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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쁘삐 Dec 30. 2022

4. 나의 작은 숲, 아스파라거스

아스파라거스나누스

아스파라거스나누스


나의 작은 숲, 아스파라거스.

정확한 이름은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로, 우리에게 식용채소로 익숙한 그 아스파라거스의 친척이다.


우리집에 입성하신 아스파라거스나누스


아스파라거스를 처음 본 것은 동네의 한 카페에서였다.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가도 힐끗- 다시 바라보게 되는, 아 이것은 분명한 하트시그널. 다행히 단골 도매상에도 입고되어, 부리나케 모셔오게 되었다. (부디 저희 집에서 잘 지내주세요 굽신굽신) 야외에서 키우시는 분들도 있지만, 추위에 약해서 실내에서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고, 적당히 건조하지 않으면서 햇볕이 강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 하셨다. 고민 끝에 다른 식물들과 함께 우리 집 베란다 앞쪽에 자리를 잡아주었다. (다른 식물들과 함께 키우다 보면 습도관리가 용이하다.)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순둥이였던 이 친구. 사진처럼 새 줄기를 곳곳으로 뻗어내며 잘 자라주었다. 특이한 점은 정말 예측 불가한 수형으로 자유롭게 자란다는 점이지만 줄기와 잎이 얇고 부드러워 공간적인 부담이 적었다.



한 차례 위기를 맞이한 적도 있었다. 여름에 우리 집에 선물처럼 찾아온 아스파라거스는 가을을 보내며 한 차례 몸살을 겪었다. 사시사철 푸른 잎이 매력적인 식물인데, 어느 날부터 잎이 갈색으로 말라가며 후드득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왜인지 알아보니 건조해서 그렇다고 했다. 식물집사 생활 초기에 과습으로 워낙 많은 식물을 보냈던 탓에 최근에는 우리 집의 다른 식물들처럼 화분 속 흙을 다소 건조하게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 탓이었다. 우선 마른 잎들을 다 가위로 잘라주고 분무기로 잎 분무 빈도를 늘렸다. 뿌리 대신 잎 직접 분사로 습기를 적당히 보충해주고 몇 주 정도 지나니 끊어낸 줄기 옆으로 다시 푸른 잎을 내주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우리 집 순둥이.


청량하게 뿜어내는 새순


주말이 되면 나는 주중에 잘 돌보지 못했던 식물들의 성장정도와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조금씩 시간을 두고 바라보곤 하는데, 아스파라거스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여린 잎 하나하나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나의 작은 숲.

차를 타고서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 가만히 나에게 곁을 내어주는 숲.


여름날의 아스파라거스. 그 잎이 내 볼에 닿을 때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아스파라거스가 조용히 건네준 행복.

얼굴을 간지럽히는 잎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여름이었다

 

인쁘삐(IN-FP).

1995년에 태어나 24살부터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직업적성검사를 새로 했더니 개그맨이 나와서 결국 못 그만두고 다니는 사람.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욕심이 항상 드릉드릉 가득하지만,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는 전형적인 INFP.
먹는 식물은 죄다 죽이고 못 먹는 식물은 세상 잘 키워내는 능력치 애매한 식집사.
직장생활 꽤나 힘들어하고 일도 잘 안 맞는데 나름 또 정년퇴직은 하고 싶어서,
숨을 얕게 쉬며 회사를 다니는 20대 직장인.

어느 날 문득,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사람인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동안 마주했던 순간들을 털어놓으며 나를 이해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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