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우선순위
한 동네에 사는 친구 하나가 최근 많은 부침을 겪고 있다.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친구인데, 이 업종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더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5년 전부터 장사를 시작했던 친구다. 장사를 하면서도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동네 빵집 매출 순위 1, 2위를 다투는 빵집 사장이 됐다. 친구의 빵집을 들를 때면 내심 자기 사업을 하며 돈도 잘 벌고 있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고, 또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면 '이참에 나도 한 번 내 사업을 해볼까'하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힘들단다. 그것도 아주 많이.
회사원인 나와 장사를 하는 친구가 서로 시간을 맞추기란 매우 어렵기에 장기간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갖기 어려웠지만, 나처럼 자기 속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친구가 대뜸 힘들다고 하니 시간을 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몇 년 만에 그 친구와 맥주잔을 기울였다.
"방야, 너는 잘해. 와이프나 회사에. 행복한 줄 알고 잘하라는 말이야 인마."
대뜸 나에게 삶에 대한 충고를 건네는 친구. 장사가 요즘 잘 안되나 싶었다.
"나는 아직도 상황만 되면 회사 때려치우고 한국 가서 개인 사업하고 싶은데? 너네 가게 배달 앱 매출 순위 1,2위 찍는 거 보니까 더 그래. 물론 고생이야 하겠지만, 너처럼 열심히 하면 잘될 수도 있는 거잖아."
"행복한 소리. 따박따박 통장에 월급 꽂힐 때가 좋은 거야. 배달 앱 순위만 보면 잘 되는 거 같아도 인건비에 재료비, 임대료까지 아직도 빚에 허덕인다."
빚이라니. 최근 1~2년 장사도 잘 돼서 더 큰 가게로 옮기고 주방도 확장한 친구였다. 그런데 빚이라니? 의아함에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게 열 때 여기저기서 많이 끌어다 썼잖아. 그전에 하던 아동복 도매사업 쫄딱 망해서. 그리고 장사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매월 수입이 일정하지가 않아. 직원들 월급 줄 돈이 없어서 와이프가 신용대출도 받고 그랬어. 가게 확장한 것도 사실 무리를 좀 했고."
그렇단다. 개인사업이나 장사 모두 매달, 매주, 매일이 전쟁이란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다음 날 빵을 굽기 위한 반죽을 해놓고 나면 10시가 넘는다. 그런 삶을 주말이나 휴무 없이 5년을 해온 친구. 몸소 겪지 않은 일을 100%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어렴풋이 와닿았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그런데 돈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혼하재."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내 아내와 내가 빵집에 들를 때마다 어눌한 한국어로 밝게 인사하던 친구 아들내미와 카운터를 보던 친구 와이프. 육아, 가사와 함께 가게 일까지 도와야 해서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항상 웃는 모습을 보여줬던 그들이라 친구의 말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와이프랑 아들내미랑 행복하려고 회사도 때려치우고 나와서 죽자 살자 돈 벌려고 일했는데, 돈은 돈대로 항상 모자라고, 가족은 가족대로 힘들고. 어떻게 해야 되냐?"
해줄 말이 없었다. 아니, 있어도 할 수 없었을 거다. 워낙 힘든 내색을 안 하던 녀석이라 정말 몰랐다.
"돈이 문제야?"
침묵을 깨고 질문을 던졌다.
"아냐. 내가 문제야. 와이프랑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원래도 무뚝뚝하고 욱하는 성격이 장사하면서 더 심해졌다나.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나는 그때마다 잘 풀고 응어리 안 남겼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와이프는 다르더라고. 계속 쌓인 거야 이게. 나도 나름대로 돈 잘 벌려고 하다 보니 너무 예민해져 있어서 그랬다 생각하고 이해를 구해봤는데, 마음이 닫혀있어. 각방 쓴다. 나는 와이프가 아직도 연애 시절처럼 너무 좋아. 절대 내 마음이 변한 건 아니고. 정말 살아남으려고, 와이프랑 아들 행복하게 살게 해 주려고 악착같이 일해온 건데 그 결과가 이렇다. 물론 내 잘못인 거 나도 알아. 그래서 힘들다."
나는 말없이 내 잔을 친구의 잔에 부딪혔다.
"요즘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해. 한 달 새 10kg가 빠졌어. 주말에 가게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와이프, 아이들이랑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자주 들어와. 그럼 혼자 생각하지. 나도 저런 모습의 가족을 꿈꾸며 이 일을 시작한 건데 하고. 뭣 때문에 돈 벌겠다고 빚이란 빚은 다 지고, 가정까지 무너져가는 상황을 만든 건지 나 자신도 이해를 못 하겠다."
그렇구나. 역시는 역시다. 돈이 우선순위가 된 삶의 과정과 결말은 항상 바르지 않다. TV, 영화, 책에서 항상 등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콘텐츠와 우리네 실제 삶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내 친구가 증명한다. 그 콘텐츠들이 다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를 돌아보게 된다. 사실 나도 요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정체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위해 아내를 한국에 두고 온 지 6개월 동안 타국에서의 기러기 생활과 아내 혼자 겪은 두 번의 시험관 시술 실패, 그리고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등으로 폭발 일부 직전까지 간 적이 벌써 여러 번이다. 그 기간 동안 독서도, 운동도, 명상도, 공부도, 식단도 루틴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계속 어그러져만 갔다. 삶의 우선순위와 목표, 방향을 모두 잃은 채로 제자리에서 빙빙 돌다 주저앉은 것만 같다. 친구의 힘듦에서 엉망진창인 내 모습을 발견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친구나 나나 현재 각자의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는 같다. 우선순위를 '돈'에 두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친구대로 돈을 위해 장사를 시작하면서 현재에 이르렀고, 나는 나대로 돈을 위해 해외 생활을 선택했기에 이 상황에 봉착했다. 만약 친구와 내가 우리 목표인 가족의 행복을 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면 행복할까? 아니, 그전에 행복할 수 있는 돈의 정도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돈에 있어서 적당히라는 것이 있을까? 우선순위를 '돈'에 두게 되면 답을 얻을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내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친구가 말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해서 그 고생을 사서 했더니만. 허허. 이도 저도 얻는 건 없고 잃는 것들만 생기네. 지금은 정말 그냥 와이프랑 아들이랑 가족들이 원할 때 아무 고민 없이 나들이 가보는 게 소원이다."
친구는 이제 삶의 우선순위를 변경할 것 같다. 돈에서 가족과 행복으로. 그는 이제 알아낸 것 같다. 행복을 위해 돈에 집중하면 돈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궁극적 목표인 행복에 다다를 수 없음을, 그리고 돈을 얻음으로써 잃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음을 말이다.
나 역시 다시 한번 켈리 최의 저서 <웰 싱킹>을 읽고 정한 내 인생의 핵심가치 5가지(가족, 건강, 겸손, 진정성, 윤리)를 가슴에 새겨본다.
인생이 막혔다 싶을 때는 잠시 멈춰 서서 지금 내가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 보세요. 무엇이 진정한 행복으로 나를 이끌 수 있는 것들인지. 그리고 다시 나아가면 됩니다. 정답은 없지만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