 땐 주기적으로 친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친구들과 밥을 먹고 근황 토크 하는 것이 의무라고 느꼈는데 이제는 생일, 아니면 문득 그 친구가 생각나는 날 기프티콘 덕분에 말풍선 몇 개로 끝나는 안부를 물으며 서로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졌다. 아니 이제는 그 정도도 힘들어져서 감감무소식인 내가 정말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다.



약속. 내가 정의하는 약속은 무엇이냐, 바쁘디 바쁜 사람들이 적당히 쉬고 여유를 부릴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날짜와 시간에 요즘 가장 핫하지만 너무 북적거리지는 않은 어떤 지역에서 만나 실패 없는 한 끼 메뉴와 커피를 고민하며 시작하는 것. 만나기 시간 직전까지 완벽한 만남을 위해 에너지를 집중 몰입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 “아 오늘도 해냈다” 는 어떤 연극을 마친 뒤 무대 뒷편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약속은 간단하지 않고 만남은 상당한 에너지를 쓰는 일이기 때문에 하하 호호 만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몹시 피로하고 굉장히 지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빼꼼 세상에 얼굴을 내비치다 계절 돌아오듯 꽁꽁 숨어 고독의 시간을 보내기를 반복한다. 이 글을 읽는 지인들은 섭섭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달리 막상 약속 가면 사람들이랑 나누는 대화가 너무 즐겁고 심지어 그 시간은 사랑스럽다. 걱정한 것과 다르게 제일 잘 노는 타입, 만나는 사람들이 싫은 것은 절대 아니다.



사교의 한계를 넓히기 위해 새로운 사람 만나는 자리를 일부러 가보기도 하고 동기부여 나누는 자리를 주도해 보면서 나름 극복 캐릭터로서 노력은 했다. 하지만 본성을 모르고 무리해서 돌아다녔다간 크게 후폭풍 맞는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만남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난 후에는 스스로 그 시간을 숙성하거나 만남 뒤의 피로감을 디톡스 하는 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또 사주에 나무가 많은 인간이라 욕심, 열정은 많아서 한번 몰아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대책도 없이 밖에 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그러고나면 큰 화를 면치 못한다.

낮에는 회사, 저녁에는 대학원, 독서모임 트레바리의 모임을 한 번에 두 개 주도하며, 대학교 강의를 준비하던 시절, 나는 살면서 새로운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났고 거의 6개월 내내 번아웃을 겪으며 세상에서 돌연 사라지기도 했으니.



학과 대표, 동아리 대표, 학생회장을 거친 대학교 동창 결혼식에 간 날. 지인 기념 촬영만 두 번이나 찍는 것을 지켜보며 (물론 결혼식 할 생각도 없지만) 내가 결혼하면 누가 오냐..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한정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과 자책으로 점철된 20대의 삶.



그러다 캐럴라인 냅을 만났다. 명량한 은둔자. 어떻게 그 책에 와닿은 지 기억 안 나지만  첫 장을 읽은 기억은 굉장히 선명하다.

“맞아, 나도 명량한 은둔자야!”



오랜 시공간을 넘어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번역된 언어로 옮겨진 그녀의 문장들은 내가 설명할 수 없던 원하는 고독과 원치 않는 고립 사이의 간극을 놀랍고도 명쾌하게 단어화한다. 밑줄 쭉쭉 긋고 가끔은 한 귀퉁이에 심정을 토로하며 몇 번이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을 곱씹었다. 고로 1년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 남자친구는 “나를 알기 위해서는 명량한 은둔자를 읽어야 해!!”라는 통보 아래 자동차 뒷좌석에 늘 명량한 은둔자가 꽂아두고 다니게 되었다고..



주중에는 회사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만으로도 하루 발화량이 채워지고 주말에는 가족들 그리고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사교 활동이 충분하기 때문에 약속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줄어든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운동하느라 시간이 쑥쑥 가서, 친분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아예 없어졌다.  지난 주말, 하루 세 번 제철 음식으로 만든 따끈한 집밥을 만들어 먹고, 여름 뙤얕볕에 땅이 지글거리기 전인 이른 오전, 그리고 한 김 식은 늦은 오후에 우리 강아지 오구와 산책을 하며 시간 보낸 시간. 돌아오는 월요일이 한결 평온하다. 심지어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쓸 생각까지 난다.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아무 약속이 없어도 비로소 평온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독은 늘 고립으로 빠지기 십상이라 고독이 고립이 되지 않기 위해서 늘 고립의 구렁텅이로 빠지려고 하는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지켜보며 자신을 나 자신이지만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보살펴줘야 한다.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물리적 무게중심이 필요한 것인데,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이나 유튜브 영상에서 말하는 매일 반복하는 신체 활동은 애매한 고립과 고독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행동이다.



맨날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봤자!!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나만 괴롭다!! 는 회의감에 빠질지라도 하릴없어 보이는 반복이 사실 너무 반짝거려서 고독이 고립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매번 어두운 길을 비춰주고 나를 곧추세운다. 고립하고 싶은 우울감으로 축축 젖은 채 일어나는 아침, 드럽게 가기 싫은 체육관 입구를 벗어나 눈물대신 땀을 찔끔 흘리고 바디워시 향기를 맡으며 몸을 싹싹 씻고 나면 금방 사라지는 바디워시 향에 실려 고립심도 함께 날아간다. 햇빛 봐도 좋다. 태양열은 실질적 에너지뿐만 아니라 축축한 사람 마음을 빠짝 말리고 기운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



청소, 물리적 깨끗함은 마음도 물론 깔끔하게 만든다. 묵은 짐을 정리하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다 보면 과거에 내가 저지른 관계의 죄책감이나 후회도 정리되는데 내가 떨군 굳은살과 각질, 머리카락을 주워 버리며 나의 부정적이고 딱딱하게 굳은 감정도 함께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사랑, 가장 고마운 사랑. 고립되고 우울했을 때 묵묵하게 고립의 경계선에서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존재 덕에 나는 늘 깊은 고립에서 벗어나 다시 고독의 안식처에서 쉴 수 있다. 사랑은 사람으로 태어나 내가 늘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일깨워주고 매일 더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는 놀라운 경험이다.



땅 위를 달리고, 산 위를 걷고, 체육관에서 무거운 것을 들고, 물 위를 헤엄치고, 하루 종일 묵은 때가 떨어지는 방을 쓸고 닦고, 언어로 통하지 않지만 눈으로 대화하는 강아지와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잠깐 세상과 단절하는 동안 역으로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 듣고 정리 정돈하는 일은 고독이 늘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어쨌든 갑자기 저를 만나고 싶으신 모든 분들!

저에게는 조금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도 이해해 주세요.

저는 명량한 은둔자거든요!

당신이 싫은 건 절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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