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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

누구에게나 적용되지는 않는 진리

by 박이운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많이도 들었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 참 오래도록 불변의 진리로만 알던 말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말이 더 이상 누구에게나 적용되지 않는 말이고, 불변의 진리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1. 왜 이 말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졌을까?

농경사회를 거쳐온 역사적인 상황들이 이 말을 만들었고, 또 그래서 진리처럼 받아들여졌을 수 있겠다 싶다. 씨를 뿌리고, 열심히 정성 들여 재배하면 수확을 하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여기저기서 등장한 성공한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만 있다고 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남들보다 뭔가 더 깊게 파고 더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라 본다. 흙 수저로 태어나 상위 몇%, 재계 서열 몇 위로 매스컴에 소개되는 성공한 사람들은 분명 대부분 열심히 뿌렸고, 그 결실을 맺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성공한 사람들, 훌륭한 위인들을 보면서 이 말은 진리일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인 것 같다.

2. 그런데 과연 진리일까?

살아보니 뿌린 대로 거두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듣고, 보고, 또 경험했다. 인생이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 절대. 좀 더 깊게 들어가면 '공정'이라는 개념까지 이르게 된다. 사회에 공정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답은 절대적으로 '아니다'이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정말 공정하게 실력만으로 평가하는 고시. 언뜻 보면 정말 공정하다. 흙 수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만 잘 보면 합격해서 꿈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100% 공정할 수 없는 틈이 발생한다. '환경'이라는 요인이다.

두 사람의 농부가 있다. 둘 모두 자기 소유의 토지가 있고, 씨를 뿌려서 열심히 재배하면 곡물을 수확할 수 있고, 팔아서 이윤을 남길 수 있다. 그런데 두 농부가 가진 토지의 비옥한 정도가 다르다면? 원래부터 비옥한 토지를 가진 농부는 씨를 뿌리기만 해도 곡물이 쑥쑥 자랐다. 그런데 비옥하지 않은 토지를 가진 농부는 다른 농부보다 덜 자고 덜 쉬고 덜먹고 온 힘을 다해 재배를 했음에도 수확량이 비옥한 토지를 가진 농부보다 적었다. 공정한가?

이번엔 비옥한 정도가 동일한 토지를 가진 두 농부가 있다. 한 농부는 태어날 때부터 부농, 한 농부는 어렵사리 자금을 마련해서 부농과 동일한 정도로 비옥한 토지를 손에 넣은 희망에 가득 찬 스타트업 농부다.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농부는 씨를 뿌리고 비닐하우스도 짓고 트랙터도 사고 작물에 비싼 영양제, 농약을 치며 수확량을 극대화했다. 반면 스타트업 농부는 비옥한 토지를 사느라 어렵게 모은 돈을 다 써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씨를 뿌리고 정성을 다해 관리하고 재배하는 것뿐이다. 이 농부의 작물은 비닐하우스를 짓지 못해 날씨와 기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좋은 영양제, 약을 뿌리지 못해 작물의 크기, 수확량이 적었으며, 비싼 농기계를 구매하지 못해 효율도 많이 떨어졌다. 공정한가?

똑같이 뿌려도 똑같이 거둘 수가 없다. 원래가.

3. 진리가 진리로 남으려면

그래도 진리는 진리다. 역사와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뿌리고 거둬들인 결과물을 '내가 뿌린 대로 거뒀구나.' 할 수 있다. 결국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이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진리인가 아닌가 가 결정된다고 본다. 내가 적게 뿌려서 적게 거뒀다. '아 뿌린 대로 거뒀구나.' 할 수 있다. 내가 정말 열심히 많이 뿌리고 노력해서 만족할 만한 수확을 거뒀다. '난 뿌린 대로 거뒀어!' 할 수 있다. 나 자신에게 이 말을 할 때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맞다.

그런데 이 말을 다른 이가 나에게 한다. 열심히 뿌려서 많은 것들을 거둔 성공한 사람이 나에게 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니, 열심히 하라고. 1:1로 보면 맞는 말 같다.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 그의 자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 태어나 자랐고, 다른 환경적인 문제를 신경 쓰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 해외 유학을 다녀왔고, 아빠 찬스로 아빠 회사에 취직해서 아주 행복한 삶을 산다. 똑같이 그 회사에 입사했지만 어려운 형편으로 어렵게 공부해서 일류 대학은 아니더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다. 그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말을 진리로 알고 있기에.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사업가의 자녀가 입사한다. 고속 승진을 하고 딱히 할 일도 없는 부서에 배치되어 별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월급은 많이 받아 간다. 야근하는 모습도 한 번 본 적이 없다. 열심히 살아오고, 열심히 뿌리려고 했던 사람은 순간 혼란에 빠진다. 동시에 여러 악재가 겹친다. 열심히 일해도 형편은 딱히 나아지지 않고, 치솟는 집값, 임금 인상률보다 더 높이 오르는 물가에 결혼, 자녀, 집, 차 등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어렵사리 결혼을 했다고 치자. 이번엔 자녀가 생기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만큼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 번도 겪지 않고 잘 살기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온다. 그런 상황에 힘겨워하다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중대한 실수를 했다. 대표에게 불려 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자 대표는 인자한 얼굴을 띄고는 말한다. '지금껏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라고. 정말 와닿지 않는다.

진리는 진리로 남겨두고 싶다. 그러려면 누가 이 진리를 논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흙 수저로 태어나 열심히 노력하고 일궈서 성공한 사업가가 됐어도 나 자신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성공한 사업가가 된 순간 내 자녀는 어쩔 수 없이 재벌 2세니까. 재벌 2세 자녀를 둔 재벌은 자기 부하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이 말을 진리인 양 내뱉을 수 없다고 본다.

4. 나는 뿌린 대로 거뒀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다. '나'는 뿌린 대로 거뒀다. 또는 래퍼 김하온의 'OOOOOOL'에 나오는 랩 가사처럼 '뿌리는 대로 거두는 중인 나를 바라봐줘.'가 정답이겠다. 누구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뿌린 대로 거두는 거라는 말을 할 수 없다. 하는 순간 이 말은 진리가 아닌 말이 되고 마니까. '공정'이 불가능한 세상에 살면서 같은 기준을, 같은 잣대를 타인에게 적용하지 말자.

진리는 제발 진리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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