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느꼈다.
“사랑에는 만남도, 헤어짐도 없다.
다만 지나가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 왕가위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지나간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과연 존재할까.
높고 낮음, 깊고 얕음은 모두 상대적이지 않은가.
아휘와 보영,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사랑은
모두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지만,
제각기 다른 사랑이다.
아휘는 자유보다 안정을,
보영은 안정보다 자유를 갈망했다.
와타나베는 위로보다 삶을,
나오코는 삶보다 위로를 원했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비추며
각자만의 모습을 한 사랑을 확인했다.
그렇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상대적인 개념인 셈이다.
그리고 그 상대적인 사랑이
존재 역시 상대적임을 증명한 셈이다.
우리는 상대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
나는 또다시 상대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사랑이 있음을 증명하고
그 사랑이 다시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신비롭지 아니한가.
누군가는 함께 있으면서도
힘들어하며 멈춰 있는 시간을 느끼고,
누군가는 헤어진 뒤에야 진정 사랑했음을 깨닫고
함께했던 시간에 묶여 멈춰 선 채로 나아가지 못한다.
또 누군가는 사랑하면서도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거부하며 시간을 등지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존재가 시간을 등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슬퍼하면서도
살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영영 닿을 수 없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각자 자신의 궤도를 돌다가
상대로부터 풀려나온 실오라기 하나가
내게 달라붙은 것일 뿐인데도
그걸 ‘닿음’이라 믿는 건지도 모른다.
바로 직전까지 내가 걸어온 시간의 궤도는
무수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한 점으로 압축되어 있다.
기나긴 시간을 살아온 것 같아도
기억 속에 저장된 시간은
인생이 담긴 한 권의 사진첩처럼
한 곳에 수렴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앞으로 걸어갈 시간의 궤도 역시
결국 한 점으로 수렴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무한히 뻗어 있으면서도
한 점으로 수렴되는 궤도 위에서
‘존재’와 ‘시간’이라는 상대적 개념은
‘사랑’이라는 또 하나의 상대적 개념 없이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것 아닐까.
알 수 없다.
그저 그렇다는 기척을 느낄 뿐이다.